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말 회화의 소멸을 얘기하던 미술계의 주장이 거세던 시기도 있었다. 재료의 다양화와 예술 장르의 파괴가 이러한 담론을 만들어냈다. 표현 과잉 시대에 회화의 입지는 그만큼 약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특히 영상 매체의 발전이 회화의 위기에 당위성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회화는 이처럼 장구한 세월을 견디며 현재까지도 건재하게 예술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힘은 무엇일까.
회화는 벽화라는 바탕을 무척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동굴에서 시작해 건물의 벽을 장식하는 방법이었다. 거기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표현 어법이 종교와 결합하면서 탄탄히 발전할 수 있었다.


유채 기법은 바로크 시대와 사실주의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표현력을 만들어냈고, 인상주의 시대에서 활짝 꽃을 피운다. 이 시대를 거치며 만들어낸 여러 가지 유채 기법 중 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 ‘임파스토 기법’과 ‘웻 인 웻(Wet-in-wet) 기법’이다.
유채 재료의 성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임파스토 기법은 바로크 회화의 대가 렘브란트가 만년 작품에서 자주 썼다.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기법으로 작품의 깊이감을 살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 기법으로 회화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이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이 기법으로 격정적이며 운동감 있는 화면을 연출했다. 20세기 최고의 구상 회화를 만들어낸 루시안 프로이드도 임파스토 기법으로 성공한 사례다.

이 두 가지 기법은 현대 회화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다. 이주희도 이 기법으로 유채의 기본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연을 모티브로 생명력 있는 화면을 연출한다. 여행을 통해 얻는 자연을 추상적으로 재구성한다. 임파스토 기법으로는 붓질의 거친 맛을, 웻 인 웻 기법으로는 우연의 효과를 극대화한 오묘한 색채를 보여준다. 회화의 맛이 우러나오는 이주희의 회화가 반가운 이유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