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변론 남겨두고 양측 모두 “내가 이겨”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형제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법정 싸움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남은 공판의 핵심 쟁점은 차명주주 입증 및 차명주식과 청구대상 주식 간 동일성 확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청와대 일요신문DB |
10분가량 재판장의 진행상황 설명이 있은 후 이맹희 전 회장 등의 소송 대리인인 원고 측의 구두변론이 시작됐다. 원고 측은 작심한 듯 삼성전자 및 삼성반도체통신(1988년 삼성전자로 합병)의 1987년 주주명부 중 차명주주로 의심되는 명단을 공개했다. 지난 2008년 삼성특검 당시 차명주주로 확정된 16명에서 대폭 늘어난 68명(중복 제외)의 명단이었다. 원고 측은 “1987년 선대 회장 타계에 따른 상속 개시 시점에 68명의 차명주주가 131만 4923주(전체의 4.7%)를 보유하고 있었다”며 “이는 ‘삼성특검’에서 전체의 5% 정도를 차명으로 보유했다는 삼성 관계자들의 진술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특검으로 확정된 16명을 가군, 특검 조사대상이었지만 확정되지 않은 27명을 나군, 삼성 임직원 중 개인주주로 보기 어려운 대량주식 보유자 25명을 다군으로 나눠 명부를 공개했다. 원고 측은 선대회장 타계일 앞뒤로 가장 가까운 시점의 삼성전자 및 삼성반도체통신 주주명부에 등재된 1000주 이상 보유 주주 가운데 같은 주식을 계속 보유한 182명을 분석, 차명주주 및 차명주식을 가려냈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에 따르면 삼성전자 차명주주로 추정되는 65명이 같은 날(1987년 1월 7일) 동시에 구주(27회차 주권)를 신주로 교환(명의개서)했고, 삼성반도체통신의 경우도 두 차례(1월 6일과 11월 19일)에 걸쳐 차명주주 추정 19명이 같은 날 동시에 구주(각각 5회차, 6회차)를 명의개서했다. 또 이들의 주권번호도 일련번호로 연결돼 있었다. 원고 측은 특히 “삼성반도체통신 6회차 명의개서일인 11월 19일은 선대회장 사망일”이라며 “긴급사장단회의와 빈소에 있어야 할 19명의 삼성 주요 임원들이 여의도 증권예탁원에서 줄을 서서 명의개서를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의 소송대리인인 피고 측은 “68명이라는 것은 원고 측 주장으로, 법원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주명부는 주식 잔고만 표시할 뿐 구체적인 거래내역을 담고 있지 못하다”며 “상속 당시 차명주식과 2008년 실명전환된 차명주식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수한 거래를 거쳤기 때문에 같은 주식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고 반박했다.
피고 측은 “차명주식의 경우도 이 회장이 주권을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이익배당금, 유·무상증자 참여 등을 단독으로 해 온 사실이 명백하고 상속재산과 청구대상 주식이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다”며 “(원고 측의 주장대로 상속권의 침해가 있었더라도) 선대회장 타계가 이미 25년이 지났기 때문에 제척기간(10년)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피고 측은 이번 소송이 각하나 기각 처분돼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재확인했다.
새로운 차명주주 명단을 공개한 원고 측 변론이 약 40분간 진행됐던 것에 반해, 피고 측 변론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기존 주장 위주로 약 25분간 이어졌다.
하지만 양측은 추가 증거 신청 채택을 놓고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원고 측은 청구취지와 범위 확정을 위해 차명주주로 추정되는 68명 가운데 금융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34명에 대한 증거조사를 요청했지만, 피고 측은 법적 동일성이 확인될 수 없는 만큼 불필요한 조사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원고 측은 “피고는 우리와 달리 특검 자료 등 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고 이의 공개를 통해 사실관계 확인과 법리적 해석이 돼야 하는 게 맞다”며 “피고가 어떤 이유에서든 진실 규명을 훼방 놓고 있다”고 반발했다.
재판장은 원고로부터 새로운 증거가 채택이 될 경우라도 기일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은 후 11월 29일까지 원고에 증거 신청서를, 피고에 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양측으로부터 각각 접수한 신청서 및 의견서를 검토해 3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추가로 삼성전자 차명주주로 추정되는 34명에 대한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서를 발송했다. 원고 측의 증거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변론종결기일인 8차 공판이 12월 18일로 예정된 가운데 재판부는 원고 측에 10일까지 마무리 서면을, 14일까지 반박 서면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지난 2월 소송이 제기돼 5월부터 8개월간 이어 온 삼성의 유산 상속 소송은 차명주주 입증 및 차명주식과 청구 대상 주식 간 동일성 확인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결국 이제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많은 새로운 증거가 추가로 채택되면서, 이 증거가 재판의 향배를 가를 주요 변수로 부상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원고 측이 새 증거를 바탕으로 차명주주 입증에 이어 차명주식과 청구 대상 주식 간 동일성을 입증해 낼 수 있을지, 기존의 반박 논리를 고수하며 피고 측이 방어에 성공할지는 마지막 변론에서 판가름 나게 될 전망이다.
양측은 모두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이날 재판 후 원고 측은 68명의 차명주주 명부 공개를 계기로 비로소 “승기를 잡았다”며 득의만면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하지만 피고 측은 “새로운 증거가 채택되더라도 거래 내역이 공개되지 않는 일정 시점의 주주명부만으로는 (청구 대상 주식과 차명주식 간) 동일성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애초 1조 원가량이었던 최초 소송가액은 원고 측이 삼성생명(6차), 삼성전자(7차)의 차명주주가 잇따라 추가 확인됐다고 주장하면서 4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원고 측은 마무리 서면을 제출하는 10일까지 청구 취지 변경을 통해 최종 청구금액을 확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르면 내년 1월에는 1심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