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분리 위한 ‘사촌 부자 만들기’?
▲ 최태원 SK 회장과 사촌형제인 최신원 SKC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왼쪽부터). | ||
눈길을 끄는 부분은 투자 대상.
SK그룹은 7조 원 중에서 설비 투자에 6조 원을 투입하고 나머지는 연구개발 분야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사업군으로 나눠보면 에너지·화학 사업에 3조 5000억 원, 정보통신 및 기타사업에 3조 5000억 원 등이 투입될 예정이라는 것. 설비투자는 주로 에너지 분야의 설비 고도화, 정보통신 인프라 확충 및 해외 자원개발 확대 등에 주로 쓸 방침인 것으로 밝혔다.
이러한 SK그룹의 투자 방침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최 회장의 4촌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사업영역이 크게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SK가 설비투자에 6조 원을 투입했을 때 으뜸 수혜자는 SK건설과 SK네트웍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SK건설은 SK(주)의 해외 프로젝트와 국내 공장 설비고도화 등의 플랜트 공사를 전담하고 있어 큰 폭의 매출액 신장이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SK건설은 매출에서 플랜트 비중이 상당하다. 지난 2005년 매출액 중 국내플랜트에서 23%, 해외 플랜트에서 13% 등 36%의 매출을 플랜트 부분에서 올렸다. 매출의 3분의 1이 플랜트 부분에서 나온 것. 물론 이는 SK(주)의 정유 고도화 시설이나 해외 원전 개발, 가스 분야와 관련이 있다.
SK건설의 이런 플랜트 비중은 비슷하게 정유회사가 있는 GS그룹의 GS건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SK건설의 2005년 매출액은 2조 5700여 억 원이고 GS건설의 2005년 매출액은 5조 6300여 억 원. GS건설이 SK건설보다 두 배 정도 큰 것.
하지만 국내 플랜트 분야의 경우 GS가 2623억 원, SK건설은 5982억 원으로 SK건설이 국내플랜트 매출이 두 배 정도 크다.
SK건설은 2003년부터 매출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SK건설은 2002년까지 적자를 기록하다가 SK그룹이 투자 규모를 본격적으로 늘리면서 매출도 함께 늘어나고 순이익도 큰 폭으로 늘어난 것.
게다가 올해는 부동산 투기 차단에 나서면서 국내 주택 건설에 치중했던 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하지만 SK건설은 아파트 공사보다는 플랜트와 토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기에 매출액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K건설의 성장 속도가 빠를 경우 1등 수혜자는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다. 비상장인 SK건설의 최대 주주는 SK케미칼(58%)이고 개인 최대 주주는 최창원 부회장(9.61%)이다. 2005년 1000억 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린 SK건설은 51억 원을 현금 배당했는데 그 최대 수혜자는 SK케미칼과 최 부회장이었다. 게다가 SK케미칼의 최대 주주는 최창원 부회장(7.84%)이다.
4촌인 최태원 회장-최재원 부회장 형제는 SK케미칼 주주 명단에서 점점 축소되고 최 부회장과 그의 친형인 최신원 SKC 회장의 지분은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재계에서는 4촌(최신원-최창원, 최태원-최창원) 공동 경영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SK그룹이 언젠가는 분리되리라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최신원 회장 등이 계열사 지분을 조금씩 늘릴 때마다 언론이 주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SK는 오너십 확보를 위한 지분 마련에는 큰돈이 들어가는데 오너가 ‘실탄(돈)’이 없다며 관련설을 부인했었다.
하지만 SK(주)나 SK건설이나 SK케미칼의 재무제표는 오너들에게 실탄 마련 기회가 자꾸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신원 SKC 회장은 SKC와 SK텔레시스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지만 몇 해 전만 해도 SKC의 보유지분이 극히 미미했다. 2005년 11월 초만 하더라도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은 0.38%로 오너라고 부르기에 미안한 지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최 회장은 ‘티끌 모아 태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최근에도 이 프로젝트는 진행중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7일부터 올 1월 2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18억여 원을 들여 집중적으로 SKC 주식을 매집해 지분을 2.20%까지 끌어 올렸다. 근 1년 만에 1%를 끌어 올린 것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이 ‘티끌’ 프로젝트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최근 경영투명성이 강조되면서 ‘회사익 편취’ 등 ‘오너에게 편리한 변칙적인 돈 만들기’는 엄격한 규제를 받거나 나중에 반드시 국세청 조사나 검찰 조사로 귀결되고 있다. 즉 세금증명서를 끊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해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최신원 회장과 그의 친동생인 최창원 부회장 계열의 SKC-SK텔레시스나 SK케미칼-SK건설이 돈을 잘 벌어 ‘전문 경영인’으로 해당 회사에 봉직하고 있는 오너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최신원 회장이나 최창원 부회장은 지난해 경영을 맡고 있는 회사들이 좋은 성적을 올려 올 초에도 제법 두둑한 실탄이 들어오고 있다.
SKC(대표이사 최신원 회장)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5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자 임직원에게 400%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했다. 물론 최 회장도 받았을 것이다. 또 연초 SKC 이사회는 주당 300원의 배당을 결의해 최 회장은 2억 3000만 원 정도의 배당금도 타게 됐다. 최 회장이 상반기 중 지분을 좀 더 사들일 수 있는 실탄이 확보된 셈이다.
물론 최신원 회장이나 최창원 부회장 실탄 확보 루트는 이게 다가 아니다. SK텔레시스나 아페론 등 수익성이 좋은 회사와 이들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7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그룹 사세를 더욱 키우려는 최태원 회장과 사촌 경영인들이 SK라는 거대 함대도 키우고 오너십(지분)도 키우는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