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 1달러당 100원 적용, 암시장 환율은 80배 높아…북 지도부 파병 대가 통치자금·식량확보 활용 가능성
북한 인민군은 러시아에 1만 2000명을 파병하는 대가로 연 7200억 원 규모의 달러를 손에 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북한군은 1인당 2000달러(277만 원) 기본급을 받는다. 각종 수당을 합치면 사병 월급 총액은 500만 원 규모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휘관급 장교의 경우엔 그 이상을 수령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파병 비용은 군인들에게 직접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노동당으로 입금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 군부 차원에서 러시아로부터 받는 돈 일부를 파병 군인 처우 개선에 쓸 것이라는 계획이 알려졌다(관련기사 “코인만도 못하네…” 김정은 주머니로 들어갈 ‘인민군 목숨값’ 비밀).
일요신문이 접촉한 한 대북 소식통은 “러시아로 파병된 북한 군인들에게 아예 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조금은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군인들 급여를 챙겨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북한 당국이 일종의 ‘환치기’를 통해 북한군 급여를 지급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 환율은 공표된 것과 실제 통용되는 환율의 괴리가 굉장히 크다. 실제로는 북한 원화 가치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이다. 북한 당국은 러시아로부터 파병 대가로 달러를 받고, 파병 군인들에게는 북한 원화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충당할 가능성이 있다. 1달러당 100원에 형성되는 공식 환율에 따른 가치 산정이 이뤄질 수 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달러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북한 원화는 105.9원이다. 공식 환율을 적용했을 때 가격이다. 그러나 암시장에서 통용되는 북한 원화 환율은 확연하게 다르다. 통상적으로 암시장 환율은 1달러에 북한 원화 8000원 정도에 형성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암시장 환율을 1달러에 8000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공식 환율과 80배가량 괴리를 보이는 셈이다. 러시아 파병 인민군이 기본급 2000달러를 받는다면, 공식 환율로 환전한 북한 원화 가치는 21만 1800원 정도다. 그런데 암시장 환율 기준으론 2000달러로 북한 원화 약 1600만 원을 바꿀 수 있다.
러시아 파병 인민군은 공식 환율에 따라 기본급을 지급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을 암시장에서 달러로 바꿀 경우 약 26달러를 수령할 수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당국은 공식 환율에 따라 북한 인민군 월급을 3~4배 정도 더 쳐서 지급할 수도 있다”면서 “화폐 가치가 이미 무너진 상황이라 이렇게 줘도 남는 것이 많은 데다, 북한 당국이 직접 돈을 찍어낼 권리가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환치기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는 셈”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러시아에 달러로 파병 대가를 수령하고, 인민군에게 파병 수당으로 (공식 환율에 따른) 북한 원화를 지급할 경우 노동당이 남기는 마진이 커진다”면서 “달러를 그대로 인민군에게 지급하면 북한 입장에선 파병을 할 의미가 없어진다”고 했다.
2023년 12월 통계청이 공개한 ‘2023 북한 주요 통계지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북한 명목 국민총생산(GDP)은 36조 2000억 원이었다. 대한민국 60분의 1 수준이다. 북한 전체 GDP는 일부 서울특별시 산하 기초지자체 지역내총생산(GRDP)과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2021년 기준 서울특별시 산하 기초지자체 가운데, 종로구 GRDP가 35조 7200억 원 규모로 북한 전체 GDP 규모와 가장 유사했다.
1만 2000명을 파병한 대가로 받는 연간 수령금이 7200억 원가량일 경우, 이는 북한 2022년 GDP 1.98%에 해당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201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E-소매치기’라고 불리는 가상자산 해킹을 통해 주요 통치자금을 마련해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TRM 랩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2~2023년 북한 해커들이 탈취한 가상자산 규모는 15억 달러(2조 원)로 파악되고 있다. 연 평균 1조 원 이상 규모다(관련기사 ‘김정은 별동대’ 2년간 2조원 E-소매치기…북한 해커들은 어떻게 암약했나).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발 가상자산 해킹에 대한 글로벌 공조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정기적으로 지금과 같은 ‘조 단위’ 가상자산 해킹을 해낼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북한 입장에선 꾸준히 ‘새로운 돈줄’을 찾는 것이 지상 과제인 상황이다(관련기사 ‘사이버 해적단’ 막아라! ‘화이트 해커’ 한미일 공조 어디까지 왔나).
대북 소식통은 “매번 돈줄이 마를 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 지도부는 파병 대가로 받은 달러를 통치 자금으로 쓰거나, 식량 확보 등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최후의 외화벌이 수단인 용병사업에 진출한 상황적 배경을 감안하면, 파병 자금이 단순 비축용은 아닐 것”이라고 귀띔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인민군을 파병한 것을 두고 한국 정부가 월남전에 국군을 파병한 사례와 비교되기도 한다. 한 안보단체 관계자는 “월남전에서 우리 군이 남는 포탄을 따로 숨겨뒀다가 귀국할 때 포탄을 녹인 ‘괴’를 들여온 뒤 고물로 판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마련된 자금이 교육기관 건립 등에 투입된 사례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 파병을 전격 결정한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며 ‘별도 수익’을 얻을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안보단체 관계자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엄청난 점유율을 자랑했지만, 현재 러시아는 그런 호황기가 아니”라면서 “당장 전방에서 쓸 포탄이 모자라다는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북한군이 현지에서 활용할 장비 등을 제외하면 따로 챙길 수 있는 수익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