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판정 속 홈스틸’ 최종 승부는?
▲ 지난해 10월 19일 삼성에스원영업전문직노동자연대가 태평로 삼성본관(흰색 빌딩) 맞은편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오는 1월 19일 삼성본관 앞 집회 허가를 받아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
삼성그룹 본사가 위치한 태평로 삼성타운 일대는 삼성그룹이 1년 365일 24시간 모든 집회신고를 독점해버려 다른 집회신고를 하려야 할 수도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집회신고가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들이 가끔씩 벌어지기도 한다. 관할 경찰서에 삼성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삼성 측도 호락호락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최근 삼성에스원영업전문직노동자연대(에스원노동자연대)가 복직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삼성 측의 집회신고 독점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어 또다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공정하게 집회신고를 받아야 할 남대문경찰서는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여 ‘삼성 봐주기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삼성 측은 별다른 방해 없이 매일 아침 9시 민원실에 집회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5년 삼성그룹에서 분사된 소형가전업체인 노비타 노동조합이 집회신고를 내려고 하면서 아침 9시 민원실 앞은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남대문경찰서는 아침 9시에 먼저 신고서류를 내는 쪽에 집회신고를 내 주기로 했지만 셔터문이 열리는 순간 민원실 창구로 달려드는 노조원과 삼성 직원들의 경쟁으로 엉망이 되었다. 그러자 아침 9시 민원실 정문 앞에 먼저 서 있는 쪽에 우선권을 주기로 하자 전날 밤부터 민원실 앞에서 자리다툼이 시작되기도 했다.
결국 남대문경찰서는 민원실 앞 계단 두 번째 기둥에 먼저 와 있는 쪽을 기준으로 정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에스원노동자연대가 집회신고를 위해 남대문경찰서를 찾았을 때는 기준이 변해 있었다. 현관 로비에 놓여 있는 소파들 중 민원실에 가까운 곳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삼성 직원들 세 명이 24시간 교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소파로 기준이 변한 것은 24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 직원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들을 수 있는 부분이다. 에스원노동자연대가 강력히 항의한 끝에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12월 18일 매일 밤 자정 현관 회전문에 먼저 발을 디딘 쪽에 신고 우선권을 주겠다는 기준을 새로 마련했다.
그날 밤 자정 무렵, 에스원노동자연대 수십 명과 삼성 측 직원 수십 명의 몸싸움이 시작됐고 만약을 대비한 경찰들 수십 명이 나와 남대문경찰서는 밤새 몸살을 앓기도 했다.
일단 양측의 서류를 다 접수한 경찰서는 양측의 집회신고를 모두 불허했다. 다음날 자정에는 삼성 측에서 대규모 인원이 나오지 않은 채 에스원노동자 측에서 회전문 앞을 지켜서서 집회 ‘신고권’을 따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남대문경찰서는 희한한 기준을 마련했다. 에스원노동자연대가 시간을 증명할 수 있는 휴대전화 시계와 현관앞에 발을 디딘 사진을 들고 집회신고를 하러 가자 경찰서 측은 ‘오늘부터는 1분 단위로 집회신고를 받겠다’라는 것. 그러자 에스원연대는 1분 단위 집회신고 서류를 준비해 접수를 시작하려 했고, 곧이어 삼성 측에서도 엄청난 두께의 서류뭉치를 들고 와서 접수를 시작했다.
에스원노동자연대가 신고우선권을 확보했음에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남대문경찰서의 석연치 않은 행태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자연대 측은 “경찰서와 삼성 측이 미리 짜지 않고서야 삼성 측이 밤에 나오지 않고 다음날 경찰서가 방침을 바꿀 수 있느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자연대가 항의를 계속하자 남대문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는 “당신이 우리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며 아리송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한편 이렇게 비난을 사고 있는 삼성 측 관계자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당시 경찰서를 찾은 삼성 측 직원들에게 신분을 물어보자 “삼성 직원 맞다.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용역업체를 동원하면 오히려 역효과다”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곤란하다”며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항의가 계속되고 언론의 취재 움직임이 보이자 남대문경찰서는 마침내 에스원노동자연대에 1월 19일자의 집회를 허가해주었다. 에스원노동자연대는 이날 대대적인 집회를 예고하고 있어 삼성본관 앞의 본격적인 집회가 이루어질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05년 노비타노조의 경우 집회일 이틀 전에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어 결국 집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성 측이 본관 앞 집회를 워낙 기피하다 보니 에스원노동자연대는 삼성 측이 협상에 성의를 보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남대문경찰서의 집회신고는 삼성그룹에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협상 타결을 위한 통과의례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에스원노동자연대는 12월 25일 밤 삼성 측 직원들이 연휴로 방심한 틈을 타 다시 집회신고권을 확보, 26일 오전 9시 집회신고를 냈다. 그러나 남대문경찰서는 삼성 측의 집회신고도 동시에 받은 뒤 양측 다 집회신고를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에스원 본사를 비롯해 삼성 본관, 삼성생명빌딩, 태평로빌딩은 모두 남대문경찰서 관할이다. 에스원노동자연대의 계약해지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도, 집회신고로 빈축을 사고 있는 것도 남대문경찰서다. 이해관계자들 모두 복잡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에스원노동자연대는 지난해 7월 에스원 사측이 남대문경찰서로부터 ‘하도급으로 계약을 맺고 있는 영업전문직이 경비업법상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질의회신을 받은 뒤 일방적으로 고용이 해지되자 복직을 위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