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투자’ 홍성은 회장 전보배상액 청구 속도 낼 가능성…히어로즈, 자금난 뇌관 우려 속 “판결 확정 아냐”
9월 27일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를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서울히어로즈가 민사소송 1심에서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9민사부는 히어로즈가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에게 지급해야 할 전보배상채권 총액을 175억 230만 1888원으로 산정했다. 그 가운데 10억 원에 대해서는 명시적 일부청구에 따른 지급을 의무화했다. 전보배상은 이행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을 의미하는 민법 용어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히어로즈 재무상태표에 따르면, 부채를 제외한 자본총액은 260억 7261만 6483원이다. 전보배상채권 이행청구가 이뤄질 경우 히어로즈는 자본총액 중 67%에 해당하는 자금을 홍 회장에게 지급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소를 제기한 홍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 현지에서 부동산 투자전문회사, 금융회사 등을 이끌며 성공 신화를 썼다. 한국에서 홍 회장은 히어로즈 경영권 분쟁으로 유명세를 탔다. 2008년 이장석 히어로즈 구단주가 KBO 가입금 자금난을 겪을 당시 홍 회장은 20억 원을 투자했다. 보상은 히어로즈 지분 40%(16만 4000주)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장석 구단주는 20억 원은 투자금이 아니라 단순 대출금이라며 계약을 부정했다. 결국 주식양도 소송이 불거졌다. 2014년 9월 법원은 홍 회장 손을 들어줬다. 히어로즈가 홍 회장에게 판결 시점 기준 지분 40%에 해당하는 16만 4000주를 양도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히어로즈 법인은 소유한 자사주가 없다며 주식인도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6년 7월 히어로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주식양도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 28억 원을 지급하려 했으나 홍 회장이 수령을 거부한다는 사유로 법원에 해당 금액을 공탁했다. 2019년 홍 회장 측은 ‘주식양도의무 이행불능에 따른 전보배상 일부로서 출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행 지체에 따른 손해배상액 중 일부 변제에 충당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뒤 공탁금을 수령했다.
홍 회장은 이장석 구단주가 주식을 양도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했고, 이 구단주를 횡령 및 사기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2018년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하며 이 구단주를 법정구속했다.
2심에서 이 구단주 형량은 징역 3년 6개월로 줄었다. 이 구단주는 두 차례 형사재판에서 사기 혐의에 대해서만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는 주식양도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여전히 없다는 점을 의미했다. 지분 분쟁은 수많은 소송을 돌고 돌았음에도 제자리에 머물렀다. 홍 회장 측은 2020년부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뒤 지분 40%에 해당하는 금전적 배상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으로 파악됐다. 홍 회장은 히어로즈와 이장석 구단주를 비롯해 전·현직 히어로즈 임원들을 대상으로 소를 제기했다.
2021년 4월 출소한 이 구단주는 그해 연말 코로나19에 따른 경영난을 사유로 히어로즈 140만 주를 신규 발행하는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히어로즈로부터 16만 4000주를 양도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홍 회장 입장에선 눈 뜨고 코 베인 셈이 됐다. 인정받을 수 있는 지분율이 대폭 줄어든 까닭이다. 주식을 양도받더라도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히어로즈에 대한 손해배상 총액으로 175억 230만 1888원을 산정했다. 그 가운데 명시적 일부청구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금액은 10억 원이라고 판결했다. 이장석 구단주를 비롯한 전·현직 히어로즈 임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됐다. 홍 회장 측은 소를 제기하면서 손해액 중 일부인 10억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명시적 일부청구 절차도 진행했다.
판결문 핵심 쟁점은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에 대한 가치평가였다. 재판부는 히어로즈 지분 100% 가치를 감정해 그중 40%에 해당하는 금액에 몇 가지 조건을 산정해 홍 회장의 전보배상액으로 책정 및 명시했다.
우선 재판부는 주식양도의무 집행불능 시점인 2017년 12월 5일 기준 히어로즈 100% 지분 가치를 754억 8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순자산가치방식, 현금흐름할인방식, 유사사거래사례비교방식 등 다양한 감정평가 방식으로 산정된 가격을 토대로 히어로즈 구단 가치를 판단했다.
