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삼성이 LG 편 들어준다고?
▲ 지난 2005년 워크아웃 상태를 졸업한 하이닉스 반도체. 현재 알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하이닉스의 경영권이 누구 품에 안기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래픽=장영석 기자 | ||
그러나 국내 반도체 시장의 최대 화두는 주인 없는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영권 향방일 것이다.
자산규모 13조 원대의 하이닉스를 어디에서 인수하느냐에 따라 국내 재계 순위는 물론 세계 반도체 업계에도 지각 변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인수 1순위 후보는 역시 LG그룹이다. LG전자의 최근 동향도 심상치 않다. 반도체 제품을 만들어 내부 조달용으로만 활용해온 LG가 최근 자사 반도체 제품을 내비게이션 단말기 업체 등 외부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LG는 반도체 공장은 없지만 1000명 정도의 반도체 연구 인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LG그룹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관심은 하이닉스반도체와 관련지어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이른바 ‘반도체 빅딜’을 통해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하이닉스의 전신)에 빼앗긴 전력의 LG가 다시금 하이닉스를 품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LG전자의 하이닉스 인수설은 지난 2005년 7월 하이닉스가 워크아웃을 졸업하면서부터 업계 인사들 사이에 꾸준히 나돌아 왔다. LG 측은 한사코 인수설을 부인해왔지만 업계 인사들의 LG전자-하이닉스 합병 가능성에 대한 입방아는 끊이질 않았다.
이는 LG그룹이 반도체 사업과 맺어온 기구한 인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반도체 빅딜을 통해 LG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로 넘어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구본무 회장과 LG그룹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구 회장이 전경련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반도체 빅딜을 꼽는 시각이 적지 않다.
구본무 회장은 지난 3월 27일 배포된 그룹 창립 60주년 기념 사사(社史)를 통해 반도체 빅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반도체 사업의 주체로 현대전자보다 LG전자가 더욱 적합했다는 시각과 반도체 빅딜에 응하지 않았을 경우 각종 제재를 받았을 것이란 의견도 빼놓지 않았다.
LG그룹 내부 상황 역시 업계 호사가들 사이의 하이닉스 관련 소문을 부추긴다. LG전자 등 주력 계열사들의 수익 기반 약화로 구조조정 관련 소문들이 따라 다닌 지 오래다. LG전자는 본사 인력의 40%가량을 현업부서로 재배치하고 수익악화를 맞은 PDP사업에 대한 경영컨설팅을 진행했으며 LG필립스LCD(LPL)에 대한 소폭의 인력감축설도 나돌았다.
LG전자가 지난해 말 정기인사를 통해 기존의 김쌍수 부회장을 (주)LG로 이동시키고 남용 부회장 체제를 택한 것도 LG그룹이 갖고 있는 LG전자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대목으로 평가받는다. LG그룹이 지난해 재계 3위 자리를 SK그룹에 빼앗긴 이후 신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하이닉스 인수설의 당위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한때 LG전자가 LPL 지분 일부를 매각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LG전자의 하이닉스 인수설은 더 힘을 받았다. 현재 LG전자가 지닌 LPL 지분 37.9%의 현금가치는 4조 76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전량을 매각한다면 하이닉스 지분 32% 매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LG전자가 LPL 지배권을 잃지 않는 선에서 지분 매각을 할 경우엔 추가 자금 조달이 문제가 될 수 있다. LG전자가 다른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고 우호세력의 지분 참여를 독려해 하이닉스 인수에 나설 수도 있지만 간단치 않아 보인다. ‘LG가 하이닉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도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역으로 동부일렉트로닉스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업계에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최근 동부그룹은 적자에 시달리는 동부일렉트로닉스를 수익성이 좋은 동부한농과 합병했다. 시장에선 동부그룹의 이런 움직임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미래수익사업으로 잡은 반도체 사업의 투자 여력을 확대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고 있다. 동부의 반도체 사업에 추가 투자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몸 만들기’에 나선 동부가 하이닉스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동부 쪽에선 손사래를 치고 있다. 동부그룹의 자산규모가 금융 부문을 빼면 하이닉스와 비슷한 규모로 단독으로 인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하이닉스를 인수하려면 10조 원 정도의 돈이 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G그룹의 자산 규모는 52조 원, 동부그룹의 자산규모는 17조 원, LG전자는 13조 원이다. 때문에 LG조차도 단독으로 하이닉스를 인수하기는 버거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규모 인수합병전에 늘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GS그룹의 자산규모도 25조 원 정도라 국내에서 하이닉스 인수가 가능한 곳은 몇 군데에 불과하다.
LG가 이런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도체 사업과 관련한 각종 인수설을 모두 부인하고 있음에도 하이닉스 관련 소문이 계속해서 나도는 배경을 다른 데서 찾는 시각도 있다. 업계의 여러 호사가들은 ‘LG의 하이닉스 인수설 배후에 삼성 측 인사들이 있을 것’이란 시각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해 5조 8640억 원 매출에 1조 846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하이닉스가 해외업체에 넘어갈 경우 국부유출은 물론 기술 이전에 따른 경쟁 강화로 삼성전자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업체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 삼성은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삼성 입장에서만 보자면 중국업체보다는 LG가 하이닉스의 새 주인이 되는 것이 나을 것이란 논리로 이어진다. LG가 하이닉스의 새 주인이 될 경우 국내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적 강자로 자리잡은 삼성이 국내 시장 점유율에서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며 LG의 투자 여력을 감안할 때 국제무대에서도 삼성이 여전히 강자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