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릴 수 있을까. 그릴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은 기술이지만,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은 예술이다. 그릴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릴 수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일 것이다. 이걸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상상력을 동원하면 가능한 일이다. 이를 통해 예술가들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세상을 우리 앞에 펼쳐주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하는 일을 ‘창작’이라고 부른다.
창작의 가장 큰 힘이 되는 상상력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이 상징주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 예술 동력의 중심을 이뤘던 이 흐름은 문학과 미술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당시 유럽 예술계 특히 미술에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천사를 내 눈 앞에 데려오면 그리겠다”고 한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 “우리가 보는 것은 빛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영상”이라고 주장한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화론은 모두 보이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상징주의는 이러한 미술계의 대세를 거스르는 새로운 움직임이었던 셈이다. 인간의 심리나 감정 등 정신적 영역을 주제로 삼아서다. 즉 초자연적인 세계나 작가 내면의 생각, 관념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전개에 많은 모멘트를 제공했다. 추상의 출현도 그 중 하나였다. 많은 화가들은 추상적 방법을 이용해 기쁨, 슬픔, 경건함, 장엄함 같은 인간의 감정을 눈에 보이는 세계로 끌어낼 수 있었다.
자연의 거대한 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다. 대기의 움직임이나 빛, 바람같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연의 모습이 그렇다. 영국 근대 회화의 상징적 존재인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나 대기의 흐름, 빛을 추상적 어법의 풍경으로 보여주었다.
이소 작가도 이러한 관심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개척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바람을 그린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성격을 나름대로 해석한 추상적 화면을 보여준다.
그는 숲에서 영감을 얻어 바람을 그린다. 숲을 산책하면서 나무를 흔드는 거대한 바람의 모습을 보고, 볼을 스쳐 가는 부드러운 바람의 흔적을 느낀다고 말한다. 때로는 들판을 건너가는 빠른 바람의 걸음걸이도 작가에게 창작의 동기를 제공한다.
작품의 내용은 다소 서정적이지만 이를 담아내는 화면은 매우 현대적이다. 돌가루와 물감을 수십 겹 쌓고 갈아내는 과정을 반복해 물성이 강한 화면을 연출한다. 바람을 돌가루로 표현하는 모순의 발상이 이소만의 독자적 회화 세계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