감정인 A는 소득접근법인 현금흐름할인방식에 따라 히어로즈 구단 가치를 0원(2020년 8월 6일 기준)으로 산정했다. 감정인 B는 유사사거래사례비교방식에 따라 구단가치를 754억 800만 원(2017년 12월 5일 기준)으로 감정했다. 어떤 방식으로 구단 가치를 감정하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재판부는 “히어로즈 회사 상황이나 업종 특성, 현금흐름할인방식의 한계 등을 모두 고려하면 이 사건 주식은 현금흐름 할인방식에 따른 가액 평가가 적정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국내 프로야구단의 경우 세후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적자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회사 주식 가치를 현금흐름방식에 따라 평가하면 그 가치가 0원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대신 재판부는 △히어로즈가 서울에 연고를 둬 프로야구단으로서 희소성이 높은 점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는 비용(계약금)만 약 16억 1422만 7500원에 이르는 점 등에 비춰 구단 자체가 가지는 ‘무형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히어로즈 100% 지분가치 평가액 754억 800만 원 중 40%에 해당하는 금액(301억 6320만 원)을 홍 회장 손해액으로 책정했다. 이 중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참작해 히어로즈가 홍 회장에게 지급해야 할 전보배상액을 총 손해액의 70%(211억 1424만 원)으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주식양도의무 집행불능에 따른 전보배상금을 최종적으로 산정했다. 2021년 히어로즈 유상증자에 따른 신주인수대금 8억 원, 홍 회장이 수령한 히어로즈 공탁금 및 이자 28억 1193만 8112원을 전보배상액 총액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산정에 따른 전보배상채권 총액은 175억 230만 1888원이다.
재판부는 175억 230만 1888원 중 히어로즈가 홍 회장에게 민사상으로 지급할 의무가 있는 금액은 10억 원이라고 판결했다. 명시적 일부청구에 따른 내용이다. 나머지 금액의 경우 홍 회장 측이 히어로즈에 전보배상채권 이행청구를 했을 때 수령이 가능할 전망이다.
취재에 따르면 홍 회장 측은 2020년 전보배상채권 이행청구를 했고, 전보배상액이 민사소송을 통해 산정됨에 따라 채권 이행청구 절차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전해진다.
야구계 한 관계자는 “히어로즈가 판결에서처럼 175억 원 규모 손해배상을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자금난 뇌관이 터질 수 있다”면서 “구단 자체가 존폐 갈림길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야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이장석 구단주가 홍성은 회장에게 진정성 어린 사과 한마디만 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장석 구단주의 욕심이 구단 전체를 흔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히어로즈와 10년 넘는 분쟁을 이어온 홍 회장에게 이번 민사 소송은 ‘마지막 불씨’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해당 소송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냄에 따라 홍 회장과 히어로즈 사이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홍 회장 측은 항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홍 회장 측 법률대리인 이정호 변호사(법무법인 천우)는 10월 11일 일요신문에 “(히어로즈 구단 가치) 감정평가 금액을 감액한 부분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재판부가 최종 감액한 비율, 구단 이외 전현직 이사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항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보배상채권 이행청구와 관련해 이 변호사는 “2020년에 제소를 이미 했다”면서 “그동안 히어로즈 측에서 구단 가치가 ‘제로’라고 주장해 온 부분을 전보배상채권액 산정으로 구체화했기 때문에 이번 재판이 별도로 진행 중인 전보배상채권 이행청구 측면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히어로즈 구단 지분 양도를 둘러싼 분쟁을 펼쳐왔던 홍 회장 측 노선 변화도 감지된다. 그동안 구단 지분 40% 양도를 위해 법적으로 다퉈 왔던 홍 회장은 고심 끝에 지분 대신 금전적인 손해배상 청구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정호 변호사는 “지분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히어로즈 측에서 워낙 협조를 안하고 있다”면서 “이런저런 강제수단도 동원을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결국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지분을 양도받는 것이 아니라 금전적인 배상을 청구하는 부분이었다”면서 “소송 초기부터 고민해온 부분이며, 최종적으로 금전 배상을 받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허구연 KBO 총재에게 ‘히어로즈를 둘러싼 손해배상 민사소송 1심 결과와 관련해 KBO 차원 제재 가능성’을 문의했다. 허구연 총재는 “포스트시즌 중이라 정신이 없다”면서 “아직 보고받지 못한 사안”이라고 했다. 10월 11일 KBO 측은 “최종적인 판결이 났을 때 사안을 들여다보고 살펴볼 부분이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때는 살필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지금 단계에선 공식적으로 뭐라 언급하긴 어렵다”고 했다.
히어로즈 측은 이번 민사소송 1심 결과와 관련해 “판결이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지켜볼 예정”이라면서 “그 외 드릴 말씀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