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수단설·김건희 보호설, 역술 조언으로 시각 선택 논란까지…‘4년 중임’ 개헌 정국 이어질지도 주목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여권 일각에선 실패를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 여권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 국회에서 폭주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취지로 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도 12월 4일 YTN 라디오 ‘뉴스 파이팅, 배승희입니다’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윤 대통령이 계엄 카드를 꺼낸 것이 의도적인 계략이었다면, 민주당 입법 폭주를 강조한 것까지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는 있다”면서도 “계엄 조치로 인해 모든 국민이 정부로부터 돌아서는 후폭풍에 대한 계산이 전혀 없었던 점은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설픔 그 자체였던 계엄 선포였다”면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엔 허술한 부분이 많고, 이로 인해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앞뒤가 안 맞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웅 전 의원은 12월 5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집에서 좀 누수가 있고 물이 좀 샌다 그러면 어디 가서 (수리하면) 되는데 그냥 화가 난다고 집을 폭파시켜버린 것”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6시간 동안 국회의원이 체포되는 일은 없었다. 윤 대통령이 주장했던 ‘반국가세력 처단’에 대한 그 어떤 실효적 움직임은 없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쇼’를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또 다른 배경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상식 밖의 극단적 카드를 꺼낸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보는 기류가 강하다. 정치적 포석이라기보다는, 여러 악재로 인해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해법이라는 의미다. 무엇이 됐건, 계엄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법적 논란과는 별개로 정치적 비난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세간엔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김건희 여사 이슈 비중이 확 줄어들었다”고 했다. 많은 커뮤니티엔 “윤 대통령은 사랑꾼” “남편으로선 합격” 등과 같은 조롱성 글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 대통령이 부인 때문에 탄핵되는 것보다 본인이 반란수괴로 탄핵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라면서 “울고 싶은 데 뺨 때린 격으로 극단적인 화풀이를 했을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계엄 선포 시각과 관련한 미스터리도 고개를 들었다.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역술적인 조언을 받아 시각을 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시점은 10시 28분이다. 야권에선 “새벽에 계엄이 선포됐다면 이렇게 빨리 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
한 야권 관계자는 “비상계엄 선포 시각이 새벽이었다면 계엄을 통한 실효적 국회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대부분 국민이 깨어있는 시각에 계엄을 선포하면서 기습적인 조치가 실효성을 완전히 잃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기습적인 계엄이라기엔 시간 선택을 비롯한 절차들이 너무도 허술했다”고 지적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실제로 성공시키려 했던 의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면서 “계엄 자체가 너무 엉성했다”고 했다. 신 교수는 “정말 계엄으로 국회를 장악하려 했다면, 의원들 대부분이 지역구로 내려가는 금요일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의원들이 서울에 모여 있는 화요일로 비상계엄 택일을 한 것은 미스터리”라고 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그 동안 수많은 역술인 및 명리 상담가 조언을 얻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명리 상담가는 일요신문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선포를 한 시각은 명리를 어느 정도 배운 사람들이 얼핏 보면 길일과 길시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본인을 죽이는 시간대”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한 원외 인사는 “워낙에 허무맹랑한 비상계엄 정국이 펼쳐지다 보니, 어떤 해석을 하더라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신기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면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가 나온 뒤 상황을 지켜봐야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비상계엄 자체가 위법과 위헌의 덩어리였기 때문에 탄핵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탄핵당한 대통령이 있는 정당이라면 다음 선거는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대통령 탈당이나 출당 조치가 우선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계엄 해제 후 정가에선 중도거국내각 구성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어 관심을 모은다. 당직자 출신 여권 관계자는 “국민통합위원회를 주축으로 새로운 판을 짜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대통령실과 내각의 총사퇴가 현실화하면, 말 그대로 정부는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했다. 현재 중도, 진보진영 몇몇 인사가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계엄 정국이 개헌으로 이어질지도 관심사 중 하나다. 최대 위기에 봉착한 윤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 개헌 화두를 던질 것이란 시나리오다. 정치권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제7공화국을 여는 성과라도 하나 남기려고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