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없다뇨? 선수도 목소리 내야죠”
▲ 팔꿈치야 고생했다 팔꿈치 수술이 완쾌된 류제국은 재활이 순조롭게 진행돼 실전에서는 150㎞대 구속이 나올 것으로 자신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2년 만에 보는 것 같다. 그동안 공익근무로 복무 중이었는데 어떤 일을 했었나.
▲고양시 덕양구청에서 불법광고물과 현수막, 입간판 제거를 맡아 열심히 일했다. 가끔 시민 분들과 부딪히는 일들도 벌어졌지만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막상 소집해제가 되니까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의 큰 숙제를 마무리한 듯하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신했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운동하는 시간이 많았을 것 같다.
▲체육관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재활 훈련에 매달렸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이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구리 LG 훈련장에 나가 피칭 연습을 했다. 지금은 라이브 피칭도 마쳤고 평균 구속이 144~145㎞ 정도 나온다. 아마 실전으로 들어가면 150km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팔꿈치 수술한 부위는 완쾌된 것인가.
▲완쾌됐다. 팔에 통증을 느끼지 않으니까 자신감 있게 던질 수 있는 것 같다. 2년 넘게 실전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부분을 제외하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LG와 연봉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양측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이 일로 난 LG 팬들에게 ‘배은망덕한 놈’으로 찍히고 말았다. 내가 LG측에 (봉)중근이 형이 받은 액수(계약금 10억 원+연봉 3억 5000만 원) 이상을 원했다는 기사가 나간 것이다. 이 부분은 LG에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된다. 난 단 한 번도 중근 형이 받은 몸값 이상을 받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내 입으로 금액을 말해 본 적도 없다. LG 측에서 먼저 ‘봉중근처럼 받고 싶은 거냐?’라고 물었고 난 ‘그건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그런데 LG는 날 팀의 간판 투수로 대접하겠다면서 실제 제시한 금액이 중근이 형이 받은 금액의 절반도 안 됐다. LG에선 일단 팀에 들어와 훈련하면서 협상을 계속하자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LG에서는 류제국과의 계약을 염두에 두고 수술비를 지원하고 훈련장소를 제공했을 텐데, 막상 쉽게 계약이 되지 않으면서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었겠다.
▲내가 힘들 때 경제적인 도움을 준 부분에 대해선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런데 만약 내 몸 상태가 수술 후에도 회복되지 않았고 재활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더라면 LG에서 나한테 계약하자는 얘기를 했을까? 선수를 선택하고 팀을 결정하는 부분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움직인다. LG에서 나한테 수술비를 지원했다고 해서 내가 LG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다. LG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해서 미국에 있는 에이전트에게 행여 LG와 계약을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대안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사실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조건 날 매도하고 비난하는 게 참으로 힘들었다. 이래서 한국에도 에이전트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구단과 선수가 서로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 선수가 조금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되고 만다. 여긴 프로 세계이고, 구단이 ‘갑’인 세상이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
▲어깨가 강해졌다는 걸 확인하면서부터 조금씩 그런 마음이 꿈틀대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더라도 다시 한 번 미국에서 부딪히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에이전트도 그런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족들이 고생할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접진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1년부터 시카고 컵스에서 활약했지만 메이저리그보다는 마이너리그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훨씬 많았다. 시카고에선 최희섭과 탬파베이에선 서재응과 함께 생활했는데, 지금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희섭 형한테도 고맙지만 무엇보다 재응 형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탬파베이의 조 매든 감독은 이상하게도 선발로 나간 재응 형이 무너지면 꼭 중간계투로 날 내보냈다. 한 번은 2007년 4월 애너하임전에 재응 형이 2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강판됐다. 그런데 그때 내가 중간계투로 나가 4이닝 동안 삼진 2개를 포함해 1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재응 형한테 쉽게 말도 못 걸었다. 이런저런 눈치도 보이고. 하지만 생활하는 데 있어선 형이랑 정말 재미있게 보냈다. 재응 형의 성격이 워낙 좋아서 선수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렸다.
―지금 LA 다저스와 연봉 협상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류현진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종종 현진이가 전화를 걸어선 ‘형, 나 야구하기 힘들어’하고 하소연도 하고 후배들 중 유일하게 나한테 반말하는 후배가 현진이였다. 그런데도 그런 현진이가 귀엽다. 배짱이 두둑한 선수라 미국 애들이랑 ‘맞장’ 떠도 절대 밀리지 않을 놈이다.
류제국은 2013년을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잡고 있다. 류제국의 공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줄 것이고, 인정받는 선수가 되는 것은 물론 ‘가장’ 다운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결혼 후 고생만 시킨 아내를 위해서도 류제국의 성공은 간절함과 절박함을 담고 있었다. 류제국의 야구는 이제 다시 출발선상에 섰다.
이영미 기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