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수호 용사 묘역 추모에서 드러난 진영적 사고보다 앞선 ‘인간다움’
김동연 지사는 현충탑에 참배하고 묘역으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413묘역이었다. 413묘역은 2002년 제2연평해전 전사자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가 머무는 묘역이다.
김 지사는 제2연평해전 영웅들의 묘소를 천천히 살폈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묘소에서 그들을 추모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 묘역도 찾아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의 추모비에 헌화했다.
김동연 지사는 채수근 해병 묘소도 찾았다. 채 해병 묘역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김 지사는 현충원을 나온 후 “반드시 진상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스무 살, 젊은 해병의 묘소 앞에서 굳게 다짐했다”고 뒤늦게 밝혔다.
이어 천안함 46용사가 있는 308묘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도 김동연 지사는 46용사의 묘소를 일일이 살폈다.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상석을 닦았다. 김 지사는 같은 묘역에 있는 한주호 준위 묘소도 찾아 추모를 이어갔다.
이날 김 지사가 추모한 묘소는 대부분 서해수호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이들의 묘소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2016년부터 정부는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다만 서해수호의 날은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일관되게 대북 유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선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북한 정권에 경고를 보내는 서해수호의 날이 당의 정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이를 뒷받침하듯 2018년, 2019년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전원 참석한 2023년 행사에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민생 일정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개별 사안을 들여다보면 더 그렇다. 천안함 사건 당시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정부 입장을 믿을 수 없다며 자침설, 좌초설 등의 음모론에 편승하기도 했다. 정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생존 장병들을 모욕하고 상처 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작가는 국민참여당 소속이던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에서 “이것(천안함 피격)은 너무나 치욕적인 사건이고 군 형법에 따르면 NLL이라는 적전 지역에서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최고 무서운 형을 받게 돼 있다. 경계에 실패해 얻어맞고 도주하는 적을 추적하지도 못했는데 뭘 잘한 일이 있다고 무공 자랑하듯 발표합니까”라고 말했다.
2023년 6월에는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지명된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해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라는 글을 남기며 미국이 천안함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의해 피격됐다는 결론이 난 지 10년이 넘었다.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은 천안함 피격이 누구 소행이냐는 유족의 질문에 “천안함 피격사건은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에는 아직도 천안함에 대해 다른 견해를 지닌 이들이 있다. 일부 극단적인 견해들은 숨진 이들을 폄훼하고 때론 왜곡하기도 한다.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기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김동연의 현충원 방문은 특별했다. 김동연에게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국가와 국민을 지킨 영웅들일 뿐 자신이 속한 정치 지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김동연은 2023년 경기도지사로서 처음 맞은 서해수호의 날에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도발을 일일이 언급하며 “생명을 바쳐 조국의 바다를 지킨 55용사들께 경의를 표한다. 서해 영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바다뿐 아니라 땅과 하늘에서도 확고한 대비 태세로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고 했다.
올해 서해수호의 날에도 “최후의 순간까지 소임을 다했던 영웅들의 헌신을 기리며 굳건한 안보 위에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데 진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원인을 찾고 서로에게 책임을 추궁할 때 김동연은 그저 추모했다. 김동연에겐 국가를 위해 바친 그들의 생명이 먼저 보였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