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특검법·이 대표 1심 ‘운명의 11월’이 변수…올해도 29조 세수결손, 재정수지 목표 달성 불투명
#'대통령 불참' 시정연설부터 충돌
여야가 677조 4000억 원에 달하는 2025년 정부 예산안 심사에 돌입한다. 11월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7~8일 예결위 종합 정책질의 △11~14일 부처별 심사 △18~25일 소위 증·감액 심사를 거쳐 29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예산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은 12월 2일이다.
여야가 시정연설부터 충돌하면서 순탄치 않은 예산 정국이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현직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것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직접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국회에 협조를 요청하는 정치 행위다. 앞서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은 처음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덕수 국무총리 대독에 앞서 “불가피한 사유 없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다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다. 국회 수장으로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 원내대표냐”라는 고성이 나왔다. 야당 의원들은 “조용히 하라”고 맞섰다. 한 총리가 연단에 오른 뒤 “대통령 오라고 하세요”라는 비판이 야당에서 쏟아졌다.
아울러 정국 흐름을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운명의 11월’도 예산 정국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민주당은 예산 국회 기간인 11월을 ‘김건희 특검의 달’로 규정했다. 11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또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무혐의 처리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1심 선고를 계기로 대야 공세에 나서겠다고 벼른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는 각각 11월 15일, 25일에 나온다.
민주당은 마음건강 지원 사업(7900억 원)과 개 식용 종식 폐업·전업 사업(3500억 원)을 ‘김건희 예산’으로 규정하고 대폭 칼질을 예고했다. 법무부,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처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를 전액 삭감하고 그 외 부처는 50% 이상 감액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경비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11월 4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내역이 입증되지 않은 검찰 특활비를 전액 삭감하겠다는 것에 대해 “특활비는 수사에 꼭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예산”이라며 “전국 검찰청 특활비가 전년도 72억 원이었는데, 한 번 특검하는 비용은 100억 가까이 소요된다. 과연 이렇게까지 (특활비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예산안 원안을 사수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역화폐 발행 지원 사업 등은 ‘이재명표 포퓰리즘 예산’으로 규정하고 이를 막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11월 4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거대 야당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덧칠하고 표적삭감을 예고하는 것은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위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11월 5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개최한 2025년도 예산안 토론회에서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를 두고 여야가 한차례 맞붙었다. 예결위 국민의힘 간사인 구자근 의원은 “가장 중요한 기준인 건전재정 기조를 확실히 지켰다”며 “민생 해결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되 관행적, 비효율적 사업들은 과감히 축소하는 지출 효율화를 추진한 덕분일 것”이라고 정부 예산안을 평가했다. 이어 지역경기 활성화, 청년·일자리 대책, 고령화 대응 정책 관련 예산 확대를 약속하면서도 “재정이 결코 화수분이 아니다. 결국 누군가가 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허영 민주당 의원은 “대기업과 초부자 감세로 인해 세수가 감소하고, 그 결과 감소한 세입에 따라 재정을 하니까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어서 긴축재정을 하게 된 것”이라며 “긴축재정은 잠재성장률을 저하하고, 성장률 저하는 세수 결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2008년 금융위기 시기에 유럽이 이런 긴축재정을 해 (경제가) 사실상 폭망했다. 그때 전문가들은 이를 자멸적 긴축재정이라고 진단했다”고 꼬집었다.
#NABO "재정운용목표 달성가능성 면밀히 검토를"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는 2023년(56조 4000억 원)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결손이 예상되면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9월 26일 정부는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대응방향’에서 29조 6000억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8월까지 누계 국세수입은 232조 2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조 4000억 원 줄었다. 세입예산 대비 진도율도 63.2%로 최근 5년 평균(71.3%)을 8.1%포인트(p) 하회했다.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2025년 예산안 재정총량 분석’에서 “2025년 예산안에 따른 관리재정수지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2.9%로 계획되어 있고 정부는 2026~2028년에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0%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러한 정부의 목표 달성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2025년 총수입은 정부가 계획한 수준보다 적게 수납되는 반면 총지출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부의 계획 대비 재정수지가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예산안 심의 시 정부의 재정수지에 대한 재정운용목표 달성가능성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 2023년에 이어 올해도 외국환평형기금 등 최대 16조 원의 가용재원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10월 28일 기획재정부 ‘2024년 세수 재추계에 따른 재정 대응방안’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외국환평형기금 4조~6조 원 △공공자금관리기금 4조 원 △주택도시기금 2조~3조 원 △국유재산관리기금 3000억 원 등이다. 지방자치단체로 내려보내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6조 5000억 원을 집행 보류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감액된다.
이 같은 정부의 미봉책은 지난해에도 실효성을 내지 못한 바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는 2023년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 결손을 예상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2023년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19조 9000억 원), 공공자금관리기금(14조 8000억 원) 등의 재원을 활용하고, 지방정부도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이용하여 중앙정부의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미교부(18조 6000억 원)에 대응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규모의 세출예산 불용(7조 8000억 원)이 발생했다. 정부 부문의 실질 성장기여도도 0.3%p로 예년 평균(2001~2022년 평균)인 0.8%p에 못 미쳤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후폭풍은 보건 분야 예산 우려로 이어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5년 예산 12대 분야별 재원 배분 분석’에서 “최근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개혁’ 추진과 관련해 국가재정 외에 건강보험 재정 투입 또한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라며 “건강보험 지출의 증가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할 경우 이를 충당하는 비용은 보험료와 조세를 납부하는 가입자 및 일반 국민에게 이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 대응 및 의료개혁 과제 추진 시 건강보험 재정을 과도하게 투입하기보다는 국회의 예산 심의과정을 거친 후 국가재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의료공백 사태 대응 및 의료개혁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투입되거나 투입될 예정인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및 유관기관 차원의 보전 방안을 비롯하여 건강보험 지출 증가의 적절한 통제 방안 마련을 검토하는 등 국민들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적인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깜깜이 예산’ 되풀이? 소소위 밀실 통과 우려 커져
그동안 국회는 헌법에 명시된 정부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긴 뒤에 ‘소소위’에서 법적 근거도 없이 수백조 원의 나라 예산을 심사하는 관행을 이어왔다. 소소위는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재부 책임자가 비공개로 모여 심사를 진행하는데 회의록을 남기지 않는다. ‘밀실 깜깜이 예산’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정쟁을 일삼던 여야는 예산을 짬짜미로 결정할 수 있는 ‘소소위’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2024년 예산 국회 심의현황·문제점·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 감액 예산 4조 7000억 원 중 불과 5000억 원만 예결위에서 감액됐다. 나머지 90%는 소소위에서 밀실 깜깜이 회의를 거쳐 감액됐다. 국회 증액 예산 4조 5000억 원도 100% 소소위에서 결정됐다.
여야가 소소위에서 각자 실속을 챙기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예산에서 총선을 위한 지역 증액 예산이 크게 확대됐다. 이 같은 증액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 ‘무늬만 감액’은 심화됐다. 소소위 논의 내용이 공개가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록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비공개 회의체가 필요하더라도 속기록이 작성되지 않을 필요는 전혀 없다”며 “비공식적 밀실 협의체인 소소위가 지속되는 이유는 예산안 심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기국회는 9월부터 시작하나 국정감사 이후 실질 예산안 심의는 11월부터 시작한다. 국감 시기를 6월 등으로 옮기거나 상시 국감 체계로 전환하고 예산안 심의는 9월 정기국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