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글로벌 OTT 기업들(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등)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AI 관련 기술자를 영입하는 등 AI를 활용한 비용 절감에 매달리고 있다. 이미 AI를 통해 배우들의 목소리, 과거 시절의 얼굴 등을 복원할 수 있게 됐고 창작 현장에선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에게 수정하라고 지시하는 등 AI와 작가의 분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젠 전문 작가가 아닌 기획자가 상황을 설정하고 캐릭터의 기본을 만든 뒤 생성형 AI에게 입력하면 그 생성형 AI가 이야기의 기본 얼개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기존에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AI가 각색 및 윤색이 가능한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본인이 제작한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는 지옥을 구현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수많은 콘셉트 아트 전문가들이 수년에 걸쳐 자료를 찾고 초안을 그렸다. 여기에 디자인을 만지고 또 만져서 겨우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성형 AI를 통해서 불과 3~4시간이면 수십 개의 각기 다른 지옥의 시안을 받아볼 수 있는 시대다.
2024년 대한민국 프로야구는 혁명적인 결정을 했다. 그간 여러 가지 논쟁이 되었던 심판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해서 과감히 컴퓨터가 자동으로 판정해서 심판에게 알려주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를 도입한 것이다. 그간 찬반양론이 팽팽했고 오심마저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혁명적인 일이다.
이제 어쩌면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병의 진단을 내리는 의사들마저 사람이 아닌 AI가 대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공상과학영화의 상상이 아니다. 조만간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될 일일지 모른다.
AI의 영역 침범이 가장 느릴 것이며, 동시에 가장 불안정하다고 여겨졌던 창작 산업 영역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AI 도입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그 속도와 범위는 어쩌면 우리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크고 다양하게 확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치는 지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같은 곳을 돌고 있다. 야당은 법안을 발의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이 여야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재의요구권(거부권)이 행사된 것은 21번에 달하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재의요구권이 행사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
청문회를 치르고 임명동의안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임명이 강행된 것은 현재까지 무려 26번에 달한다고 한다. 이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야당은 법안을 계속 여야 간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발의하고 있다. 대통령은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일이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해 국회에서 벌어지는 청문회에서도 여야 간 대화와 협치라는 키워드는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다. 상대 진영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인정도 하지 않는다. 극한 대립을 중재하고 협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상임위원장은 국회 법조항을 읽어대며 “법대로 하고 있다”는 말만 수십 번 반복한다.
난 창작의 영역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그런데 피도 눈물도 없는 그저 효율성만 계산하는 AI가 이처럼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AI가 아무리 빠르게 자리 잡았다 하더라도 창작의 영역은 가장 인간적이어야 한다. 정치의 영역은 정파 이익과 진영논리가 아닌 전국민을 보살펴야 하는 위치에 있기에, 절대로 AI 같은 결정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 여야의 행태와 대통령실을 바라보면, 차라리 정치의 영역이야말로 AI가 하루빨리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란 씁쓸한 생각에 젖는다. 이럴 바엔 AI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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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