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2년 로드맵 빠진 공급 계획 실효성 부족…비아파트 공급보다 전세사기 예방책 먼저 만들어야
#대책 내놨는데 오히려 가격은 올라
정부가 지난 7월 18일 제7차 부동산 관계장관 회의를 개최해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관계장관 회의가 열린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이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주요 골자는 △2만 가구 규모의 수도권 인근 그린벨트 해제 △공공 매입임대 주택 1만 가구 추가 공급 △2029년까지 3기 신도시 등 23만 6000가구 공급 등이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주택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를 고려해 주택 공급 물량을 늘려 가격을 안정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월 11일 국토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국내 경제,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인구·가구 문제가 집값을 몇십 퍼센트씩 상승시킬 만한 힘이 없는 상황”이라며 “내년부터 3기 신도시 등 상당한 물량의 주택 공급이 예정돼 있고 최근 서울 집값의 상승세는 지역적,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잔 등락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고금리 지속과 공사비 상승, 수요 계층이 공고하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정부의 대책 발표 이후 집값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25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7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주 대비 0.30% 상승했는데 상승폭이 2018년 9월 둘째 주 이후 5년 10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52주로 환산하면 연간 집값의 15.6%가량이 오르는 가파른 속도로 ‘패닉 바잉’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현재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가는 18주 연속 상승세다.
정부는 7월 25일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기재부·국토부·행정안전부·금융위원회가 참석하는 ‘제1차 부동산 시장 및 공급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었다. 8월 발표 예정인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는 △절차 단축을 통한 도심 정비사업 신속화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 주택공급 조기화 △수도권 내 추가 택지 확보 △비아파트 공급 확대 등이 담길 전망이다. 또 공사비 갈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전문가 파견·중재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이 시장을 진정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집값이 점점 탄력을 받으며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수요자들의 불안 심리 때문인데 정부 대책이 이를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수요자들의 관심은 올해와 내년에 쏠려 있다”며 “지금 안 사고 기다리면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 어디에 얼마나 분양받을 수 있겠다 정도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충분히 나와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 역시 “막연한 계획보다는 현재 계획돼 있는 곳들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분양을 할 수 있냐에 초점을 맞췄어야 한다. 수백만 호씩 짓겠다며 백날 발표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신규 택지를 조성할 때가 아니라 미분양 이슈부터 해소해 막혀 있던 공급 문제를 차례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미분양을 해소하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를 처리하려면 집과 땅을 가격을 낮춰서 팔아야 하는데 정부가 이런 방식은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주택 안정화 대책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번 정부도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공급 대책보다는 미래 시점에 공급을 확대하는 방향 위주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대책 발표가 오히려 주택 시장 안정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불안감으로 전환하면서 매수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인만 소장은 “수도권은 규제지역으로 묶어버리고 지방 미분양 주택은 5년간 양도세를 면제하는 식으로 파격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수요자들의 기억에 제대로 남지도 않는 대책이 반복될수록 신뢰만 저하되고 집값은 더욱 가파르게 뛸 것”이라고 제언했다.
#순서가 틀린 비아파트 공급 대책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7월 넷째 주 기준 62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높아진 전세 가격은 다시 매매 가격을 밀어올린다. 특히 아파트 전셋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데는 비아파트 시장 침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규모 깡통전세·전세사기 여파로 현재 비아파트 시장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아파트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이 얼어붙으면서 공급도 대폭 위축된 상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3년 빌라 매매거래량은 14만 3242건으로 2022년 21만 209가구에 비해 31.9%가량 줄었다. 올해 5월까지 빌라 인허가 물량은 1만 5313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8% 감소했다.
정부가 전세시장 안정을 위해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 등 비아파트의 공급을 늘린다고 발표했지만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깡통전세·전세사기 이슈로 비아파트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점에 대한 해결책 제시 없이 공급만 늘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임재만 교수는 “깡통전세를 전제하고 비아파트 공급을 활성화시키느냐, 전세사기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책을 만든 후 비아파트를 공급하느냐는 천지차이다. 지금 당장은 집값이 올라서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정부 대책을 통해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전세사기 주택에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된 이유가 빚내서 집을 짓게 장려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예방책이 없으면 나중에 지금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굉장히 무리한 대책이고 이미 비아파트에서 전세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아는 상황에서 정부 대책이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