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한동훈, 총선 고의 패배 의심” 막장 전대로…김 여사, 당무개입 넘어 국정농단 의혹까지 고개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최대 화두는 ‘한동훈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이다. 정책과 비전, 집권당으로서의 국정 운영 방향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자 당 지도부는 자제를 촉구했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8일 회의에서 “전당대회가 과도한 비난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일부 구성원이나 지지자들의 당헌·당규에 어긋나는 언행은 선관위와 윤리위를 통해 즉시 엄중한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막판 뒤집기를 시도해야 하는 경쟁 후보들은 네거티브를 멈추지 않고 있다. 원희룡 후보는 7월 10일 부산에서 열린 합동연설회 이후 “설사 주변이 다 반대한들 영부인이 집권여당 책임자에게 (대국민 사과) 얘기를 했다면 의사소통을 통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한줄기 빛, 최후의 희망이 열린 것”이라며 “없는 것도 만들어야 할 절박한 상황에 혹시 총선을 고의로 패배로 이끌려고 한 것 아닌지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경원 후보 역시 “한 후보가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는 전당대회 모습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줄 수밖에 없다”며 “더 이상 외부세력이나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전당대회여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자 논란이 전당대회가 한창인 현 시점에 떠오른 배경과 경위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반년이 지나 공개된 것은 당대표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이다. 한 후보 역시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의아하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갖고 있던 사람은 당사자인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후보뿐이다. 한 후보로서는 전대 과정에서 이 사안이 알려져 얻는 이득이 없다. 김 여사 및 친윤계가 관련 내용을 공론화했다고 보는 이유다. 친윤계 핵심 인사들이 지난 6월부터 텔레그램 메시지 캡처본을 서로 공유하며, 이슈를 재점화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눈길을 끄는 점은 처음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후보에 문자 메시지를 보낼 당시엔 윤석열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번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김규완 CBS 논설실장은 7월 4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김 여사가 임의로 개인적으로 친하니까 (한 후보에) 문자를 보냈다. 대통령이 뒤늦게 이걸(읽씹) 알고 격노를 했다. 한 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김 여사가 한 후보에 문자를 보낸 것은 1월 15일과 19·23·25일 등 4일에 걸쳐 다섯 차례다. 윤 대통령은 중간에 해당 사실을 알고, 1월 21일 이관섭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 후보에 보내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 한 관계자는 “김 여사는 과거 검찰총장 부인으로 당시 차장검사였던 한 후보와 300개가 넘는 카톡을 주고받아 한 차례 논란이 된 적 있다”며 “그때도 부적절했지만, 지난 1월 두 사람은 대통령 부인과 여당의 비대위원장 사이였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친했다 해도 윤 대통령도 모르게 연락을 취해서 되느냐. 총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국민 사과 결정은 윤 대통령 및 대통령실과 충분히 의논 후 여당에 전달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김 여사의 예측 밖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여사는 7월 3일 저녁 검은 옷을 입고 ‘시청역 참사’ 추모 공간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국화꽃을 바닥에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시민들이 써놓은 글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 일정은 김 여사가 알리지 않아,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방문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2022년 10월에는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의 SNS를 통해 그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안나의 집’에서 김 여사가 두 달 전인 같은 해 8월 봉사활동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실이 뒤늦게 파악해 확인해주는 일도 있었다.
이외에도 취임 초인 2022년 5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에서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반려동물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김 여사 팬클럽을 통해 최초 공개됐다. 당시 대통령실은 이 사진의 촬영 여부도 모르고 있다가, 팬클럽에 사진이 공개된 이후 관련 사실을 인지했다.
문재인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민주당 전직 의원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오드리 헵번도 아니고 몰래 대통령실을 나와 일정을 소화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김 여사 주변에 경호인력과 보좌인력이 함께 대동한다. 이들은 공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사전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을 리 없다. 뻔한 거짓말의 기획된 연출”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만약 대통령실이 김 여사의 비공개 일정을 정말 몰랐다면, 대통령실이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건희 여사가 전면에 부각될수록 윤석열 대통령 국정운영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증폭되고 있기 때문. 김 여사의 디올백 명품수수 사건과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6월 10일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에 대해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다”며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최장 90일인 법정 처리기한을 넘긴 116일(업무일 기준)만에 내린 결론이다.
지난 대선 전부터 불거졌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김 여사는 검찰에 4년째 소환조사 한 차례 받지 않았다. 오히려 김 여사 계좌를 관리했던 주가조작 2차 작전 선수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의 핵심인물로 떠오르면서, 채 해병 사건 수사외압 논란이 김 여사에게까지 번져가는 양상이다(관련기사 이종호가 말한 ‘VIP’는 누구?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녹취록 공개 파장).
야당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청원에 대해 청문회’를 19일과 26일 개최하기로 의결했다. 19일에는 채 해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주제로, 26일은 김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및 명품백 수수 의혹이 다뤄질 예정이다. 특히 법사위는 증인으로 김건희 여사와 모친 최은순 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한국갤럽이 7월 9일부터 11일까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25%에 그쳤다. ‘잘못하고 있다’는 68%를 기록했다. 지지율이 4월 총선 이후 석 달째 20%대 초중반에 머물고 있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들에게 선택의 이유를 묻자 ‘김건희 여사 문제’와 ‘해병대 수사외압’이 각각 4%로 집계됐다(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번 ‘문자 논란’도 대통령실과 김 여사 측의 전당대회·당무 개입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7월 11일 회의에서 “대통령 배우자라도 민간인에 불과하다”며 “권한 없는 민간인이 국정운영에 개입하는 것은 국정농단”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김 여사의 총선 개입 의혹과 댓글팀 운영 의혹, 당무개입 의혹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며 “김 여사가 직접 해명하라”고 압박했다.
야권에서는 김 여사가 문자를 보낸 정치권 인사가 한 후보뿐이겠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 인터뷰에서 “김 여사가 한 후보에게도 문자를 많이 보냈지만, (다른) 장관들한테도 많이 보냈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며 “그것이 밝혀지면 국정농단으로 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