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포토카드’ 제공으로 앨범 중복 구매 유도…게임사서 사용한 방식과 유사해 지속 가능성 의문
하이브가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정한 대규모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공정위는 매년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대규모 대기업집단을 공개하는데, 엔터사가 대규모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과거 엔터산업은 SM,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3개사가 주도했지만 최근 몇 년간은 하이브가 대표 뮤지션 BTS의 북미지역 성공을 기반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하이브의 매출은 2조 178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SM(9610억 원), JYP엔터테인먼트(5665억 원), YG엔터테인먼트(5691억 원), 3개사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다.
하이브의 실적이 고공행진을 한 데는 박지원 대표의 역할이 컸다. 게임사 넥슨 출신인 박지원 대표는 2020년 5월 하이브(당시 사명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합류했다. 박지원 대표는 이듬해 하이브 CEO로 취임하며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2020년 7962억 원, 2021년 1조 2559억 원, 2022년 1조 7761억 원, 2023년 2조 1780억 원 등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박지원 대표는 앨범 판매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하이브의 덩치를 키웠다. 하이브 측은 앨범 관련 매출을 따로 공개하지 않지만 '일요신문i' 취재를 종합하면 하이브의 지난해 앨범 매출액은 최소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하이브 전체 매출의 약 25%에 해당하며, 같은 기간 JYP엔터테인먼트의 전체 매출과 비슷한 규모다.
하이브는 앨범에 뮤지션의 미공개 랜덤 포토카드와 팬사인회 참석을 위한 추첨 응모권을 제공하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해 큰 성과를 봤다. 상당수 팬들은 미공개 포토카드를 모두 모으는 동시에 팬사인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복 구매를 마다하지 않는다.
원하는 포토카드 얻거나 팬사인회에 참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앨범을 구매하는 것이 사행심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따랐다. 최근 하이브의 레이블(자회사) 뮤지션인 세븐틴의 앨범이 일본 시부야에 대량으로 버려지는 일이 알려지면서 확률형 마케팅 전략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전략이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 판매 방식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지원 대표가 게임사 대표 출신이어서 이러한 지적에 힘이 실렸다.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 판매 전략은 관련 시장이 커지자 사행성 산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 결과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고,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도 구체화됐다. 게임업계는 지난 3월부터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할 때 아이템별 구매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박지원 대표의 경영 전략에 우려의 시선이 나오기도 한다. 박지원 대표의 마케팅 전략에 규제가 시작되면 그 방식에 따라 언제든지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서다. 앨범의 확률 마케팅은 게임 확률 아이템 마케팅처럼 확률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추첨제 팬사인회의 확률을 공개하면 오히려 팬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불필요한 지출을 부추기는 효과가 생길 수 있어서다.
만약 소비자 1명당 앨범 1개 구입으로 제한하면 하이브로서는 큰 타격이 예상된다. 실제 중국에서는 2021년 소비자 1명이 앨범 여러 장을 구매하는 '공구'를 1인 1앨범만 사도록 규제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국내 엔터사의 앨범 판매량이 급감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이브의 상황은 음반원 판매를 제외하면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지난해 △광고·출연료·매니지먼트 △MD 및 라이선싱△콘텐츠 등의 매출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특히 그동안 하이브의 성장 동력으로 지목되던 북미지역의 성장세가 꺾였다. 하이브의 지난해 매출 가운데 북미 매출 비중은 25.25%로 전년 30.95% 대비 5.7%포인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5480억 원으로 전년 5497억 원보다 줄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박지원 대표의 앨범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경영 전략을 낮게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비판이 지속되는 경영 전략에 규제가 시작될 수 있어 앨범 판매량을 높이는 박지원 대표의 전략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 관계자는 박지원 대표의 경영 전략과 관련한 질의에 “음반원을 포함해 공연, MD 및 라이선싱, 영상 콘텐츠 등 전 분야에 걸쳐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며 “음반원의 경우 장르 확장과 다양한 음악 포트폴리오 구성, 해외 음악 시장 공략 등에 매진하며 음반과 음원 매출의 동반 성장을 이뤘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