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빠진 사건 2021년에야 범인 붙잡혀 징역 18년…“사죄 안 해, 지은 죄 마주하고 책임 제대로 져라”
#막내아들 잃은 아버지의 절규
2010년 10월 4일, 쓰쓰미가(家) 4형제 중 막내 쇼타는 17세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급하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쇼타가 칼에 찔린 것 같다”며 울먹이는 남학생이 서 있었다. 아버지는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차의 사이렌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들바들 떨면서 인파를 해치고 다가가자 막내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약 한 시간 뒤 병원에서 쇼타의 사망이 확인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실혈사. 쇄골 부근부터 찔린 상처는 폐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 당시 쇼타와 함께 있던 여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 두 사람은 쇼타의 집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자판기 앞에서 마주쳤다. 쌀쌀한 저녁이라 따뜻한 밀크티 두 캔을 뽑아 벤치에 앉았다고 한다. 쇼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여학생은 조용히 맞장구를 쳤다.
인적이 드문 길이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걸어오더니 두 사람 앞을 지나치다 근처에 걸터앉았다. ‘저 사람 계속 있네.’ 앉아서 그저 바라만 보는 남자를 수상하게 여긴 여학생은 쇼타에게 속삭였다. 그때였다. 남자가 터벅터벅 앞으로 오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쇼타의 목 언저리를 흉기로 내리쳤다. 쇼타는 쓰러지면서 “도망치라”고 외쳤고 여학생은 달아났다. 손이 떨려서 휴대폰 번호를 누를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경찰에 신고를 마쳤으나 여러 번 흉기에 찔린 쇼타는 차갑게 식어갔다.
수사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경찰은 원한 관계인지 무차별 범행인지 동기는커녕 용의자를 좁히지 못했다. 아들을 허망하게 잃은 아버지 사토시 씨에게는 애끓는 시간이었다. 몸무게가 17kg이나 줄었다. 사건의 목격자를 찾는 전단부터 배포했다. 하루에만 27km를 걷기도 했고, 나눠준 전단 매수는 6만 장에 이른다. 다른 사건의 피해자 유족과도 교류하게 됐다. 그럴 때마다 ‘법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실감하곤 했다. “아들이 집단 폭행당해 목숨을 잃었는데 살인죄가 아니라 상해치사죄가 적용됐다” “내 아이가 살해된 사건의 수사기록을 열람할 수 없다” 등등 유족들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안고 있었다.
#뻔뻔한 살인범, 정신질환 감형 주장
미궁에 빠졌던 사건이 움직인 것은 2020년이다. “주위에 ‘사람을 죽였다’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라는 정보가 효고현 경찰서에 입수됐다. 탐문 수사 끝에 경찰은 2021년 8월 4일, 남성 A 씨(사건 당시 17세)를 쇼타 군을 살해한 용의로 체포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A 씨는 아이치현에 거주하며 공항에서 아르바이트 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어째서 10년간 A 씨는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걸까. 원래 A 씨는 고베시와 멀리 떨어진 아오모리현에 살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해 1월, 교제하던 여학생에게 폭력을 휘둘러 고등학교를 퇴학당하자 4월 고베시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교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 대안학교에 다니던 중 범행을 일으켰던 것. 그러나 사건 발생 직후 부모와 함께 지바현으로 이사해 수사선상에서 교묘히 빠져나갔다.
2023년 6월 살인죄로 기소된 A 씨의 공판이 시작됐다. A 씨는 재판에서 “또래를 여러 차례 찌른 것은 사실이다.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는 모른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환청과 망상에 시달려 범행을 저질렀다. 살해할 뜻은 없었다”며 살의 고의를 부인했다.
이날 피해자 참가제도를 이용해 공판에 참가한 쇼타의 아버지는 피고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쇼타가 칼에 찔렸을 때 얼마나 아팠을지 괴로웠을지 아느냐”고 묻자 A 씨는 “경험한 적이 없어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잠시 후 “우리 쇼타를 돌려달라”고 흐느끼는 쇼타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졌다.
재판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살의가 있었는지, 형사책임능력을 물을 수 있는 정신상태였는지 여부다.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변호인 측은 “징역 8년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도망치는데도 뒤쫓아 등을 찌른 정황을 보면 분명히 살해 의도가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신감정의 결과를 근거로 “피고가 주장하는 환청이나 망상 등의 정신적 장해는 없었다”고 판단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배상액 못 받더라도 소송 건 까닭은?
해당 사건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피해자 쇼타의 유족들은 A 씨와 그 부모에 대해 “A 씨가 어렸을 때부터 폭력 성향이 있었는데도 부모가 충분히 감독하지 않았고, 사건 직후에 이사해 범행 발각을 늦췄다”며 1억 5000만 엔(약 13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6월 10일 민사재판이 시작되자 다시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쇼타의 아버지 사토시 씨는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납득할 만한 범행 동기의 설명이나 사죄가 없었다”면서 “가해자는 지은 죄를 마주하고 진심으로 사과해 달라”고 밝혔다. 그는 “살인사건 등으로 가해자 측에 손해배상이 명령돼도 대부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금액으로 나타내는 것 자체가 유족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당신들은 그만큼의 일을 저질렀고 그 책임을 제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네티즌들은 “드디어 범인이 잡혔지만, 사과조차 없다. 유족의 마음을 생각하면 배상 청구는 당연한 권리”라며 응원하는 분위기다. 한 네티즌은 “일본의 법이 가해자에게 기울어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범죄자들이 감형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정신질환이 있는 심신미약자들에 대한 감형도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편 FNN뉴스에 따르면, 가해자 A 씨와 부모 측은 ‘법정에서 다투겠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