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놓고 깎아주는 건 무슨 서비스?
▲ 대우건설 내부 모습. 아래는 올 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새 CI 선포식. 작은 사진은 자산관리공사 로고. | ||
그러나 1년 뒤 대우건설로부터 발생하는 우발채무에 대해 10%까지 추가로 가격이 조정될 수 있도록 해 놓아 향후 6000억 원을 더 인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이런 계약 방식이 알려지면서 매각방식을 둘러싼 의혹이 재점화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2위 후보업체가 써 낸 돈보다 더 적은 돈을 주고 인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지난 10월의 국정감사 때도 캠코 측은 ‘다된 밥에 재 뿌리지 말아 달라’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정계 일각에서 이번 대우건설 매각 과정이 향후 캠코가 매각할 기업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의 문제제기가 그런 예이다. 그는 대우건설 매각 과정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캠코가 애초부터 인수 기업을 선정, 경쟁을 붙여 가격을 대폭 올려놓은 뒤 경쟁자들을 차례로 탈락시키고 다시 가격을 깎아주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즉 금호그룹을 처음부터 정해 놓은 상태에서 ▲‘500억 원 이상 M&A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어 중견기업들을 떨어뜨리고 ▲매각 절차가 시작된 이후 비가격 요소인 ‘도덕감점제’를 배점 항목에 신설해 형제간 분쟁으로 물의를 일으킨 두산그룹을, 대한생명 인수 문제를 들어 한화그룹 등 유력 경쟁자를 탈락시켰다고 한다. ‘50%+1주’ 매입가를 써낸 두산은 주당 매입가격이 가장 높았지만 다시 72% 지분 전체를 매각하기로 방침을 바꾸는 바람에 사실상 순위권에서 탈락했다는 것이다.
또 ▲출자총액제한제 예외규정을 대우건설 매각에 첫 적용한 것 ▲매각주간사인 삼성증권이 ‘금호그룹의 인수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써내 금호 측에 자금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했던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금호-캠코 밀약설’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금호는 순식간에 덩치를 키울 수 있고, 캠코는 돈을 많이 벌게 되니 이익을 보는 것이 누구냐를 생각해 보면 양측 사이에 모종의 약속이 있지 않았냐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의원 측은 이와 관련해 박삼구 회장이 청와대를 두 번 찾아갔으며, 박삼구 회장의 막내동생인 박종구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이 여당 의원들을 만나 출총제 규정을 예외로 해달라고 부탁했던 정황이 포착된다고 주장했다.
금호와 캠코의 본 계약서에 우발채무 부분을 남겨 향후 새롭게 가격을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도 논란을 재점화시킨 요인이다.
금호는 우발채무 부분에 해당하는 금액은 따로 캠코의 자산이 아닌 중립계좌에 넣어둔 뒤 부실이나 과징금 등이 생길 경우 돌려받는 ‘에스크로 방식’을 택했다.
애초 금호는 우발채무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리 계약금액에 반영할 것을 요구해 협상이 지연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6조 원이 넘는 인수 대금 중 금호가 자체 조달한 자금은 1조 8000억∼2조 2000억 원이고, 외부 자금은 4조 5000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수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호는 올해 계열사들의 지분을 팔고 회사채를 발행했다. 캠코가 대우종합기계를 팔 때는 우발채무 부분을 인수 제시가격의 5∼7% 사이에서 정해 미리 계약 때 선할인 받는 방식을 택하기도 해 금호도 같은 방식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발채무 부분으로 10% 한도 내에서 가격이 재인하될 경우 입찰 때 6조 1000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프라임그룹의 반발을 예상해볼 수 있다. 올해 여름 매각이 진행된 동아건설을 프라임이 낙찰받은 것이 반발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전해진다.
고진화 의원 측은 “캠코가 이렇게 관리 회사들을 하나씩 던져주듯이 매각하는 방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소문에 대해 프라임은 “대우건설 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특별한 입장이랄 것도 없다”는 반응이다.
캠코 측은 이에 대해 “그런 종류의 소문들은 매각 과정에서 수없이 쏟아지는데, 대우건설이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이해관계자가 많아져 악의적인 소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우건설은 업계 1위의 초우량 기업이기 때문에 우발채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밀실사 때도 금호가 협상 경험이 많은 법무법인 김앤장을 앞세웠지만 가격을 대폭 깎을 만한 건수를 찾지 못했던 것을 보면 추가 할인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금호가 대우건설 때문에 동반 부실화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4500억 원 대의 흑자를 기록한 대우건설이지만 금호가 외부 자금으로 끌어들인 4조 5000억 원과 대우건설 자체의 부채 3조 2500억 원에 대한 이자비용만으로도 동반 부실화의 우려가 있다는 것.
또 금호그룹의 자체 계열사인 금호건설이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경영능력을 의심받고 있기도 하다. 금호그룹은 국정감사에서 6조 원이 넘는 자금에 대해 ‘모두 자체 조달한 자본이 맞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었다.
고 의원 측은 “1990년대 말 캠코는 대우건설을 9800억 원에 샀다. 대우건설 매각으로 추후 캠코에는 3조 5000억 원이 매각대금으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며 캠코가 무리하게 매각대금 규모에만 집착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무리한 매각을 진행한 것은 공적자금 상환으로 조직 규모가 축소되거나 폐지될 우려를 느낀 캠코가 미리 자산을 많이 확보해 중국 채권시장 등에서 부실채권 장사를 하기 위해서라는 배경도 곁들이고 있다. 그간 대우 계열사 매각에서 재미를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들인 돈을 찾기 위해서 가격 경쟁을 유도했다는 것도 이유로 거론된다.
고 의원 측은 “앞으로도 캠코가 매각해야 할 업체들 중 굵직한 것들을 보면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등이 있는데 대우건설처럼 미리 정해놓고 협상하는 척만 할까봐 꾸준히 감시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삼성중공업이 탐을 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외국계 조선사로 넘어갈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