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차관 출신 기획통 김주현 발탁…야권 ‘특검 방패 포석’ 비판, 친인척 관리 기능 물음표
제22대 총선에서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다양한 원인이 제기됐지만 많은 정치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했다. 1차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을 둘러싼 책임론 중심엔 ‘불통’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여권 내부에선 “대통령실의 듣는 귀가 꽉 막혔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총선 이후 만난 여권 선거캠프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정무적으로 상당히 미흡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정무적인 감각이 떨어지는 원인은 참모 능력 부재일 수도 있지만,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는 보고라인이 제 기능을 못한 데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민정수석실 폐지’를 직접 공약할 정도로 민정수석실 폐지는 새로운 시도였다”면서 “그러나 막상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대통령에게 곧이곧대로 들어가지 않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세상의 온도와 대통령이 보고받은 온도에 차이가 있다 보니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불통 논란’이 핵심적인 선거 리스크로 작용했다”고 돌아봤다.
총선이 끝난 뒤 대통령실은 변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정치인 출신으로 교체했다. 임기 초반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뒤로 열리지 않았던 기자회견에도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불통’ 이미지를 벗기 위한 노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 마지막 방점을 찍을 만한 조치가 민정수석실 부활이다. 5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직접 등장해 민정수석실 신설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김주현 신임 대통령실 민정수석을 소개했다.
민정수석실 부활과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윤 대통령은 “제가 대통령 인수위 때 만들지 않겠다고 한 게 아니고, 정치를 시작하면서 2021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민정수석실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면서 “그 기조를 지금까지 유지해봤는데, (대통령실)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모든 정권에서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인데, 민정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고심했다”면서 “복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도 역기능을 우려해 법무비서관실만 뒀다가 결국 취임 2년 만에 민정수석실을 복원했다”고 강조했다.
측근 ‘사법 리스크’ 및 특검 이슈 등에 대한 대응이라는 의혹과 관련해서 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설치하는 것”이라면서 “사법 리스크가 있다면 제가 설명하고 풀어야 할 문제지 민정수석이 할 일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야당에선 민정수석실 부활을 두고 검찰을 컨트롤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는 기류가 강하다.
민정수석실을 이끌 선장은 법무부 차관 출신 김주현 민정수석이다. 김 수석은 1961년생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18기다. 법무부 검찰과장, 법무부 대변인,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거친 엘리트 검사 출신이다.
2008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를 지휘하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지낸 뒤 대검찰청 차장검사, 검찰총장 직무대행 등을 거친 뒤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 수석은 검찰 내에선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역대 검찰 출신 민정수석 중에 ‘특수통’이 많았던 점과 차별성을 지닌 인사다.
김 수석은 “민심 청취 기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서 앞으로 가감 없이 민심을 청취해 국정운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각 정책 현장에서 이뤄지는 국민의 불편함과 문제점이 있다면 국정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민정수석을 보좌하는 양날개는 민정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이다. 신임 민정비서관으론 이동옥 행정안전부 대변인이 임명됐다. 행정고시를 합격해 정부혁신기획관, 지방재정정책관 등을 거친 ‘늘공’ 출신이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는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이 임명됐다. 이 비서관은 검찰 내 ‘윤석열 라인 막내’로 통하던 인물이다. 제22대 총선에서 경기 용인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낙선 이후 곧바로 대통령실로 컴백하는 것을 두고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있지만, 범정부 전반에 걸친 ‘군기반장’ 역할을 맡길 만큼 윤 대통령 신임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여러 정부에 걸쳐 민정수석은 ‘왕수석’으로 불렸다. 동시에 과도한 권한을 휘두른다는 비판론에도 휘말려 왔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은 인사 검증 등 인사와 관련한 핵심적 내용을 다루는데, 이게 곧 권력”이라면서 “당근과 채찍 사이 그 어딘가에 균형감을 갖춰야 하는 직군이기도 하다”고 했다.
역대 정부에서 민정수석은 대통령이 가장 신뢰할 만한 인물이 발탁되곤 했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민정수석, 박근혜 정부 우병우 민정수석, 문재인 정부 조국 민정수석이 대표적인 예다. 민정수석 직을 맡은 뒤 정치적 존재감을 올린 경우도 적지 않다.
통상 민정수석 인사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검찰 출신’ 여부다. 역대 민정수석을 지낸 34명 중 65%에 해당하는 22명이 검사 출신이다. 보수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들을 민정수석으로 기용하는 빈도가 높은 반면, 진보 정부에서는 비검찰 출신들을 민정수석으로 발탁했을 때 주목도가 높았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에선 민정수석실 부활이 ‘특검 방패’ 포석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민정수석 출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5월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야권 선거법 수사, 공안사건 수사 등에서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라면서 “조만간 ‘검사가 검사질하네’ 하는 현상을 보게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사실 민심 청취 기능이 부족하다면, 시민사회수석실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면서 “민정수석실 만드는 건 오케이고, 검사 출신 임명하는 것도 오케이다. 그러면 이제 중요한 부분은 대통령 친인척 관리 기능을 맡길 수 있는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민정수석실을 만든 건 자신의 말을 엎은 것인데, 이왕 말을 엎을 거면 제2부속실도 만들고 특별감찰관도 임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총선 이후 주요 화두는 정권 재창출 가능성인데, 대통령 및 가족을 둘러싼 국민적 의혹을 풀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라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