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만 들어도 공포심…미진한 보상도 골치”…폭우 예보 확인 후 모든 주민 자체 ‘대피령’
#떨치지 못한 '그날'의 악몽
일요신문이 1년 만에 다시 찾은 벌방리는 마치 '전후복구' 작업이 한창인 듯 어쩐지 어색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관련기사 [르포] '대피한 후에야 대피 문자가…' 산사태로 무너진 예천 벌방리). 새롭게 다시 지어진 집들도 있었으나 극히 일부에 그쳤다. 대부분의 건물은 폭격을 맞고 그대로 방치된 모습처럼 비쳤다.
7월 9일, 이날도 주민들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쏟아진 폭우에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누적 강우량이 244.4mm에 달한 날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같은 산사태나 하천 범람 등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빗소리에도 '트라우마'가 생긴 탓에 전날 밤부터 마을 아래 노인회관으로 대피해 불안 속에 쪽잠을 청했다고 한다.
80대 나이인 유순희 씨는 "작년에 산이 무너지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나"라며 "장마철이 되니 영 불안해서 지내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유 씨는 특히 "휴대폰에 이런저런 주의·경보 알림이 울릴 때면 공포심에 화들짝 놀란다"면서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마을을 마구 할퀸 수마로 벌방리 주민들은 무려 17명의 이웃을 잃었다. 사망자만 15명, 실종자가 2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생사 여부도 알지 못한 채 떠나보낸 실종자들을 떠올리면 유난히 심경이 무겁다. 공교롭게도 두 실종자는 모두 귀농 목적으로 내려와 새 삶을 시작하려던 이들이었다.
80대 윤혜식 씨는 "한 실종자는 부자가 동시에 물살에 떠내려갔는데, 60대 아버지가 서른 살쯤 된 아들을 먼저 살리려고 애쓰다 결국 홀로 사라지고 말았다"며 "도시 사람들이 이 작은 시골 마을까지 와서 무척 부지런히 일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떠올렸다.
실종자 2명은 김 아무개 씨(남·69)와 윤 아무개 씨(여·62)다. 윤 씨의 시동생 60대 이재범 씨는 '그날'의 악몽이 여전히 또렷한 모습이었다. 이 씨는 "형님이 정년으로 직장에서 퇴직한 후 사과 농사를 해보자며 형수님과 이곳에 오셨고, 저희 부부도 함께 따라 왔는데 귀농 2년 만에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고 했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 이 씨는 "사태 당시 저와 형님은 물살에 떠내려오다 나무 등에 걸려 간신히 빠져나왔고, 제 아내는 화장실로 대피했는데 집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곳이라 목숨을 건졌다"며 "아비규환 속에서 결국 형수님 모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이제까지 1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간신히 입을 뗐다.
씻기 힘든 상처를 입은 벌방리는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비가 내릴 때면 자체적으로 순찰대를 가동하고 '주민 대피령'을 발령하는 등 항시 '비상 대기' 상태다. 일요신문 방문 하루 전에도 벌방리 순찰대가 폭우 예보를 확인하곤 집집을 돌며 대피령을 전달, 주민들은 일사불란하게 마을회관으로 모일 수 있었다.
#창고가 재산인데…"무허가라 보상 불가"
예천군에 따르면 벌방리를 포함한 지역의 수해 피해 복구 사업에는 1922억 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복구율은 50%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주민들과 예천군이 각각 파악한 파손 주택 등의 감정평가액이 차이를 보여 이를 조정하는 시간이 꽤 소요된 까닭에서다.
현재 벌방리 주민들 가운데 11가구는 마을 입구에 마련된 28㎡(약 8평) 크기 컨테이너형 임시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2025년이면 마을 주민 상당수가 그 바로 옆 자두농장으로 터를 옮길 계획이다. 예천군이 해당 농지의 각 필지를 사들이며 새 동네 조성 채비에 나선 상태기 때문이다.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자두농장 일부 소유주가 보상금 등에서 예천군과 이견을 보여 수용 절차가 예정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단, 해당 소유주들도 마을 사정을 고려해 땅을 내놓는 데에는 동의한 만큼 이주 자체가 무산되는 최악의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70대 정 아무개 씨는 "임시주택에 빈손으로 달랑 몸만 들어왔는데, 냉장고와 싱크대 등은 있어 큰 불편은 없다"면서도 "그렇지만 처마가 없어서인지 비가 들이칠 때가 있고, 내 집도 아닌 데다 크기도 워낙 작아 하루라도 빨리 자두농장의 새 집으로 옮기고 싶다"고 토로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현재 가장 큰 화두는 단연 보상 문제다. 정부와 예천군 등에서 위로금과 수재의연금 등 명목의 지원은 받았다. 하지만 생계 터전을 통째로 잃어버린 입장에선 부족할 수밖에 없는 규모다. 각 피해 세대에는 정부 규정대로 5200만~1억 300만 원가량 지원이 이뤄졌는데 1억 원 이상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대개 1억 원 이상 지원받은 경우는 사실상 '집 전체'가 무너진 곳만 해당이 된다고 한다. 전체가 무너졌든, 일부가 붕괴됐든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돼 버렸긴 마찬가지다 보니 주민들은 속내가 불편하기만 하다.
