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설화, 아군끼리 총질도…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L 의원이 캠프에 와서는 ‘박 후보의 뜻이 이러이러하니 이런 것을 준비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 S 의원이 나타나 ‘무슨 소리냐. 박 후보는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K가 등장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이렇게 하는 게 박 후보의 뜻이다’ 하고 받아칩니다. 이게 무슨 봉숭아 학당도 아니고….”
중앙선대위 안에서 역할 꽤나 맡았다는 전현직 의원들이 모두 ‘내가 곧 짐의 뜻’이라고 하니 우왕좌왕하며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는 게 캠프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몇몇 의원을 특정해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요즘 ○○본부장을 맡은 A 의원 운전기사가 세상 편하다 카대요. 일단 ○○ 사무실로 갔다 하면 나올 기미가 없으니까요. 임명장 줄 사람 체크해야지, 페이퍼(박 후보에게 올릴 보고서를 뜻함) 만들어야지, 테이블 사무밖에 안한답디다. 그런데 본부장은 밖에서 가장 많이 뛰어야 할 사람 아닙니까?”
‘당선’을 위해 의기투합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돋보이기’ 위해 각개전투를 하는데, 열심히는 하지만 효율적이지는 않고, 일이 중첩되어도 제 것이 잘 났다 하고, 구멍이 생겨도 모르쇠 한다는 것이다. 캠프 실무진들의 무력감도 팽배해져 있다고 한다. 동력이 없다는 것.
여기에다 갖다 쓰지 않아야 할 물건(?)들이 슬그머니 복귀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의 신임 대변인으로 내정된 날(9월 23일), 캠프 출입 기자들과 저녁 자리를 하다 만취해 ‘기자 새끼’ 운운한 박 후보의 ‘법사’ 김재원 의원이 복귀했다. 김 의원은 대변인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한 달여 만에 중앙선대위 행복추진위원회 총괄간사로 귀환했다. 이는 김종인 행복추진위 위원장의 작품으로, 일각에 따르면 김 의원은 박 후보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한 뒤 정치 관련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당시 놀고 있던 김 위원장을 고문직으로 모시고 박 후보와 연결해줬다는 것이다. 그런 김 의원을 김 위원장이 살뜰히 챙기고 있다는 후문이다.
뿐만 아니라 안철수 후보의 최측근인 금태섭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안 후보의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논란으로 공보위원직에서 물러났던 정준길 전 위원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국민통합위원회 산하기구의 한 본부장으로 보직을 바꿔 여의도에 재입성했다.
▲ 새누리당엔 문제 인사들이 주요 직책을 맡아 캠프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왼쪽부터 정준길 전 위원, 이정현 선대위 공보단장, 주성영 전 의원, 김재원 의원. |
이밖에도 지금 중앙선대위에는 4·11총선 낙천자가 대거 모이면서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았는데 ‘낙천자 집합소 같다’는 이야기부터 ‘다음에 한 자리씩 차지하려고 쓸모없는 인간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쓴 소리까지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다 박근혜의 ‘입’ 이정현 선대위 공보단장이 사고를 쳤다. 캠프에서는 이 단장이 임명장을 든 순간부터 그의 사고를 예견했다 한다. 그런 그가 야권이 내놓은 ‘투표시간 연장법’과 ‘먹튀 방지법’을 연계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가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덜컥 받아들이니 작정하고 발뺌작전을 펼치고 있다. 당 안팎으로부터 “이정현은 과연 뇌가 있나. 박근혜 낙선의 일등공신이 되려는가”라는 비아냥이 터져 나온다. 이 단장의 ‘퇴장’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박 후보 주변이 ‘명함 천국’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도 새누리당 ‘쇠망’의 한 단면이다. 박 후보는 경선 당시 정책과 비전 중심의 경선을 강조하며 캠프 멤버는 명함도 제작하지 않고 줄 세우는 행사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박 후보의 본선 캠프는 직접 찍어준 명함만 수백 명에, 그 아래 조직이 ‘스스로 파는’ 명함은 수십, 수백만 장에 달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특히 박 후보를 돕겠다고 나선 이들이 역할을 하나씩 맡으면서 ‘박근혜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본부 산하 □□□본부 ☆☆☆위원회~’ 등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들이 또 다단계처럼 밑에 사람을 거느리면서 줄 세우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2만 명, 누구는 3만 명 하는 식으로 세 확장을 자랑하는가 하면 캠프로 불려간 의원 보좌진들은 임명장 만드는 일에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푸념도 있다.
문제는 정체불명의 이들이 ‘박근혜’라는 이름을 들먹이며 장난을 칠 경우 그 후폭풍을 고스란히 당이 떠안아야 한다는 데 있다. 또 예전처럼 물질적(?) 혜택을 줄 수 없으니 활동은 않고 호가호위하는 사람이 늘 가능성도 점쳐진다. 표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까먹는 기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당선될 경우 이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어떻게 교통정리할지도 막막한 형편이다. 이래도 저래도 ‘망조’가 보이는 새누리당, ‘쾌도난마’가 절실한 시점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