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난 필동에 삽니다. 대한극장 뒤쪽입니다”라고 설명해줬다. 필동은 잘 몰라도 대한극장은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대한극장은 나에게 영화의 꿈을 키워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어려서부터 영화의 꿈을 키워온 소위 ‘할리우드 키즈’는 아니었지만 대한극장에서 개봉, 재개봉 등을 통해 본 ‘벤허’ ‘아라비아의 로렌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남부군’ ‘마지막 황제’ 같은 영화들이 내가 영화인으로 삶을 영위하게 만든 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1958년 개관한 대한극장은 국내 최대 규모 2000석의 좌석을 갖춘 초대형 단관극장이었다. 세계 최대 영화제인 칸 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이 약 2500석의 좌석을 갖추고 있으니 대한극장의 규모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022년 4월의 마지막 날 난 감독과 함께 ‘이태리 우디네 영화제’의 폐막작이 상영되는 ‘누오보 극장(TEATRO NUOVO)’을 찾았다. 누오보 극장은 4층 규모 1200석을 수용하는 거대한 상영관으로서 영화는 물론 각종 공연도 가능한 복합극장이었다.
나와 감독은 함께 제작한 영화 ‘자백(소지섭, 김윤진 주연)’을 상영하고 1200여 명의 관객들이 보내주는 박수에 영화인생 최고의 환희의 순간을 만끽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대한극장은 2000석의 좌석이었으며 설날이나 추석날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같이 웃고 같이 박수치던 기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심심찮게 그 2000석의 좌석을 가득 메우는 영화들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영화배우 김지미 선생님이 수입하신 ‘마지막 황제’가 대표적이다. 대한극장을 한 바퀴 휘감고 지금은 공원이 된 한옥마을 입구까지 ‘마지막 황제’를 보려는 관객들이 줄을 서 있었던 장면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 용돈이 충분치 못했던 나와 친구들은 대한극장에 몰래 숨어 들어가려고 하루 종일 극장 앞을 서성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틈을 타서 몰래 들어가려고 시도하다가 경비아저씨에게 걸려서 혼비백산 도망 다녔던 기억이 난다. 대한극장에서 암표장수를 하던 동창 형님에게 원가로 영화표를 샀던 기억도 생생하다.
명절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은 극장에서 목에 좌판을 걸고 양갱, 사탕, 과자, 사이다 등을 팔던 매점보이한테서 아버지가 사이다와 과자를 사주시면 그 영화가 아무리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나에겐 최고의 영화로 바뀌는 신세계도 경험했었다.
신혼살림을 시댁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작해야 했던 아내는 매주 토요일 날 필동면옥에서 냉면을 먹고 대한극장 옆 골목에서 오징어를 굽고 땅콩을 사서 나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당시 자신의 유일한 해방구였다고 말하곤 하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추억과 경험을 선사한 2000석의 위용을 자랑하던 대한극장은 복합관이 생겨나면서 생존(?)을 위해 2001년 8개관의 복합관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시작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관객들의 영화소비행태의 변화라는 파도를 이겨내지 못했다. 대한극장은 개관한 지 66년 만인 2024년 9월 30일 공식적으로 폐관하기로 결정했다.
폐관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저려왔다. 내 청춘이, 내 삶의 한부분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영화산업을 상징하던 충무로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스카라극장이, 명보극장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사들도 충무로에는 그 명맥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마지막으로 충무로를 지켰던 대한극장이 그 무거운 짐을 이제 벗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대한극장 하나라도 버텨주었으면, 견뎌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공존한다.
고마웠다, 대한극장.
사랑했다, 대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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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