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부산 이전 매듭” 약속에 노조 거센 반발…민주당 “법안보다 사회적 합의부터” 신중
#산은 이전 타임라인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부산을 파생금융 특화 금융중심지로 지정했다. 이후 부산국제금융센터에는 기술보증기금, 한국은행 부산본부, BNK부산은행,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35개가 넘는 기관이 입주했다. 부산시는 추가로 지하 5층, 지상 45층 규모 사무공간을 건립해 핀테크·블록체인 등 디지털 융복합 금융업무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남은 1만 6900㎡ 규모의 공간엔 산업은행 본사를 들여온다는 구상이다.
2022년 1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부산이 세계 최고의 해양도시·첨단도시로 발돋움하려면 금융 자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같은 해 7월에는 ‘120대 국정과제’에 산은 부산 이전 추진을 명시했다.
2023년 3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산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에 산은 지방 이전 절차를 안내하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산은 회장이 노사협의를 거쳐 마련한 이전안을 금융위에 제출하고, 금융위는 이를 검토한 뒤 결과를 국토부에 제출하도록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는 2023년 5월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고시문을 게재했다. 금융 관련 기관이 집적화돼 있는 부산으로 산은을 이전하면 유기적 연계·협업 및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산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계획에 따라 수도권 잔류 기관으로 지정돼 있었지만, 국토부의 결정으로 산은은 잔류 기관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한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제1항에 막혀 산은 부산 이전계획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법 개정이 늦어지면 산은 신사옥 준공 등이 차질을 빚게 된다. 윤 대통령은 2월 13일 부산 민생토론회에서 “산업은행법 개정 이전이라도 실질적인 이전 효과가 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산은은 정부 기조에 맞춰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신설해 인력과 업무영역 등 기능을 확대했다. 9월 26일 이사회를 열고 남부권 영업조직을 강화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부산에 3개 센터로 구성된 남부권투자금융본부를 신설하고 인력 확충에 나섰다. 부산 등 동남권 지역에 투자업무를 담당하는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남부권투자금융본부로 편입했다. 산은은 조직개편을 통해 산업자본과 인프라가 축적된 남부권 사업을 지원하고, 글로벌 협력투자 강화를 통해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9월 26일 조직개편이 단행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산은 노조는 윤 대통령이 강석훈 산은 회장에게 ‘법 개정 전에 법 개정 효과를 내라’고 불법 사주했고, 이를 강 회장이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준 산은 노조위원장은 일요신문에 “정부도 사측도 노조가 타당성 검토를 해서 제대로 논의해 보자고 했는데,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며 “(노조와의 대화 없이) 재작년(2022년)에 56명을 부산으로 발령 내렸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쓸데없이 부산에 지점을 만들고 있다”며 “그러나 부산에 충분히 많은 지점이 있고, 많은 자금이 나가고 있다. 강석훈 회장은 대통령실에 (윤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입장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산은 부산 이전 추진 근거 중 하나는 ‘KB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경제적 효과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는 한국은행이 2020년 발표한 ‘2015년 지역산업연관표’를 토대로 2025년 산은 본사 직원 약 1800명이 부산으로 이주했을 때 부산·울산·경남에 1조 5118억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분석했다. 3만 6122명이 새로 고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공개 직후 신뢰성 논란이 일었다. 제목부터 ‘KB 산업은행’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산은 공식 명칭은 ‘KBD산업은행’이다. 노조 측은 실질적인 분석은 전체 12쪽 중 5쪽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머지 6페이지는 유휴부지 현황 자료가 나와 있고, 다른 1페이지는 참고문헌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간경향 보도에 따르면 보고서 작성자는 외부 공개용 정식 보고서가 아닌 인수위 제출용 참고 자료라고 해명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분석에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정부가 만든 정식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없는 셈이다.
노조 측은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 주요 금융기관과 기업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본사가 부산으로 이전되면 거래처와의 협업에 차질이 생기고, 업무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월 24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공급실적에서 수도권 비중은 56%다. 보유자산은 57%로 나타났다.
