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만 원 ‘디올백’ 원가는 8만 원…중국인 노동자 비윤리적 환경 속 저임금 착취 당해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라벨이 붙은 명품을 보면 먼저 무슨 이미지부터 떠오르는가. 혹시 앞치마를 두르고 안경을 쓴 나이든 장인이 작업장에서 손수 가죽을 자르고 재봉을 하는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가.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일부 명품 브랜드의 경우, 장인은커녕 노동 착취를 당한 불법 노동자들의 손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밀라노 검찰이 지난 10년 동안 명품 산업계의 불법 노동 현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각된 업체들은 모두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 브랜드들이었다. 가령 크리스찬 디올, 루이비통,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이다. 지금까지 저가의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노동 착취 및 아동 노동을 동원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처럼 고가의 명품 브랜드까지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전세계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노동법 위반 사실이 적발된 크리스찬 디올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CEO인 베르나르 아르노의 딸 델핀 아르노가 이끌고 있다. 루이비통 다음으로 LVMH에서 가장 큰 패션 브랜드이기도 하며, 지난해 LVMH의 총 매출액 925억 달러(약 128조 5000억 원) 가운데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전세계적인 수요도 높은 편이다.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명품 브랜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성과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그럴까. 은밀하게 감춰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이탈리아 경찰이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디올과 계약을 맺은 가죽 제품 생산업체인 ‘펠레토리아 엘리자베타 양 SRL’과 ‘다비데 알베르타리오 밀라노 SRL’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사 결과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그간 숙련된 장인이 정성스레 만들었다고 믿었던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명품 가방이 사실은 중국인 불법 노동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 밝혀진 작업장의 열악한 환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디올에 핸드백을 제작·납품하는 중국인 소유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중국이나 필리핀에서 이탈리아로 불법 이민 온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정식 노동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15시간 교대 근무를 하면서 쉬지 않고 일했으며, 밤새도록 일하거나 혹은 휴일까지 나와서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일부 노동자들은 공장이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대기 인력으로서 작업장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안전장치가 제거된 기계를 사용하는 일도 많았다.
더욱 놀라운 건 제조 원가다. 하청업체는 이렇게 싼값에 만든 가방을 53유로(약 8만 원)에 디올에 넘겼으며, 디올은 이 가방을 매장이나 백화점에서 2600유로(약 385만 원)에 판매했다. 다시 말해 무려 48배 가까이 뻥튀기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디올은 이런 식으로 얼마만큼의 마진을 챙겼을까. 밀라노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디올은 청구서 대금으로 ‘펠레토리아 엘리자베타 양’에 75만 2881유로(약 11억 1000만 원), 그리고 ‘다비데 알베르타리오’에 73만 7623유로(약 11억 원) 등 총 149만 유로(약 22억 원)를 지불했다. 여기에 48배의 마진율을 적용해보면 소매가로 약 8000만 달러(약 1110억 원)어치라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 말해 무려 1088억 원의 차익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불법 노동 착취 사실이 알려지자 밀라노 법원은 지난 6월 10일, 디올의 가방을 제작하는 LVMH의 이탈리아 법인 ‘매뉴팩처 디올 SRL’을 감독할 특별위원을 임명하고 1년 동안 법원 관리하에 두겠노라고 명령했다. 조사 결과, ‘매뉴팩처 디올 SRL’은 이탈리아에 있는 중국인 소유의 공장과 하청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이 하청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의 이번 조치는 디올에게도 노동 착취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해석되고 있다. 즉, 디올의 형사상 과실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계약업체의 실제 노동조건이나 기술력을 확인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과실로 판단됐다.
이보다 앞서 징계를 받은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사정은 비슷했다. 2023년 12월부터 밀라노와 베르가모 인근에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무허가 하청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밀라노 경찰은 “납품 공장 네 곳을 조사한 결과 29명의 노동자의 신원이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9명이 불법 체류자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두 불법적이고 위생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밀라노 법원 문서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위생 및 건강 조건 이하’의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마니와 위탁 생산을 계약한 ‘조르지오 아르마니 오퍼레이션 스파’가 불법 이민자를 고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이 과정을 통해서였다. 아르마니의 패션 및 액세서리 컬렉션의 생산을 담당한 이 회사는 명목상으로만 적절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사실은 중국 공장에 주문을 외주해 불법으로 그리고 은밀한 방식으로 노동력을 착취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아르마니 라벨이 부착돼 전세계 매장에서 고가에 팔려나갔다.
불법적으로 운영된 중국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휴일을 포함해 하루 14시간 넘게 ‘엄청난 작업 속도’를 강요당하면서 근무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시간당 2~3유로(약 3000~4500원)가 고작이었다. 공장은 이렇게 만들어진 가방을 아르마니 공급업체에 93유로(약 14만 원)에 넘겼으며, 공급업체는 여기에 157유로(약 23만 원)를 더 붙여 250유로(약 37만 원)에 아르마니에 재판매했다. 아르마니가 매장에서 판매한 이 가방의 소매가는 자그마치 1800유로(약 270만 원)다.
