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미술의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이즘의 미술이 번성했다. 미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모두 수용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새로움’이었다.
그 중에서 현대미술의 영역을 넓히는 데 큰 공을 세운 것 중 하나가 ‘개념미술’이다. 작품의 결과보다는 생각 자체를 예술로 보는 경향이었다. 아이디어가 곧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술의 토양을 풍부하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
개념미술의 출발점을 만든 이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삶 대부분을 프로 체스 선수로 살았던 뒤샹은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되었다. 사용 목적이 분명한 기성품에 새로운 의미를 붙여 예술품으로 만든다는 다소 황당해 보이는 생각이었다.
뒤샹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작품은 당시 미술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리처트 뮤트라는 양변기 제조회사의 상품인 남자용 소변기를 사다가 전시장(1917년 뉴욕에서 열린 독립미술가전)에 설치하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버렸다. 출품작가도 ‘리처드 뮤트’라 하고. 그러나 이 작품은 천박하다는 이유로 전시되지 못했다. 어쩌면 뒤샹이 예견한 당연한 논란이었을 게다. 논쟁이 이어지면서 ‘샘’은 서양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됐다.
소변기는 공장에서 생산돼 화장실에 설치되기 전까지는 둥근 형태의 세라믹 물체일 뿐이다. 용도가 주어지기 전의 물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미술에서는 ‘오브제’라고 부른다. 뒤샹은 여기에 ‘샘’이라는 개념을 주입했다. 이로부터 엄숙하게 조명을 받고 전시된 소변기는 ‘샘’이라는 예술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만약 뒤샹이 ‘샘’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모자’ 같은 제목으로 발표했다면,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 작품이 된 소변기는 ‘모자’로 알려졌을 것이다.
뒤샹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예술 신비주의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예술적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준 것이다. 뒤샹의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20세기 미술가들은 공들여 제작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찬사를 받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출발한 개념미술은 많은 작가를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다. 개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언어를 물리적 도상으로 만들어 세계적 작가가 됐다. 조각으로 널리 알려진 ‘LOVE’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건물이나 호텔 로비에서 볼 수 있다.
하사안도 언어를 이용한 아이디어로 개념적 회화를 보여준다. 언어가 가진 메시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는 이 시대의 다양한 문제를 글자 그림으로 언급한다. 전쟁, 환경 같은 무거운 주제에서부터 대중가요 가사의 달달한 메시지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언어가 보여주는 개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색 모래를 이용해 물질성을 강조한다. 개념과 물질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개념 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