노조 측은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한국재무학회가 산은 노조의 의뢰를 받아 2023년 7월 발간한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타당성 검토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산은이 부산으로 가면 향후 10년간 수익이 6조 5337억 원 감소한다. 신사옥 건설, 직원 주거비 지원, 출장비 등 지출 비용이 4702억 원 증가한다. 15조 3781억 원의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축소된다. 수익 감소로 산은이 정부출자기관인 기획재정부에 지급하는 배당금도 대폭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노조 측 주장과 보고서에 대한 반론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023년 9월 4일 “산은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해도 서울에서 필요한 것은 진행되는데 마치 이전하는 순간 수도권 거래 고객 대상 영업이 중지되는 것을 가정했다. 균형성장을 계량화하기 어렵지만, 노조에서 발주한 용역의 결과가 수치, 근거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산은법 제4조 제1항 개정 가능할까
국민의힘은 최근 선거 때마다 산은 이전 공약을 꺼내 들었다. 22대 총선을 앞둔 지난 1월 10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부산을 찾아 “부산을 사랑한다. 국민의힘에서 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대단히 높은 최우선 순위 과제고, 반드시 내려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16 재보궐 선거를 앞둔 9월 28일 한 대표는 윤일현 국민의힘 부산 금정구청장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저희는 산은 부산 이전을 할 것이고, 부산의 발전을 위해 부산을 챙기고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훈 대표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겨냥한 발언도 내놨다. 한 대표는 같은 날 “얼마 전 민주당이 금정에 와서 ‘부산의 금융 발전을 하겠다’고 했는데, 말이 되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가장 적극 반대하는 게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아닌가. 그런 사람이 어떻게 부산 발전을 이야기 하나”라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 지역구에는 산은 본사가 있는 여의도가 있다.
그러자 김민석 최고위원은 9월 30일 페이스북에 “산은 이전 정지작업은커녕 오세훈 시장도, 산은 노조도, 설득 못 하면서 왜 민주당 탓을 하나”라며 “엑스포 (유치 실패) 책임 피하려고 산은 팔이로 총선 치른 후에 한동훈 대표가 한 게 뭐가 있나. 금융계와 노조를 설득했나. 설득할 실력은 되나. 친윤 대타 오세훈을 누를 힘은 되나”라고 꼬집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8월 29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시정질의에서 “산업은행은 서울에 계속 존치하는 게 맞다”며 “첫째는 산업은행 고객의 대부분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가장 적격한 요건을 가진 곳이 서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공론화 과정과 타당성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3년 11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부산을 지역구로 둔 박재호 민주당 의원,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등은 지역균형발전과 부산 경제 활성화 등을 이유로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이게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 때문에 무조건 밀어붙이는 방식은 아니고, 사회적 설득과 토론이 돼야 한다고 봤다”며 “이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타당한가에 대한 설득의 근거를 별도 용역을 통해서 받고, 타당하다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전할 것인가 논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개정안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가 열리자,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부산 남구)은 1호 법안으로 다시 산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관련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무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아직 손 안 대고 있다”며 “이것은 법안을 상정해서 심사하기 이전에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하는 것 아닌가. 공청회 아니면 토론회가 됐든 그것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국정감사 끝나면 간담회 형식이 됐든 국회 전체 회의를 통해 공청회 등을 시도해 볼까 한다”고 말했다.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 협조가 없으면 법안은 개정하기 어렵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도 “당연히 이전에 찬성한다”면서도 “당사자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산은법 개정안 통과 전망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들이 많다. 다수의 뜻을 통해서 소수가 희생되지 않는 조정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 간단한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산은 이전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첫째는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을 국민의힘이 양보하고 산은법 개정안을 통과하는 것이다. 둘째는 산은 주요 자회사를 내려보내는 것이다. 셋째는 본사와 최소한의 기능만 서울에 남겨두고 나머지 기능을 모두 이전해 이원화하는 방안이다. 이 관계자는 “산은 이전은 되돌릴 수는 없을 거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 있다. 여러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전체적인 흐름 속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