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출석·자료 제출 필수, 기술 유출 등 부작용 우려…민주 “꼼수 반복 불가피” 맹탕 국감 개선 기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국회증언감정법)’은 11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개인정보보호나 영업비밀보호를 이유로 자료제출 거부 불가 △질병, 부상,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현장 출석이 어려운 경우 의장 또는 위원장 허가 아래 원격 출석 의무화 △동행명령 가능 범위를 ‘국정감사·국정조사’에서 ‘중요한 안건심사 및 청문회’까지 확대 △자료 허위제출과 위증에 대한 처벌 강화 △상임위 활동기한 종료 뒤에도 위증 등의 죄에 대한 고발 가능 조항 신설 등이 골자다.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6단체’는 12월 17일 공동 성명에서 국회증언감정법이 “기업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제출하면 기업 기밀과 핵심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인의 국회 출석이 의무화될 경우 경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법이 규정한 과잉금지 원칙, 사생활 침해 금지 원칙,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날 성명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이 이름을 올렸다.
경제6단체가 우려하는 기술 유출 문제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재관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11건의 산업기술이 유출됐고, 이 중 36건이 국가핵심기술인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금액은 약 23조 원으로 추정된다. 경제6단체는 국회증언감정법이 통과되면 국회가 기술 유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마구잡이식 기업인 소환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24년 국정감사에 증인·참고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159명이다. 국감 범위가 넓고 여야의 정쟁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질문조차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안철현 애플코리아 부사장은 오후 9시경 질의를 받았고 약 3분 40초 동안 답변할 수 있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두고 여야 설전으로 시간이 지체되면서 질의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출석하지 않은 기업인은 최대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처벌 조항이 강화되면서다. 상임위·청문회에 불출석하거나 관련 자료제출을 거부 또는 방해할 경우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국회의 요구가 부당하거나 무리하다고 판단해도 출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재계에서는 ‘먹사니즘’을 강조하며 연일 기업 경영진과 만나던 이재명 대표에게 ‘뒤통수 맞았다’는 불만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입법횡포’라고 반발하며 재계 입장을 엄호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국회법에서 정한 ‘숙려기간’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회법 제59조에 따르면 일부개정법률안은 15일, 제정법률안과 전부개정법률안 및 폐지법률안은 20일의 숙려기간을 가진다. 이 기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는 법안을 상정할 수 없다. 다만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 의결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법안이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국회가 동행명령장을 남발하고 나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 처벌받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결국 국회가 무소불위, 절대권력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 의원은 “개인정보보호와 영업비밀보호 등의 이유로 서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은 헌법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과잉금지 원칙 등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그대로 통과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며 “개인정보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침해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국회의 감시기능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피감기관 자료제출 거부와 증인의 정당한 사유 없는 불출석 문제가 국회의 감시기능을 방해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판단이다. 핵심 증인은 불출석하고 필요한 자료는 확보되지 않으면서 ‘맹탕 국감’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국감 시기나 청문회 날짜에 맞춰 해외로 도피성 출장을 가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불출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업계나 기관의 비밀이라는 이유로 필요한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동행명령장 발부 등 강제 수단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이번 국감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명태균 게이트, 영풍그룹 환경오염 배출 문제 등 주요 의제 관련 증인들이 잇따라 불출석했다. 지병 악화와 일본 체류 등을 이유로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 불출석한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에서도 국감 진행을 방해하는 부적절한 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유착 관계를 빌미로 대통령 관저 공사를 경쟁 없이 따냈다는 의혹을 받는 ‘21그램’ 김태영·이승만 대표는 불출석 사유서조차 내지 않았다. 동행명령장 수령도 회피했다. 이 경우 국회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지만 지금까진 대부분 200만~1000만 원 사이의 벌금형에 그쳤다(관련기사 동행명령 피하면 그만? 22대 첫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 핑퐁게임).
여당과 재계 반발이 거세지만, 법안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란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면서다. 민주당은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한 총리가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했다는 점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하면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한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개정안은 2025년 상반기에 시행될 전망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