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환자들 이유도 모른 채 사망”…국비 20억 투입, 보고서 곳곳 오류…효과 입증 못하고 막 내려
#임상시험 환자 17명 중 4명 사망
“시냇물을 수액주사로 만들었다고 치자. 이걸 맞은 모든 사람이 다 죽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강한 알레르기가 생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멀쩡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수액주사를 사람에게 놔도 된다고 할 수 있는가.”
박 전 교수는 9월 26일 자신의 제자인 정경천 서울대 의대 교수와 바이오기업 다이노나의 S 전 대표이사 등 2명을 살인 혐의로 경찰청에 고발했다.
백혈병 신규 항체 치료제 DNP001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DNA 서열이 변이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한 채 백혈병 환자 3명에게 투약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박 전 교수는 DNP001의 원천 기술 개발자다. 1993년 급성 백혈병 치료에 유용한 항체인 ‘JL1’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DNP001은 박 전 교수의 제자인 정 교수와 S 전 대표가 스승이 개발한 JL1을 이용해 만든 백혈병 치료제다. 이후 바이오기업 다이노나를 설립하고 DNP001 신약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신약개발 사업은 정부가 지원했다. 다이노나는 2013년 2월 범부처신약개발단의 신약개발 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돼 2014년 9월부터 ‘급성백혈병에 대한 신규 항체치료제 DNP001의 임상 1상 개발’ 과제를 수행했다.
문제는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2015년 5월 발생했다. 그해 5월 27일 다이노나가 기술을 이전하기로 한 중국기업 3S 바이오로부터 “DNP001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내용의 메일이 온 것이다. 메일 내용에 따르면 3S 바이오는 “DNP001의 DNA 서열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다수의 변이를 발견했으니 회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메일 제목은 ‘DNP001 기술이전 중단에 관하여’였다.
그러나 임상시험은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뒤로도 1년 넘게 계속됐다. 박 전 교수는 이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다이노나와 연구팀이 치료제의 돌연변이 발생 혹은 가능성을 알고 있었고, 그대로 치료제를 투약하면 임상시험 환자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실험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 17명 가운데 총 4명의 환자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알기 이전인 2014년 12월 4일 DNP001을 투약한 임상시험 환자 1명이 사망했고,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안 이후로 3명이 더 사망했다. 박 전 교수 측 변호인은 “4mg/kg의 약을 투약한 환자 3명 중 2명이 사망해 그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회사는 오히려 투약량을 2배로 늘렸다. 결과적으로 8mg/kg의 주사를 맞은 환자는 3일 만에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교수는 “DNP001을 생산하는 회사에 가기 전 연구팀에서 최소 3단계에 걸쳐 유전자 검사를 했어야 한다. 제대로 했다면 돌연변이 발생 사실도 더 빨리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다이노나와 정 교수는 연구자로서 기본적인 업무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죄 없는 임상시험 환자들이 이유도 모른 채 사망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반면 정 교수는 약물 투여와 환자 사망 간 인과관계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9월 24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환자가 사망하면 백혈병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그 인과관계가 중요하다”며 “임상시험을 한 병원에서 투약 관련 중증 부작용으로 인정된 건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투여용량이 과도하게 늘어났다는 주장에 대해선 “전(前) 임상시험(동물 대상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임상시험 전에 임상시험팀과 협의된 프로토콜에 따라서 증량한 것”이라며 “4mg/㎏, 8mg/㎏은 이 투여 가능 용량에 포함되는 용량”이라고 해명했다.
#병원·식약처 등에 보고 의무 위반
다이노나 측과 정 교수가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은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은 메일에서도 드러난다. 2016년 4월이 돼서야 DNP001의 돌연변이 발생 사실을 알게 된 박 전 교수는 곧바로 제자 정 교수에게 실험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메일을 보냈다.
“치료 항체는 인간을 궁극적으로 대상하는데, 단백구조에 이상을 발견하고도 임상을 계속하는 것은 의료 윤리상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임상을 중단하고 손실이 있더라도 복구할 방법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박 전 교수의 메일 중 일부다.
해당 메일을 받은 정 교수는 박 전 교수가 아닌 S 전 대표에게 메일을 보냈다. “박성회 선생님께서 전화로 자세한 사항을 물으셨다”며 “그간 여러 가지 경영상의 이유로 제 의견을 강하게 말씀드릴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도 (DNP001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더욱이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DLT까지 발생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 같아서 심히 우려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 정 교수가 DNP001의 부작용 발생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DLT는 투여제한독성을 말한다.
문제는 연구책임자인 정 교수와 다이노나의 S 전 대표 모두 해당 사실을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비를 지원 받은 범부처사업단은 물론 관리부처인 식약처, 심지어 임상시험을 진행한 아산병원에도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을 보고하지 않았다. 2016년 8월 12일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에도 돌연변이 발생 사실이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임상시험 계획 승인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임상시험 실시 중 의약품 제형(劑形)이 중대하게 변경된 경우 해당 약이 위험하지 않다는 근거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형은 의약품을 정제, 산제, 연고제, 주사제 등 적절한 형태로 만든 것이다. 개발자를 비롯한 임상시험 의뢰자도 이를 식약처와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병원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정 교수 "구체적 내용 몰라, 기억 없다"
임상시험이 끝난 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에 제출된 과제보고서에선 일부 오류도 발견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과제보고서에 따르면 실험 중 사망한 R12번 환자의 사망일이 2015년 10월 16일과 28일 총 두 개로 기재돼 있었다. 당시 다이노나와 식약처 양쪽 모두 해당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보고서엔 제조 및 품질관리와 관련해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한 자료도 있다고 했으나 실제 서열분석 결과가 실려 있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다. 기억하는 것도 없고 내가 보고서를 갖고 있지도 않다”면서도 “보고서는 다이노나에서 쓴 것인데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의 2면엔 연구책임자로 정 교수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급성백혈병 항체치료제 임상시험은 결국 그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고 2016년 8월 임상 1상에서 막을 내렸다. 이 연구에 들어간 연구비는 총 40억 4000만 원. 이 가운데 절반인 20억 2000만 원은 정부가 지원한 국책연구비였다.
관리부처인 식약처는 이번 사안에 대해 10월 2일 “임상시험 대상자 안전과 관련해 임상시험 실시기관을 실사한 결과 시험약과 관련한 중대한 이상반응이나 특이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