'보상 기준'에 관한 불만도 크다. 통상 시골에선 각종 살림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조성한 집이 흔하다. 하지만 대부분 허가를 받지 않고 만든 탓에 이곳서 발생한 피해는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주민들은 "쌀이며 뭐며 웬만한 살림거리가 다 창고에 있는데, 불법 건축물이라 보상이 안 된다더라"며 섭섭함을 표시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 역시 더 남았다. 예천군과 주민들의 감정평가액 차이 탓에 이미 폐가가 된 집들도 1년이 지나도록 허물지 못한 상태. 이를 둘러싼 논의가 자칫 길어질 수도 있다. 이미 주민들은 최근 급등한 건축비 부담도 일정 부분은 감내하기로 한 상태다.
세입자들 눈에는 이마저도 부러운 장면이다. 집과 땅이 없어 임시주택에 간신히 입주한 것 외에는 보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임시주택도 2년 거주가 제한됐으므로 이들에겐 남은 1년 이후가 막막할 따름이다.
박우락 벌방리 이장은 "그래도 마을을 되살리고, 자두농장이든 어디든 이주할 사람은 하루 빨리 옮기는 게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마을이 보상 문제로 정부와 예천군 등과 갈등까지 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7월 안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매듭이 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좌절이 희망이 된다면…"
유례가 없던 산사태로 주민들은 기후위기를 새삼 깨닫게 됐다고 한다. 벌방리에서 태어나 지내온 많은 주민은 "적어도 100년 사이 이만한 산사태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개간 등 아무런 작업이 없던 산이 돌연 무너지고, 대부분 평지인 마을의 끝까지 바윗돌들이 굴러온 이유가 이상기후가 아닌 한 설명이 안 된다고.
주민들 말에 따르면 과거 수십여 년 폭우 때는 인근 하천 범람이 피해의 전부였다. 그 역시 무려 30년 전쯤 발생한 일이었으나, 옛 기억 때문에 아직도 비가 오면 하천에 내려가 상황을 지켜보는 노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산사태는 아예 생각지도 못했고, 실제 산림청이 지정한 '산사태 취약지역'에서도 벌방리 산은 제외돼 있었다.
벌방리는 뒤늦게 산사태 재발을 막을 사방댐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착공한 작업은 약 70% 진행된 상태다. 완공은 늦어도 올해를 넘기진 않을 전망이다. 주민들은 그나마 절반 이상 진행된 공사 덕분에 올해 폭우에는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며 대체로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이 밖에도 마을에는 234.97㎡(71.08평) 규모 다목적 시설 건립도 예정돼 있다. 박 이장은 이를 71.5평으로 늘리는 게 간절한 바람이란다. 재난이 발생한 7월 15일을 기록하는 공간을 조성하고, 전국의 이장 등 크고 작은 마을 관계자들을 모아 이상기후에 따른 산사태의 참상과 대응 및 예방법 등을 교육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다.
박 이장은 "산사태 직후 찾아온 국회의원들이나 경북도, 예천군 관계자 등에게 이런 계획을 여러 번 전달했다. 하지만 이제야 다목적 시설 건립 정도를 약속받았다"면서 "재발을 막을 재난 관련 교육이 꾸준히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좌절이 희망이 되도록 하는 데에도 정부와 지자체에서 도와주십사 꼭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이장은 이어 "스피커가 마을 중앙에 설치된 탓에 귀가 조금 어두운 노인 분들이 대피령 등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문제도 이제야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며 "각 집안마다 스피커를 설치하는 식인데, 늦게라도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는 보다 선제적이고 지속적 가능한 지원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손주 같은 채 해병 어떻게 맨몸으로…"
경북 예천군 벌방리 주민들한테는 내려놓기 힘든 마음의 짐이 또 있다. 벌방리 등 예천군 산사태로 실종된 이들을 찾으려다 지역의 보문교 밑 내성천 급류에 휩쓸려 숨지고 만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당시 일병)이다. 일요신문이 벌방리를 찾은 지난 7월 9일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해병’ ‘군인’ 얘기에 바둑알 내기 화투 놀이를 잠시 멈추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모두가 채 해병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머니들은 "우리 마을 사람들을 살리려다 손주 같은 청년을 잃고 말았다"며 "이웃 17명을 잃은 우리도 이러한데, 하물며 이 청년 부모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몹시 쓰리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산사태 직후 벌방리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직접 찾아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한 터. 정작 이제는 마을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채 해병 사건으로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현상을 바라보며 온통 심란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취재팀과 대화한 한 할머니는 "정치 문제는 잘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우리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에 TV에서 대통령이며 정치인이며 계속 다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복잡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산사태 때문에 이 시골에 기자들은 물론 군인들이 탱크까지 끌고 와 사방팔방 도왔다"며 "해병대가 귀신도 잡는다지만 여러 사람이 물에 휩쓸려 죽었는데, 손주뻘 군인들이 어떻게 맨몸으로 뛰어들었는지 통 안타깝다"는 심경을 전했다.
7월 19일은 채 해병 순직 1주년이 되는 날이다. 7월 9일 폭우 직후 다시 찾은 내성천은 높은 수위에 흙탕물로 가득 차 매우 세차게 꿈틀거리며 흘러갔다. 진입은 당연히 금지됐고, 혹시 모를 구조를 대비한 구명조끼 등도 일대에 갖춰져 있었다.
예천=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