추가 선정 과정 3자 개입 의혹, 결국 경선 조사서 배제…이재명 대표 진상파악 지시
#리서치디앤에이 추가 선정 논란
민주당은 2월 초 총선 경선 ARS투표 시행업체를 공모했다. 경쟁 프리젠테이션(PT)을 실시해 업체 3개를 선정했다. 선정된 업체는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 우리리서치, 티브릿지였다.
리서치디앤에이는 업체 선정 결과가 나온 후 추가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친명계 핵심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월 23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 관계자는 “김병기 의원이 당 실무진에게 전화로 ‘왜 리서치디앤에이가 빠졌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며 “이 때문에 3곳에서 4곳으로 늘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선관위 여론조사업체 선정에 김 수석부총장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김 부총장은 업체 선정 PT 우선순위에 오른 업체를 적절한 사유 없이 배제할 시 불공정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부총장의 ‘의견 전달’이 있었음은 인정한 셈이다.
2월 21일 정필모 전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이 돌연 사퇴하자 추가 선정 논란은 더욱 커졌다. 당시 정 의원은 건강 문제로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추가 선정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정 의원은 2월 27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과정에 대해 허위보고를 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당초 실무자들로부터 리서치디앤에이 추가 선정은 업무 과부하를 막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2월 20일 리서치디앤에이가 현역 의원 배제 여론조사를 실시한 업체라는 사실이 보도되자 경위 파악을 했고, 제3자가 해당 분과위원에게 전화로 지시해 이 업체를 끼워 넣었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음 사퇴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언론에 보도된 정 의원의 의총장 발언은) 모두 사실로 알고 있다”고 확인했다.
정 의원이 직접 정황을 공개하자 의총에 참여한 일부 의원들이 진상조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의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필요하면 사실관계와 관계자 진술, 내용을 명확하게 밝혀서 설명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서치디앤에이는 어떤 곳?
논란의 대상이 된 리서치디앤에이는 ARS 여론조사 전문기업이다. 업체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회사는 1992년 설립됐다. 당시 이름은 한국인텔리서치였다. 2017년 5월 9일에는 리서치디앤에이라는 이름으로 선거여론조사기관에 등록됐다. 2016년에 출범한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인 공공의창 회원사임을 밝히고 있다. 공공의창 참여기관에는 리얼미터, 조원씨앤아이 등 16개 여론조사 기관이 있다.
리서치디앤에이는 판세조사, 공공서비스 만족도 조사 등 30년 동안 약 7000회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는 점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중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는 9개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위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고객으로는 정당, 언론, 기관, 학교, 노동조합,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이었다.
리서치디앤에이는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3년 성남시 시민만족도 조사 용역을 받았다. 당시에는 한국인텔리서치라는 사명을 썼다. 이 이력 때문에 이 대표와 가까운 업체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리서치디앤에이가 성남시 여론조사 용역을 전담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발표된 성남시민 시정 만족도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경제경영연구원이 실시했고, 2017년 조사는 여론조사기관인 서던포스트가 맡았다.
2월 17일 이인영(서울 구로갑) 홍영표(인천 부평을) 송갑석(광주 서갑) 의원 지역구에서 이뤄진 여론조사는 한국인텔리서치가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비명계로 분류된 의원들의 지역구다. 이 여론조사에서는 현역 이름은 모두 빠졌고, 이용우 변호사(구로갑) 등 영입 인재의 이름이 들어갔다.
문제는 한국인텔리서치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라는 점이다. 한국인텔리서치가 운영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현재 이 업체는 폐업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내에서는 친명계 인사들을 공천하기 위해 따로 여론조사를 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은 이 여론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2월 17일 홍영표 의원은 “당에서는 여론조사를 안 했다 하는데, 그러면 일부에서 이야기하듯 비선 조직에서 한 건가”라고 지적했다. 2월 29일 민주당이 인천 부평을에 박선원 전 국정원 차장, 이동주 의원 2인 경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홍 의원은 사실상 컷오프(공천배제)됐다.
한국인텔리서치가 비명계 박용진 의원의 지역활동수행평가를 담당한 것도 논란이 됐다. 이때는 리서치디앤에이라는 이름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활동수행평가는 130점으로 평가 항목 중 최대 배점이다. 박 의원은 하위 10%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민주당 다른 관계자는 “(조사가 다 끝난 다음에) 리서치디앤에이라는 업체가 (박 의원 지역구 평가를) 한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인텔리서치 여론조사는) 파악된 것 없다. 이상하다는 의혹만 계속 있다”고 말했다.
2월 27일 민주당은 입장을 바꿨다. 이날 임오경 의원은 의원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조정식 사무총장이 일부 지역의 현역 의원을 배제하고 여론조사를 돌린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임 의원은 “이번 총선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여론조사를 돌린 것이 맞다”며 “조 사무총장이 왜 일부 현역 의원을 제외하고 여론조사를 돌렸는지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리서치디앤에이 김기수 대표 이력도 도마에 올랐다. 김 대표는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인 7만여 명의 개인 정보를 특정 후보들에 건넨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당 내부에서는 정보 유출 이력이 있는 업체를 선정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 대표는 2014년 6월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 설치한 ‘선거공정심의위원회’에 위원으로 위촉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위원 수는 9명이었다.
2월 20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대표는 “리서치디앤에이는 법인이고 한국인텔리서치는 개인회사로 제가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논란이 된 여론조사는 우리가 돌린 게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일요신문은 2월 28일 리서치디앤에이 사무실을 찾았지만, 김 대표를 만날 수 없었다. 사무실 간판에는 리서치디앤에이라는 사명만 나와 있을 뿐 한국인텔리서치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리서치디앤에이 측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리서치디앤에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은 수습에 나섰다. 민주당 선관위는 2월 25일 리서치디앤에이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선관위는 입장문을 내고 “리서치디앤에이는 조사에 문제는 전혀 없으나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으로 민주당에 부담이 되기에 경선 조사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2월 29일 이 대표는 당 윤리감찰단에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과정에 대해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이 대표는 전날인 2월 28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리서치디앤에이가 추가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파악하라고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