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로 만들까요 죽일까요…말씀만”
“내 아내를 죽여주세요.”
지난 22일 서울 성동경찰서는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의 청부살인을 부탁한 남편과 돈을 받고 부인을 살해한 심부름센터 사장을 살인교사와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청부살인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지난 2005년 경찰이 폭행, 살인 등을 일삼는 심부름업체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이후 불법 심부름센터는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심부름센터를 고용한 살인 사건이 또다시 벌어지면서 이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불법 심부름센터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수원시 인계동의 한 주거용 오피스텔 4층. 문이 굳게 닫혀있는 사무실이 하나 있다. 문에는 업체 간판조차 걸려있지 않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 원 아무개 씨(30)가 ‘S 기획’이라는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던 사무실이다. 강도와 강도강간미수 등 전과 14범인 원 씨는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 지난해 5월부터 심부름센터를 운영해왔다.
원 씨는 지난 14일 박 아무개 씨(여·34)를 목 졸라 죽이고 경기도 양주의 한 야산에 시체를 파묻어 유기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가 털어놓은 살해 이유는 충격적이었다. 박 씨의 남편 정 아무개 씨(40)가 “아내를 죽여줄 수 없겠느냐”고 살인청부를 했던 것. 원 씨는 정 씨로부터 총 1억600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박 씨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5년 보험금을 노린 30대 여성이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남편을 살해하는 등 불법 심부름센터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경찰은 집중 단속을 벌였다. 경찰은 보름 만에 불법 심부름센터 302곳을 잡아냈고 이후 불법 심부름센터는 자취를 감춘 듯했다. 하지만 이번 아내 살인청부 사건을 통해 불법 영업을 하는 심부름센터들이 아직도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현재 전국에서 영업 중인 심부름센터는 얼마나 될까.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업체들도 많고,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불법 영업을 하는 심부름센터도 많아 통계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경찰은 대략 3000개 정도의 업체가 운영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자는 10개 심부름센터에 전화를 걸어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손봐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8군데서 “곤란하다”며 거절 의사를 보내왔다. 심부름업체에 연락을 돌려보던 중 발신번호 표시제한이 뜬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지 않던 한 심부름센터였다. 그는 기자에게 범행 대상의 나이와 직업 등을 상세히 물은 뒤 “전치 12주 정도의 폭행을 가하는데 4000만 원 정도 든다”고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했다.
“반신불수를 만들거나 살인도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반신불수는 5000만 원, 살인은 1억 원 이상”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만나서 계약 조건을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에 그는 “의뢰인과는 만나지 않는다”며 “다시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불법 영업을 하는 심부름센터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심부름업체인 ‘D 기획’의 김 아무개 씨를 만났다. 그 역시 “최근 들어 폭행이나 살인을 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온다”고 밝혔다.
청부를 받아 살인이나 폭행을 저지르는 불법 심부름업체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이번 심부름센터 원 씨 살인청부 사건이 터지면서 불똥이 튈까봐 불법 업체들이 잠시 잠적했을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살인사건 중 지난 8월 경기도 용인시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에게 살해당한 사업가 이 아무개 씨(57) 사건이나 지난 5월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살해당할 뻔한 파이시티 법정관리인 김 아무개 씨(49) 사건, 2008년 20대 여성이 내연남의 네 살짜리 딸을 살해해 달라고 심부름센터에 청부했다 붙잡힌 사건 등 청부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들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김 씨는 청부살인은 보통 아는 사람에게 살해를 부탁하거나 지인을 통해 심부름센터나 흥신소를 소개 받아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살인이 워낙 큰 범죄라 비밀보장을 위해 처음 보는 심부름센터에 일을 맡기기보단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뢰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내의 살인교사를 부탁한 정 씨 역시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의 종업원으로부터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원 씨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원 씨와 종업원은 평소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
그러면서도 김 씨는 살인청부를 받아들이는 심부름업체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살인이 벌어지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경찰의 수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되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업체가 많겠느냐”고 반문하며 “아마 계약금만 받고 잠적해버리는 사기 업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전했다.
박 씨를 살해한 원 씨도 처음엔 살인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계약금만 받고 숨어버리려고 했지만 남편 정 씨가 돈을 계속 주며 재촉해 범행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진술했다.
전문가들은 심부름센터의 불법 행위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 심부름센터를 개업하고 활동을 하는 데 제지를 할 아무런 법적 조항이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는 심부름센터를 개설하는데 사업자등록증 외에는 전과 유무 확인도, 자격요건도 제시할 필요가 없다.
한국민간조사협회 박경도 서울총본부장은 이런 심부름센터의 불법 영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간조사원제도’를 입법화해 심부름센터를 제도권 내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OECD 국가 중 민간조사원제도가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며 “민간조사법을 하루 빨리 통과시켜 민간조사원 자격증도 국가자격증으로 인정해 자격조건을 강화하면 부적격자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민간조사법은 17, 18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으나 회기 내 통과되지 못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