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정 상하면 PPL도 거부…이것이 그들의 힘!
▲ SBS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의 한 장면. 오렌지 주스 상표를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면서 간접광고를 꼬집는 장면을 연출했다. |
해당 인터뷰가 논란이 일자 <월간 방송작가> 측이 해당 인터뷰를 오보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대중은 사실상 없다. 표현상의 문제는 있을지언정 제작진 내부적으로 불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최초 게재된 인터뷰에 따르면 최희라 작가는 해당 배우에 대해 “자신의 인기에 도취돼 마치 ‘완장을 찬 돼지’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 시장에서 완장은 작가가 차고 있다. 이번 사건은 차지하더라도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 외주 제작사 PD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작가가 이렇게 불편한 심기를 가질 정도의 상황이 벌어졌다면 해당 배우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드라마 제작의 제1 조건은 ‘편성’이다.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상파 3사의 편성을 받기 위해 제작사는 뛰고 또 뛴다. 편성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력 좋은 작가를 섭외하는 것이다. 드라마 시장에 외주 제작 시스템이 정립된 후 실력 좋은 지상파 드라마 PD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친정은 그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방송사에 몸담고 있는 내부 감독을 키우길 원한다. 때문에 연출자가 없이 좋은 작가만을 갖춘 작품을 선호한다.
▲ 박지은 |
중견 외주 제작사 대표는 “배우와 방송사는 대본을 보고 각각 출연과 편성을 결정한다. 대본이 드라마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수현 작가를 비롯해 김영현 김은숙 문영남 박지은 등 불패신화를 쓰고 있는 작가를 붙잡을 수만 있다면 편성은 떼어논 당상”이라고 말했다.
외주 제작사가 방송사로부터 지급받는 회당 제작비는 실제 제작비의 50% 안팎이다. 나머지 비용은 제작협찬 및 PPL 등을 통해 충당한다. 현재 방송법은 외주 제작 드라마에만 간접광고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외주 제작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제작협찬 및 PPL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여야 한다.
하지만 어떤 제품의 협찬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최초 대본에는 간접광고에 대한 부분이 명시돼 있지 않다. 제작사가 따온 PPL을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예술이다. 서툰 작가는 지나치게 티 나는 간접광고 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지적을 받는 반면, 베테랑 작가들은 제품의 호감도를 급상승시킨다. 드라마 작가는 단순히 글을 재미있게 잘 쓰는 것뿐만 아니라 적당한 광고 효과까지 낼 줄 아는 재주가 필요한 것이다.
▲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한 장면. |
▲ <골든타임> 포스터. |
또 다른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사에 빈정 상한 작가가 PPL을 잘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게 되면 제작사는 협찬주로부터 엄청난 컴플레인을 받게 된다.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작가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내로라하는 몇몇 작가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를 한순간에 하차시키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몇 해 전 한 드라마를 담당한 중견 작가 A는 연기력 논란을 겪던 여배우 B를 과감히 하차시켰다. 당시 A 작가는 B가 외국으로 떠나는 설정을 추가해 자연스럽게 B를 드라마에서 빼버렸다.
당시 이 드라마에 참여했던 또 다른 배우는 “대본 리딩 때 A 작가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B가 울면서 대본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잔뜩 움츠러들어 더더욱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A 작가를 말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귀띔했다.
드라마 시장에서 유명 작가가 절대 우위를 점하는 것과 별개로 작가들의 세계 속에는 그들만의 위계질서가 있다. <드라마의 제왕> 속 보조 작가 이고은(정려원 분)은 제작자의 꼬드김에 넘어가 스승의 대본에 손을 댔다가 업계를 떠나게 된다.
이 장면을 본 한 드라마 제작자는 “실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작가의 성장 과정을 본다면 제자가 스승의 그림자를 밟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숱한 히트작을 낸 유명 작가 C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보조 작가들이 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C는 전체적인 틀을 잡고 보조 작가들이 쓴 대본을 검토할 뿐 직접 집필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드라마 외에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갖다 보니 ‘더 이상 믿고 쓸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제작자는 “스승의 인정을 받아야 스승의 라인을 타고 ‘입봉(첫 작품을 만드는 일)’하게 된다. 그 과정은 혹독하기 그지없고 웬만한 군대보다 군기도 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메인 작가로 성장한 만큼 그들 역시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더욱 독해지고 대접을 받으려 한다. 어쩔 수 없는 생존 논리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