밀라노 법원의 문서에 따르면, 이러한 비윤리적 제조 관행은 이탈리아 전역에 만연해 있다. 외국인이 소유한 수천 개의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명품 브랜드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이 제품들에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이 부착되어 있다. ISTUD 비즈니스 스쿨의 비즈니스 및 마케팅 교수이자 명품 산업 컨설턴트인 알레산드로 발로시니 볼페는 “명품 브랜드와 하청업자들 사이의 비윤리적인 사업 관행은 수년 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면서 “30년여 전 내가 패션 및 명품 업계에 입사할 당시부터 그런 소문이 떠돌아다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또한 “이러한 관행은 가죽 제품 공급망에서 더 자주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의류 공급망에서도 드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와 관련, 과거 LA타임스는 “토스카나 지역에서 유명 브랜드의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수천 개의 공장들은 중국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노동자들 역시 중국인으로 채워져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토스카나 지역 곳곳에 커다란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도 명품 브랜드 산업에서 필수적인 톱니바퀴가 된 중국 노동자들이 대거 정착했기 때문이다. 실제 에도아르도 마르조치 경찰서장은 “1990년대 토스카나에서 100개 미만이던 중국 공장, 작업장 및 관련 사업체 수는 2000년대 들어 5300개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LA타임스는 또한 “프라토의 주요 공립병원 산부인과 병동에서는 매일 아침 40명의 아기가 태어나는데 이 가운데 15명이 중국인 아기다”라고도 언급했다. 피렌체 북서쪽에 위치한 역사적이고 산업적인 섬유 중심지인 프라토에서는 합법적인 중국인 거주자가 이 지역 인구의 약 12%를 차지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할 경우에는 25%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까닭에 토스카나 지역은 현재 이탈리아 전역을 통틀어서 중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이처럼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비용 절감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패션업체들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백배 낫다고 믿고 있다.
중국의 값싼 노동 인력은 번거롭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하는 수많은 이탈리아 장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3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화려한 가죽과 부드러운 스웨이드로 최고의 핸드백을 만드는 안드레아 칼리스트리는 “경쟁이 너무 심하다. 아니,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하다”라고 토로했다.
중국인이 이탈리아에서 만든 값비싼 명품 가방이 이탈리아인 노동자가 만든 가방 옆에 전시되는 현실에 대해 칼리스트리는 “하나는 생산하는 데 20유로(약 3만 원)가 들었고, 다른 하나는 250유로(약 38만 원)가 들었다. 하지만 가격표는 같다. 이건 명백히 잘못됐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어떤 고객이 가방 하나에 1000유로(약 150만 원)를 지불한다면 그 고객은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기술은 물론 존경받는 법적 절차를 기대할 권리가 있다”면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란 전통, 노하우, 기준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비단 디올이나 아르마니 등 일부 업체만의 관행은 아니다. 익명을 원한 두 명의 명품 브랜드 분석가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일반적으로 고급 가죽 가방의 총 마진은 80~85% 정도다”라고 추정했다. 더욱이 명품 브랜드 가방의 가격이 지난 3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함에 따라 마진율은 더 높아졌다. 가령 크리스찬 디올의 ‘레이디 디올’ 가방과 ‘프라다’의 ‘클레오’ 가방의 가격은 각각 37%, 35%씩 올랐으며, ‘샤넬’의 클래식 플랩백 가격은 2019년 11월보다 무려 74% 올랐다.
명품 브랜드들은 이러한 가격 상승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인플레이션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명품 가격은 실제 생산 비용보다는 브랜드 파워와 만족도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분석가는 “제품의 비용을 정하고 그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브랜드가 있고 그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라고 꼬집었다.
페라가모·프라다까지…의류산업에 만연한 노동 착취
사실 이런 논란은 고가의 명품 브랜드에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강제 노동 및 아동 노동, 노동력 착취,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과 같은 문제들로 논란이 된 브랜드들은 많았다. H&M, 자라, 갭, 유니클로 등 패션업체들도 중국, 인도, 에티오피아, 인도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긴 마찬가지였다.
갭의 경우에는 16년 전부터 이런 문제가 꾸준히 보고됐었고, 이를 계기로 문제를 바로잡는 한편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는 새로운 공급업체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스웨덴 기업인 H&M 역시 미얀마에서 유사한 노동 착취를 한 것으로 알려져 조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 현지 공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런던 소재 비영리 단체인 ‘노우더체인’의 대표인 이안 클라크는 “세련된 외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꼬집었다. ‘노우더체인’은 노동력을 착취해 제품을 생산하지 않도록 공급망을 개혁한 정도를 기준으로 기업의 순위를 매기는 비영리 단체다. 요컨대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을 준수하고 노동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뚜렷한 전략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0점에서 100점까지 점수를 매겼다. 분석된 65개 기업들 가운데 거의 절반이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실제로 노동자들을 위한 해결책을 공유한 곳은 약 22%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니 전체 평균 점수는 21점으로 매우 낮았다. 특히 명품 브랜드들이 낮은 점수를 기록했는데 가령 프라다는 9점, LVMH는 6점을 받았고, 페라가모는 4점을 받는 데 그쳤다. 반면, 아디다스, 룰루레몬, 갭 등과 같은 의류 브랜드는 공정한 노동 관행을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돼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공장 노동자들이 서구의 노동 기준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룰루레몬의 경우에는 가장 높은 점수인 63점을 받았다. 아디다스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에 있는 공장에서 협력업체들에게 윤리적인 고용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역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디다스와 룰루레몬 모두 공급망의 채용 대행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꼽힌다. 대신 이들 업체들은 노동자들과 직접 고용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이키나 푸마와 같은 다른 의류 브랜드들 역시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은 브랜드는 갭(올드 네이비, 바나나 리퍼블릭 포함), H&M 등이 있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보도한 시애틀의 패션 전문지인 ‘nfm 매거진’은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제시했다. 먼저 공급망이 투명하면서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브랜드를 지원할 것, 그렇지 않은 브랜드는 공개적으로 비난할 것, 소셜미디어, 리뷰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로벌 브랜드보다는 윤리적 경영 방침으로 운영되는 지역사회의 소규모 패션 브랜드를 지원할 것 등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