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 심리 가능하지만 판결까진 쉽지 않아…학계선 ‘국민 피해 vs 헌재 가치’ 두고 공방
헌재가 스스로 기능 마비 사태를 막아냈으나, 향후 국회 입법을 통한 제도적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국회 몫 재판관 추천을 둘러싼 정쟁을 벌이면서 헌재 기능 마비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학계에선 헌재가 가처분 형식으로 스스로 ‘헌재법’을 정지시킨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과 헌재가 헌법 가치를 정면 반했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재판관 3명이 임기 만료로 퇴직해 공석 사태가 돼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에 따라 사건을 심리조차 할 수 없다면 이는 사실상 재판 외의 사유로 재판절차를 정지시키는 것이고, 피청구인의 신속한 재판 받을 권리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며 “또 직무정지 사태가 장기화해 방통위원장으로서의 업무수행에도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는 전원재판부에 계속 중인 다른 사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결국 재판관 궐위(공석)로 인한 불이익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국민이 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 판단으로 헌재법 23조 1항에 대한 효력은 이진숙 위원장의 탄핵 심판 선고 때까지 정지된다. 10월 17일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 김기영 재판관 등 3명이 퇴임한 뒤에 ‘6인 체제’로 심리를 할 수 있게 됐다. 헌재법 제23조 2항에 근거해 탄핵, 헌법소원 등의 결정을 재판관 6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면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다만 6명 체제에서 판결까지 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재판관 3명이 공석이 상황에서 판결하면 정당성 시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가처분을 인용하더라도 이는 의결정족수가 아니라 심리정족수에 대한 것에 불과하다”며 “재판관 6명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에는 공석인 재판관의 임명을 기다려 결정하면 된다. 다만 신속한 결정을 위해 후임 재판관 임명 전에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 조사를 하는 등 사건을 성숙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후임 재판관 임명 전까지 판결 지연이 예상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에서 헌법재판관 3인을 선임할 때까지 결론을 낼 수 있는지 없는지 헌재는 (결정문에) 확실히 하지 않았다”며 “통상 심리가 끝나면 결정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때까지 국회에서 선임해주지 않는다면 6인으로 결정할지 말지를 또다시 내부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가 정쟁만 되풀이하면서 헌재 기능 마비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는 국회 몫인 후임 재판관 3명에 대한 추천 방식을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제때 임명하지 못했다. 통상 여야는 재판관 1명씩을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합의로 추천했다. 그런데 22대 국회서 민주당은 의석수에 따라 재판관 2명 추천을, 국민의힘은 기존 관례를 지키라고 맞서면서 인선 절차가 사실상 정지됐다.
이 같은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엔 임기 만료로 퇴임한 재판관의 후임자를 1년 넘게 정하지 못하고 추가로 4명이 동시에 퇴임하면서 5명이 공석이 됐다. 2018년에는 재판관 5명의 후임 인선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한 달가량 4인 체제로 운영되기도 했다. 국회가 후임 재판관 선출을 서둘러야 하고, 입법을 통해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해외에서는 오래전에 제도적 보완을 한 바 있다. 김선화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의 2017년 ‘헌법재판관 공백에 관한 해외입법례와 입법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1951년 연립정부와 야당의 대립으로 재판관을 2년이나 선출하지 못했다. 이에 연방헌법재판소법에 ‘비상추천제도’를 신설했다. 후임 재판관 선출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연방헌재가 재판관 후보 추천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임기제하에서 임기 만료로 인한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임에도 재판관 공석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7명의 심리 정족수에 대한 직무대행 제도와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도 전무하다”며 “국회가 선출해 임명한 재판관 중 공석이 발생한 경우 국회가 상당한 기간 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할 작위의무가 존재하고, 이러한 작위의무의 이행을 지체했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음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헌재가 스스로 기능 마비 사태를 막은 것에 대해 비판했다. 10월 14일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헌재 스스로 입법행위에 준하는 결정을 했다는 점, 국감 이후 헌재 재판관 인사청문회 등 추천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었다는 점 등에서 아쉬운 결정”이라고 논평을 냈다. 학계에서도 헌재의 가처분 인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장영수 교수는 “국회가 재판관 임명을 제때 했으면 생기지 않을 문제였다. 그 문제를 덮어 놓고, 헌재의 이번 결정 관련 문제만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헌재가 문을 닫아 봐라. 국민의 기본권 문제, 국가 운영 등에서 헌재가 기능하지 못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국민 당사자가 되는 헌법소원심판이 헌재에 가장 많이 계류돼 있다. 헌재가 개점휴업을 하면 국민 피해 커진다”고 말했다. 올해 8월 말 기준 헌재에는 △탄핵심판 2건 △위헌법률심판 3건 △권한쟁의심판 9건 △헌법소원심판 사건 26건 등 40건의 사건이 계류돼 있다.
장 교수는 “헌재 기능이 멈추면 삼권분립에 따른 상호견제도 마비된다. 헌법 소송 중에서 위헌법률심판이 가장 먼저 탄생했다. 입법권을 지닌 국회에 대해서 사법부가 견제하는 것”이라며 “국회는 헌재 인원 부족하게 해서 우리 견제 못하게 만드는 꼴이다. 마치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 헌법이 선언돼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정치 활동 못하게 했던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헌재의 가처분 인용에 대해 “헌법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정”이라며 “가처분 형식으로 헌재 절차의 기본적 틀을 바꿔내는 건 과도한 판단을 한 게 아닌가 싶다. 국회에 책임을 넘겨야지, 헌재가 국회를 넘어서서 구조를 바꿔내서는 안 된다. 헌재 재판관은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을 선출한다. 권력분립을 바탕으로 헌재를 구성하고, 공화적으로 협조해서 운영되게 한다는 것이 헌법 기본 가치”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7인 이상 재판관이 있어야 심리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경우에도 각각의 헌법기관이 임명한 최소한 1명의 재판관을 심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7인 규정을 효력 정지시키면, 어느 한 헌법기관에서 임명한 재판관 참여 없이 심리를 진행하게 된다”며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분립을 헌재에서 깨지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한 교수는 “사실 제일 문제는 가처분 형식이다. 가처분이라는 건 개인 회복 불가능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개인 보호 가치가 헌법적 가치보다 클 수 없다”며 “헌재는 법률 위헌 선언, 대통령 파면 등 헌법적 권한을 갖는 곳이다. 이런 권한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헌재 구성, 심리 절차 등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어느 한 순간 정치적인 판단으로 뒤집으면 안 된다. 헌재 자기 존재 근거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