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사기 탄핵, 국회 의결 사안” 맹공…민주 “내란 행위 하나도 제외 안해, 위헌만 밝히겠다는 것”
#‘내란죄 철회’ 공방
1월 3일 국회 탄핵소추단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 2차 기일에서 12·3 내란 사태 관련 내란죄, 직권남용권리행사죄,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부분을 탄핵 사유에서 철회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 사건은 내란죄가 본질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형법상 내란죄가 성립이 안 되는 것이라면 탄핵소추가 잘못된 것”이라며 “탄핵소추 사유를 철회하는 것은 국회 의결 사안”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내란죄 철회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곧바로 정치권으로 번졌다. 1월 5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탄핵소추안 의결이 졸속으로 이루어진 사기 탄핵이고 거짓으로 국민들을 선동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내란죄의 탄핵 소추 사유 제외는 탄핵소추안의 본질적인 변경을 의미하고 대통령 탄핵 소추 대리인단 몇몇 의원과 변호사들이 밀실 협의로 처리할 사안이 절대 아니다. 국회에 다시 뜻을 묻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처사”라고 주장했다.
1월 6일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했다. 권성동 원내대표와 4선 이상 중진 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헌재에 탄핵안 심리 중단을 요구했다. 권 원내대표는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과 면담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탄핵소추안을 보면 첫 문장에 (윤 대통령이) 내란 행위를 했다고 하고 내란이란 말이 38번이나 나온다. 탄핵소추의 중요한 사정 변경이기 때문에 내란죄를 빼면 탄핵소추는 성립되지 않는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 헌재는 각하해야 하고, 소추문 변경이 안 된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 입장을 밝힌 의원들도 내란죄 철회에 대해 “이재명 조기대선을 위한 행보”라고 꼬집었다. 1월 5일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 “개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탄핵소추에 동의한 것에 내란의 점에 관한 판단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 당연한 과정조차 여야의 당리당략에 오염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민주당에서 탄핵 결정을 서둘러 받을 목적으로 시간이 적게 걸리는 헌법상 내란행위 평가로 바꾼 것은 아닐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2심 선고 전 탄핵 및 조기 대선을 마무리하고 싶은 정치적 목적은 아닐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1월 6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제외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을 기망하는 처사이고, 오로지 이재명 재판보다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당기기 위한 암수”라며 “탄핵심판은 내란죄를 다투는 것이 아닌 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따라서 국회에서 통과된 탄핵소추안은 원안대로 제출해서 헌재에서 판단하도록 맡기는 것이 백번 옳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는 윤 대통령 탄핵 선고 시기와 맞물려 있다. 법조계에선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임기 종료일인 2025년 4월 18일 이전에 탄핵심판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몫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을 전격 임명하면서 탄핵 심리에 속도도 붙었다. 여기에 더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내란죄에 대한 판단을 헌재에서 하지 않게 된다면, 탄핵심판 최종 결론은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헌재는 91일 만에 인용 결정을 내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63일 만에 기각됐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속도가 과거 대통령 탄핵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재판은 원칙에 따라 진행되면 5월 안에 확정 판결이 나올 수 있다. 2024년 11월 15일 이 대표는 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현행법에 따라 2025년 2월 15일 전 항소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되면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선거법은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 안에 재판이 마무리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행위에 대한 판단을 철회하지 않았다며 국민의힘의 억지 논리라고 받아쳤다. 1월 4일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탄핵은 형사 소송이 아니라 헌법 재판이기 때문에 당연한 확인이자 정리일 뿐, 내란죄를 뺐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탄핵소추안에 탄핵 사유로 포함된 내란 행위 가운데 단 한 가지도 제외되지 않았다. 이러한 당연한 절차는 2017년 박근혜 탄핵 심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탄핵소추위원단은 박근혜의 뇌물죄, 강요죄 등 형법상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위헌 여부만 분명히 밝히겠다며 탄핵 사유서를 재정리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권성동 원내대표가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 시절 언론과 인터뷰한 영상을 참고 자료로 공유하며 반박 근거로 내세웠다. 권 원내대표는 2017년 인터뷰 영상에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그대로 유지를 한 채 거기에 대한 법률적 평가만을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당시 이 같은 주장을 펼치면서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뇌물죄·강요죄 등 형법상의 범죄에 해당하는 부분을 탄핵 사유에서 제외한 바 있다.
1월 7일 국회 측 대리인단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란 우두머리의 국헌 문란 행위라는 소추 사실은 한 글자도 철회하거나 변경한 적이 없다. 소추사유가 변경된 점이 전혀 없어서 국회 의결을 다시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며 “이는 그동안 준비절차에서 한 글자도 철회된 적 없고 내란행위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그 위헌성 등을) 빠짐없이 판단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 주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월 8일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헌정 회복을 위한 과제’ 토론회에서 “헌재가 형법상 내란죄 위반 여부에 집중할수록 윤 대통령 측은 형사재판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주의나 고도의 입증책임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탄핵심판을 최대한 지연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도 형법 위반 여부가 5가지 쟁점에 포함되었다가 제외된 점을 언급하며 “가장 중요한 소추 사유는 비상계엄 선포 행위의 실체적·절차적 위헌성”이라고 했다.
헌법연구원장 출신 김하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은 별개의 목적, 효과를 지닌 별개 절차”라며 “헌법 위반이 중대해 파면 결정이 정당화된다면 형사법 위반의 소추 사유에 관한 심리나 판단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일 사실에 대해 단순히 적용 법조문을 추가·철회 또는 변경하는 것은 소추 사유의 추가·철회·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 소추위원은 변론 과정에서 소추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를 정리하고 이를 유형화, 단순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완중 전남대 로스쿨 교수는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 제2문에 따라 탄핵 심판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이 준용된다”며 “기존 소추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형사소송법 제298조를 준용해 소추위원은 별도의 국회 절차 없이 소추 사유를 추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법원 허가로 적용법조 추가, 철회 또는 변경을 할 수 있고,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허가해야 한다.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
탄핵심판 절차에 하자가 생겼다는 학계의 반박도 있다. 1월 9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통령 탄핵 절차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호선 국민대학교법학대학원 학장은 “국회소추단의 내란죄 철회로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는 사실상 종료됐다고 봐야 한다”며 “탄핵소추안과 탄핵소추서는 별개로, 두 가지는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심리 종료 선언이나 각하를 결정하지 않고 탄핵 인용을 염두에 둔 본안 판단으로 나아간다면 민주당의 ‘소추사기’를 이어받아 ‘탄핵사기’를 완성하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