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천하’ 이후 와해된 바그너그룹 대체해 가장 험난한 전선에 투입될 가능성
북한은 최정예 특수부대 11군단 ‘폭풍군단’ 예하 4개 여단 소속 병력 1만 2000여 명을 파병하기로 했다. 이들은 평안남도 덕천시에 주둔한 것으로 전해진다. 11군단은 특수 8군단을 모체로 창설된 부대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을 일으킨 124부대를 중심으로 1969년 창설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정원은 북한이 2023년 8월 이후 지금까지 총 70여 차례에 걸쳐 1만 3000여 개에 이르는 컨테이너 분량 포탄, 미사일, 대전차 로켓 등 인명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한 것으로 파악해 왔다. 북한에서 건너간 미사일은 불량률이 높아 ‘정밀 타격용’으로 쓰이기보다 ‘물량 공세용’으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10월 1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정상회의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지상군, 기술자 등 여러 종류 인력 총 1만 명을 준비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10월 18일 국정원은 북한이 특수부대 전투원들을 러시아에 직접 파병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이 10월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북한군은 블라디보스톡 등 북중접경지대에서 적응훈련을 마친 뒤 전선에 본격 투입될 전망이다.
북한이 사단급 규모 지상군을 대규모로 파병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북한은 제4차 중동전쟁이나 월남전 당시에도 파병을 했지만, 당시 파병은 수십~수백 명 규모에 불과했다. 북한은 러시아와 2024년 5월 사실상 군사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동반자 협정을 맺은 지 5개월 만에 전격적인 파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최근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북 간 연결도로를 폭파했다. 남북 간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 가운데 정예 특수부대원들을 러시아로 파병된 상황을 두고 전형적인 ‘성동격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으로 진격한다는 뜻이다.
대북 소식통은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북한은 도로 폭파 이후 추가적으로 한국을 향해 도발할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남 관계에 있어 적절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1만 명이 넘는 정예부대원을 파병하면 북한 내부에 안보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면서 “그런 부분을 시끄러운 방식의 긴장감 고조로 덮는 전략”이라고 바라봤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폭풍군단 4개 여단’을 파병한 것과 관련해 “사실상 용병을 보낸 것과 다름 없다”면서 “외화벌이의 마지막 수단이 용병 사업인데, 북한이 러시아를 통해 처음으로 용병 사업에 진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중동에 건설공, 중국에 봉제공, 러시아에 벌목공 등을 파견하던 북한이 대북제재 장기화로 돈줄이 막히자 막다른 길에서 용병을 투입한 것”이라면서 “이미 국제사회와 척을 진 상태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입장에선 전쟁에 도움만 된다면 대북제재 같은 요소는 과감히 배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이런 점을 파고 들어 파병을 전격 결정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파병되는 북한 ‘폭풍군단 4개 여단’은 2023년 6월 러시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빈 자리를 채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러시아의 사냥개’라고 불렸던 바그너그룹은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필두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주요 격전지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중 바그너그룹은 반란을 일으켰고, 러시아 남부 주요 거점을 점령하며 1일 천하를 누렸다. 이후 반란을 없던 일로 무르며 회군했고, 바그너그룹은 사실상 와해 수순에 돌입했다. 바그너그룹 반란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적지 않은 난항을 겪었다. 북한이 사상 유례 없는 직접 파병을 결정한 이면엔 바그너그룹 공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전직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될 경우 전세가 가장 어려운 지역이나,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지역에 배치될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면서 “1년 전 일어난 프리고진 쿠데타 나비효과”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용병은 주로 험악한 일을 담당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월남전 파병’을 결정했던 우리 사례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월남전에서 우리 군은 미군이 몇 년 동안 점령 못하던 골치아픈 지역들을 맡았다. 미국이 불편한 지역, 사상자가 많이 예상되는 지역에 우리 군이 투입됐다. 해병대나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전투부대들이 파병될 때엔 험지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는 “십자성부대(군수지원)와 비둘기부대(건설지원) 등 비전투부대가 파병된 경우엔 전투를 하지 않았지만, 전투부대가 파병된 경우엔 격전지로 배치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서 “북한도 이번에 전투부대를 파병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가장 어려워 하는 전선에 전격 배치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군 소식통은 “북한 폭풍군단은 우리 군으로 치면 특전사와 비슷한 성격인 부대로 보면 이해가 쉽다”면서 “북한군은 이번에 러시아로 파병된 뒤 러시아 장비를 착용하고 전쟁에 투입될 것이란 정황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전형적으로 용병을 고용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라고 했다.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자,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18일 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했다. 국가안보실, 국방부, 국정원 등 핵심 관계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선 북한 파병이 우리 안보에 끼칠 영향에 대한 점검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회의 참석자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이 같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데에 뜻을 모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