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좌장’ 임종석 컷오프→비명계 탈당러시 방아쇠…문재인 스탠스 ‘초미관심’ 직접 등판 땐 파국 전망
‘친명단수 비명경선’ 흐름이 이어지는 민주당 공천에서 국회 컴백을 노리는 거물급 친문 인사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서울 중성동갑에서 공천을 노렸던 임 전 실장은 2월 27일 최종 탈락했다.
민주당 공관위는 임 전 실장을 컷오프한 서울 중성동갑에 전략공천 카드를 내밀었다. 최근 민주당 ‘여전사 3인’ 중 하나로 불리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서울 중성동갑으로 출마하게 됐다. 전 전 위원장은 민주당 내 친명으로 분류된다.
서울 중성동갑은 임 전 실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재선과 3선을 이뤄낸 지역구다. 홍 원내대표가 제22대 총선에서 ‘야권 험지’인 서울 서초을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임 전 실장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전 전 위원장이 공천을 받으면서 친문계는 발칵 뒤집혔다. 국민의힘에선 윤희숙 전 의원을 일찌감치 단수공천하며 임 전 실장과의 ‘빅매치’를 예고한 바 있다.
민주당 내부에선 ‘임종석 컷오프’를 두고 상당한 충격이라는 반응이 쏟아진다. 그간 공천 과정에서 불만을 토로하던 비명계의 공분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도화선이 됐다. 비명 진영에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임 전 실장 컷오프를 둘러싼 갈등은 지도부까지 덮쳤다. 당 지도부의 유일한 비명계 최고위원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임 전 실장 컷오프 이후 행동을 개시했다.
고민정 의원은 2월 27일 임 전 실장 공천배제가 확정된 직후 최고위원 직을 사퇴했다. 고 의원은 “오늘부로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면서 “우리의 불신 위기가 국회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국민들에게 절망으로 이어질까 두렵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고민정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은 타이밍에 주목한다.
한 야권 관계자는 “최근 친문계는 성향이 두 가지로 갈라졌다”면서 “친명친문과 비명친문으로 갈린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천 과정에서 비명계에 대한 학살에 가까운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양산(문재인 전 대통령)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면서 “공천 뇌관이 터진다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비명친문 세 결집 구심점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비명계 관계자는 임 전 실장 공천 배제 결정이 나기 직전 통화에서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에서 레드라인격 상징성이 있는 지역구는 서울 중성동갑”이라면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까지 비명횡사 소용돌이에 휩싸인다면, 친문계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 내홍 뇌관이 강력하게 폭발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임 전 실장 컷오프 이후 그는 “임 전 실장 공천 배제는 뇌관 폭발을 넘어 ‘친명 공천’ 콘셉트에 확실한 화룡점정”이라고 했다.
2월 28일 컷오프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 전 실장은 “총선 승리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재고를 요청한다”면서 “이재명 대표와 최고위원회의에 ‘정말 이렇게 가면 총선에 이길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은 “양산 회동에서 이재명 대표가 굳게 약속한 ‘명문(이재명+문재인) 정당’과 용광로 통합을 믿었다”면서 “지금은 그저 참담할 뿐으로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납득되질 않는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은 “이번 선거는 질 수 없는 선거이고 져서는 안 되는 선거”라면서 “명문의 약속과 통합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총선 승리와 윤석열 정부 폭정을 심판하기 위한 기본 전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결과 통합을 복원하고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반전 계기를 만들어 달라”면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을 지지했던 마음들을 모두 모아 달라. 그것만이 승리의 길”이라고 호소했다.
임 전 실장 컷오프는 비명계의 탈당러시 방아쇠를 당겼다는 분석이다. 비명계 5선 설훈 의원(경기 부천을)은 “이재명 대표는 연산군처럼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 측근과 결정하고, 의사결정에 반하는 인물을 모두 쳐내며, 아부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있다”는 말로 민주당 지도부를 강력하게 저격했다. 그리고 설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다. 설 의원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비명계 초선 박영순 의원(대전 대덕)도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박 의원은 탈당 후 2월 28일 이낙연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에 합류했다. 박 의원은 새로운미래에 합류하면서 “민주당에서 하위 10%에 들어갔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면서 “민주당에서는 정치적 소신을 펼칠 수 없고,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으로 새로운미래에 왔다”고 밝혔다.
중량감 있는 비명계 현역 의원들 컷오프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재선 기동민(서울 성북을) 4선 홍영표(인천 부평을) 5선 안민석(경기 오산) 5선 변재일(충북 청주청원) 의원 지역구가 전략선거구로 지정되면서 사실상 컷오프 수순에 돌입했다. 컷오프될 처지에 놓인 비명계 의원 중 일부는 탈당을 예고했다.
당 내부적으론 ‘심리적 분당’이라는 단어까지 거론된다. 친명과 친문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뜻이다. 정가 일각에선 당내 핵심 원로이자 이재명 대표 지원자로 꼽히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쪽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말도 나온다. 이 전 대표가 통합 차원에서 임종석 전 실장 공천을 당부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재명 대표에 실망을 했다는 게 골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공천 내홍에 참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 대통령은 2월 29일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다. 다만, 현 공천 상황에 대해 우려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임 전 실장 컷오프 발표 후 통화한 친문계 의원은 “문 전 대통령 고민이 깊다. 민주당의 화합을 바라고 있긴 하지만, 학살당하고 있는 참모들과 동지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딜레마 때문일 것”이라면서 “임 전 실장 컷오프가 문 전 대통령 스탠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2월 2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변화에는 반드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비명계 중량급 의원들 반발과 관련해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같은 기둥 속에서 큰 줄기를 함께한다”면서 “우리는 명문(이재명+문재인)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공천에서 탈락했음에도 지역구 번화가인 왕십리에서 유세를 강행했다. 홍영표 송갑석 윤영찬 등 비명계 의원들이 임 전 실장과 함께했다. 당에선 ‘왕십리 반란’이라는 말도 나왔다.
2월 2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임종석 전 비서실장 컷오프 이후 당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 이름에 ‘재명’을 넣어서 ‘재명당’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이재명 대표의 공천 컷오프를 보면 자기의 잠재적 당권 경쟁자를 숙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 대표는 당권을 이용해 잠재적 경쟁자인 임종석을 무리하게 찍어내고 있다”면서 “지금 (이 대표가) 찍어내고 있는 분들은 민주당에서 민주당 사람으로 안 치겠다는 것으로 순도 100% 이재명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사실 임종석이라는 인물이 비명 대 친명 구도를 대표할 만한 상징성이 있는 인물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비명횡사 공천에 따른 반발로 비명계 이탈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은 맞다”고 바라봤다.
신 교수는 “사실 당 주류 세력이 교체되면서 공천 관련 잡음이 생기는 건 계속 있어왔던 일”이라면서 “제20대 총선에서도 친문계가 동교동계를 강력하게 밀어낸 전력이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그때 ‘공천학살’ 가해자가 지금은 피해자로 바뀐 상황인데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내부적인 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