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하락기’ 현금 흐름 중심 자산설계 필요…거주자보다 임대 사업자가 집값 떨어져도 스트레스 덜 받아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저성장 체제로 접어들어 가격이 올라도 과거처럼 크게 오르기 힘든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동산의 가치평가 패러다임도 변화해야 한다. 미국의 투자 이론가 윌리엄 번스타인은 “부(富)란 비유동성 재산의 집합이 아니라 소득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당신이 과수원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가치는 단순히 땅과 나무의 시세가 아니라 과수원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부동산도 현금 흐름 확보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장 이자율이 연 5%라면 가옥의 임대료는 연 7~7.5%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즉 주택 임대 수익은 시장 이자율(가령 정기예금)의 1.4~1.5배가 되어야 한다. 사는 집을 제외한 부동산을 보유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판단 기준은 현금 흐름이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듯 잘 발생하느냐의 여부다.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단 한 번의 행복(시세 차익)에 연연하지 말고 여러 번 쪼개서 행복(운용 수익)을 받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동산에서 행복은 자주, 쪼개서 받을수록 좋다.
현금 흐름 위주의 투자는 위기에도 강하다. 일본에서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땅을 사서 건물을 지은 뒤 분양하는 많은 부동산 개발업자는 망하고, 현금 흐름 중심의 임대사업자는 살아남았다. 부동산 개발업은 ‘가격의 우상향’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이므로 만약 반대로 ‘가격의 우하향’이 뚜렷해지면 위기에 봉착한다. 부동산 개발업은 외줄 타기 곡예를 하듯 위태롭다. 예기치 않은 센 바람이 불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월세를 받는 주택 임대사업자는 확실히 집값의 등락에 신경을 덜 쓴다. 아파트 자가 거주자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산 투자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월세형 임대사업자에게 있어 투자의 초점은 가격이 아니라 매달 들어오는 임대 수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2억 원짜리 아파트를 산 A씨와 B씨가 있다. A 씨는 자가 거주자고, B 씨는 매달 100만 원을 받는 임대사업자다. 2년이 흘러 아파트값이 1억 8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A 씨는 2000만 원의 평가손실을 봤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B 씨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매달 100만 원의 월세를 24개월(2년) 동안 받았으니 2400만 원의 임대소득을 올렸다. B 씨는 A 씨처럼 아파트값이 떨어져 2000만 원의 평가손실을 봤지만, 결과적으로 4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대사업자는 가격 평가손실(-2000만 원)과 임대소득(+2400만 원)을 합산(+400만 원)해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아파트를 보유하면서도 자가 거주자는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지만, 임대사업자는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임대사업자의 생각은 착각이나 편향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 월세형 임대사업자는 아파트값이 떨어져도 자가 거주자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 마련이다. 잘 한번 생각해보자. 2억 원에 산 아파트에서 꼬박꼬박 100만 원의 월세가 나온다면 시세가 2억 2000만 원이든, 1억 8000만 원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월세형 임대사업자에게 가격 손익과 임대 수입을 합쳐 계산하는 편향이 나타난다는 점을 꼭 기억하라. 하지만 같은 임대사업자라도 전세형 임대사업자는 사실상 갭투자자와 큰 차이가 없다. 그 역시 가격이 하락할 때 상당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파트 가격이 하락했을 때 직접 거주하는 소유자는 (월세형) 임대사업자보다 하락에 따른 고통을 두 배 정도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이 내려가더라도 자가 거주자는 거주 효용 이외에 얻는 것이 없지만 임대사업자는 월세로 보상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자가 거주자는 당연히 임대사업자보다는 손실 고통이 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현금흐름 중심의 부동산 자산설계는 지금처럼 정체기나 하락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