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 창 던지고 ‘안’은 딴지 걸고…
▲ 새누리당이 제기한 ‘NLL 포기 시사 발언’ 의혹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강력히 반발했다. 4일 10·4 남북정상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후보. 사진제공=문재인 |
지난 12일 경기 평택 해군제2함대사령부를 방문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선거 후보는 양만춘함 선상에서 기자들과 만나 단호한 표정으로 이 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비공개 대화록이 존재하며, 그 안에는 10·4 남북공동선언 합의를 위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를 시사하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포함돼 있다는 정문헌 의원의 주장에 대한 반응이었다. 문 후보는 “문제는 (비공개) 녹취록이나 비밀대화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정 의원의 발언은 굉장히 중대한 내용으로, 결코 어물쩍 넘어갈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실 여부가 규명되고 그 결과에 따라 (정 의원과 박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지난 10년 대통령이 속한 당이 다수당이 되도록 국민이 힘을 모아줬는데 압도적인 다수당이 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같은 정당 안에서 패가 갈리고 손가락질하고 ‘대통령 탈당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정당 대통령’을 스스로 ‘무소속’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정당론(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꺼내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정치에서 정당이 어떤 책임을 졌습니까.”
지난 11일 충북 청주시 청주교대 강연에 나선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최근 민주당 내에서 “무소속으로 대통령을 할 수는 없다”는 이른바 ‘정당후보론’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이 쏟아지고 있는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기성 정당을 비판하는 그의 발언에는 거침이 없었다. 문재인 후보는 기자들로부터 안 후보의 이 같은 발언 내용을 전해 듣고 “아유 정말 그렇게 험한 말을…”이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기자들의 잇단 질문에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두 장면은 지난 추석 연휴(9월29일∼10월1일) 이후 문재인 후보가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추석 연휴를 거치면서 문 후보의 위상이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추석 전 박 후보가 ‘과거사 발언’으로 점수를 상당 부분 까먹고 안 후보는 잇단 검증 공세에 상승세가 꺾인 반면 문 후보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안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정치권 안팎에선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 “색깔론 공세임에는 틀림없지만 상승세를 탄 문 후보를 흔들기에 충분한 소재”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정치 평론가는 “결국 새누리당의 공세는 문 후보에게 ‘문재인은 NLL을 못 지킬 것’이라는 이미지를 씌우는 데 목적이 있다”며 “문 후보가 미온적으로 대응할 경우 안보관이 의심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강하게 NLL 수호를 주장할 경우 자신의 대북 구상을 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문 후보에 대해 다소 전통적인 시비를 걸었다면 안 후보 측의 공세는 보다 근본적이다. 민주당을 새누리당과 함께 ‘낡은 정치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안 후보 측의 공세는 지난 9일 송호창 의원 영입으로 시작, 10일과 11일 잇단 안 후보의 발언으로 노골화됐다. 송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안 후보 선거대책본부에 결합하게 된 사실을 전하는 기자회견에서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초·중학교 다니는 제 아이들의 미래 때문”이라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낡은 정치 세력’에게 맡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을 빚자 “문 후보와 민주당은 ‘낡은 정치 세력’이 아니다”고 극구 부인했지만, ‘낡은 정치 세력’을 대체할 대안으로 안 후보를 선택했다는 사실 만큼은 달라질 수 없다.
이후 안 후보는 10일 “지금 상황에서 여당이 대통령 되면 밀어붙이기로 세월이 지나갈 것 같고, 야당이 되면 여소야대로 임기 내내 끌려 다니고 시끄러울 것 같다”며 “그럴 바엔 차라리 무소속 대통령이 돼서 국회를 존중하고 양쪽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를 철없는 소리 취급하자 급기야 11일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발언까지 쏟아냈다.
안 후보 측의 공세는 후보단일화 프레임에 갇혀 있다간 국민에게 ‘안철수의 장점’을 제대로 알려보지도 못하고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엄청난 검증 공세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 이후 지지율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참에 문 후보 및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분명히 함으로써 승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안 후보 선대본부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1차 고비로 여겼던 추석 연휴를 잘 돌파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후보뿐 아니라 안 후보까지 날을 세우고 덤벼들자 문 후보와 민주당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문 후보는 일단 박 후보와 새누리당의 안보관 공세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반면 안 후보 측 공세에는 똑 부러지게 대응하기가 만만찮다. 정치쇄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안 후보 측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정당 쇄신을 이루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우상호 단장이 “계파를 초월한 ‘용광로 선대위’ 구성을 통해 당 쇄신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발언했다가 당내에서 빈축을 산 게 단적인 예다. 민주당 관계자는 “‘친노 패권주의’ 논란 속에도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게 문 후보의 한계”라며 “이런 식으로는 ‘새 정치 대 낡은 정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