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불리다 탈난 후 눈물의 ‘다이어트’
▲ “허리띠 졸라매!”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한 정준양 회장은 계열사 편입 등 급격히 몸집을 불렸던 1기와는 달리 비상경영체제를 주문했다. |
지난 10월 23일 포스코는 기업설명회에 개최하며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액 15조 7390억 원, 영업이익 1조 620억 원. 이 가운데 포스코 단독으로 보면 8조 9100억 원 매출에 819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 영업이익은 무려 24.6%나 감소하며 영업이익 1조클럽에서 탈락했다. 경쟁사인 현대제철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9.40% 하락한 것과 비교된다. 경기가 좋지 않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1등기업의 영업이익률 하락이 2등기업보다 더 큰 것. 포스코 측은 여전히 “철강경기 침체 탓”만 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의 3분기 조강생산량 966만 톤과 제품판매량 893만 톤을 감안할 때 ‘철강경기 침체’만 탓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년 동기 대비는 물론 전분기(2분기)에 비해서도 오히려 늘어난 때문이다. 포스코 측도 “시장개척과 제품개발을 통해 판매량이 소폭 상승했다”고 인정했다. 포스코 관계자에 따르면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제품판매량보다 “제품 가격 하락이 큰 원인”이다.
정준양 회장은 진작부터 포스코의 비상경영체제를 주문했다. 포스코의 비상경영체제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5월, 비상상황을 알리는 ‘S4’ 단계를 알리면서다. 정 회장은 평일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하는 삼성과 임금 30%를 삭감키로 한 동부제철을 예로 들며 “주인 의식을 갖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근무강도를 높이는 데 임직원 모두가 노력하자”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핏 보면 정준양 회장이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내세우는 ‘4조2교대 근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들릴 우려도 있다. 4조2교대는 ‘포스코 역사상 가장 좋은 업적’이라던 근무제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4조2교대 근무제는 현장근무자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토요일 출근이나 평일 조기 출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았고 정해진 바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런데 연임에 성공하고 2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보인 정준양 회장의 행보는 1기와 많이 다르다. ‘1기가 몸집 불리기와 과시였다면 2기는 불린 몸집을 줄이고 자기반성하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M&A(인수·합병)와 계열사 편입을 거듭하며 급격히 몸집을 불렸던 1기와 달리 2기는 시작부터 잔뜩 위축된 모습을 보이며 수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1기 재임기간에 2배 이상 늘려놓은 계열사를 대폭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계열사들을 정리해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뿐 아니라 외면적으로 몸집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M&A를 적극 활용하겠다”며 어마어마한 투자금액을 쌓아놓았던 1기와 달리 2기에는 공격적인 투자는커녕 비상경영과 원가절감을 외치며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2010년 시무식에서 투자비 명목으로 마련했다고 밝힌 9조 3000억 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뚜렷하지 않고 되레 차입금과 부채가 늘어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하락시키기까지 했다. 지난 4월 포스코는 부랴부랴 SK텔레콤·KB금융·하나금융 등 보유 지분을 매각해 5800억 원가량 현금을 확보했다. 포스코 측은 “더 이상 지분을 매각할 생각은 없으며 현금 2조 5000억 원 정도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재무구조는 걱정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부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포스코가 되풀이하는 말은 “철강경기 침체 탓”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삽시간에 위축된 세계경기가 풀릴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철강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건설과 조선업황이 급속히 가라앉으면서 포스코가 받은 타격이 심했다. 포스코 홍보 관계자는 “그나마 세계 유수의 철강회사들에 비하면 포스코는 굉장히 선방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것은 2008년이고 정준양 회장이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한 때는 2009년이다. 경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만일을 대비해 잔뜩 몸을 움츠린 대기업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이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 것이라면 경영자로서 판단 착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준양 회장은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사장 출신으로 건설업에도 꽤 조예가 있는 인물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 회장은 2010년 오히려 더 적극적인 경영 비전을 밝혔다. 2010년 1월 4일 시무식에서 정 회장은 “인수합병(M&A) 기회를 적극 활용하겠다”며 “올해 투자비를 지난해보다 2배가량 많은 9조 3000억 원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M&A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침체되던 판에 현금 확보 능력에서 으뜸으로 꼽힌 포스코가 M&A에 적극성을 보였으니 M&A업계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며 “국내에서 M&A 시장이 열릴 때마다 포스코가 늘 유력 후보 물망에 오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실제로 포스코는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나가며 웬만한 재벌보다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다. 정 회장이 취임한 2009년 36개였던 포스코 계열사는 올해 4월까지 70개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정 회장 취임 후 포스코 계열사로 편입된 회사는 무려 40개이며 새로 설립된 회사도 29개가 됐다(<일요신문> 1063호 보도). 계열사가 늘어난 만큼 매출과 자산도 확 늘었다. 계열사 증가와 매출 증가는 ‘비전2020’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는 다시 정 회장 연임을 위한 사전포석이었다는 해석도 낳게 했다.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포스코의 임원들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 중 하나는 “다음 분기에는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였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번번이 빗나갔다. 정준양 회장과 포스코의 예상이 다음 분기 실적 발표 때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