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부담 결국 미국 내 수입 업체→소비자에게 이어져…실질 소득 감소·물가 상승 우려 높아
[일요신문]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 전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78)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월스트리트저널’마저 최근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두고는 이렇게 일갈했다. 사설을 통해 신랄한 비난을 퍼부은 ‘월스트리트저널’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경제적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이 전략이 재앙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협상을 벌인 끝에 3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상태다.
이처럼 동맹국이든 적국이든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켜보는 경제전문가들은 비난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국에 이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을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물가 상승을 유발하거나, 일자리를 빼앗는 등 미국 경제를 둔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트럼프의 이번 강수는 노련한 협상 기술일까, 아니면 멍청한 자책골일까.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켜보는 경제전문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진=AP/연합뉴스트럼프는 대선 때부터 이미 공공연하게 “미국은 사실상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게 갈취를 당해왔다. 미국은 거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한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지만, 나는 이를 바꾸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에게 “(관세로 부과되는) 이 세금은 여러분이 아니라, 다른 나라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관세 전쟁을 통해 결국 마약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 트럼프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 강력한 약물인 펜타닐의 유입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마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화학 물질은 중국에서 생산되지만,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는 갱단은 주로 멕시코에서 활동하고 있고, 펜타닐 연구소는 캐나다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과연 트럼프의 주장대로 관세 전쟁은 미국에 유리하기만 한 걸까. 1기 행정부 때 트럼프는 관세 전쟁의 목표로 미국의 무역적자 폭 감소, 제조업체의 국내 복귀 장려, 글로벌 경쟁국들의 불공정 무역 관행 타파, 미국 내 일자리 증가 등을 꼽았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오히려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며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관세 비용은 외국 정부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 반박하는 기사를 통해 “관세의 기본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관세는 누가 부담하는가’이다. 관세란, 어떤 제품이 국내로 들어올 때 부과되는 추가 세금이다. 이때 실제로 연방정부에 관세를 지불하는 주체는 수출국의 외국 기업이 아니라, 해당 제품을 수입하는 국내 업체다. 그런 의미에서 관세는 미국에 있는 기업이 미국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은 약 3조 1000억 달러(약 4500조 원)의 상품을 해외에서 수입했으며, 이는 미국 GDP의 약 11%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리고 수입품에 부과된 관세를 통해 미국 정부는 그해 미국 전체 세수의 약 2%에 해당하는 800억 달러(약 116조 원)를 세수로 확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두고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 전쟁’이라고 비판했다.그렇다면 수입업체의 국적은 어디일까. 미국 기업 또는 외국 기업이거나, 아니면 미국에 지사를 둔 외국 기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미국 내 자국 기업이며, 여기에 바로 트럼프 관세 정책의 허점이 있다. 많은 미국 기업들이 ‘외국 정부가 관세를 부담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는 미국 기업들이 이 세금을 부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가령 뉴저지에 본사를 둔 자전거 제조업체인 ‘켄트 인터내셔널’의 경우, 중국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자전거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막대한 이윤 감소를 겪었다. 트럼프가 2018년 중국산 제품에 처음으로 관세를 부과한 이후부터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자전거와 부품에 대한 관세를 추가로 납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널드 캠러 회장은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관세를 부담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최종 단계에서 궁극적으로 관세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건 누구일까. 수입업체일까, 수출업체일까 아니면 소비자일까. 먼저 수입업체가 소비자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관세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기업 이윤이 줄어들거나, 아니면 내내 손해를 보다가 결국 폐업하게 될 수도 있다. 수입업체가 공급업체(상대국 수출업체)에게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을 할 수도 있다. 단, 이는 대규모 구매력을 보유한 대형 업체에 한해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소량의 상품을 주문하는 중소기업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즉, 이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법이다.
실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관세를 조사한 여러 경제 연구에 따르면, 이 비용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캠러 회장 역시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관세로 인해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트럼프 정부는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메리 러블리는 CNN과 전화 인터뷰에서 “역사상 가장 심각한 자책골이 될 수 있다”면서 “이건 엄청난 도박이다. 경제를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한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부과된 관세 비용은 궁극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2018년 수입산 세탁기에 50%의 관세를 부과하자 수입산 세탁기 가격은 34% 상승했고, 이에 따라 미국 내 전반적인 세탁기 가격 역시 약 12% 상승했다. 이에 따라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의 새로운 관세 정책이 미국인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킬 것으로도 전망했다.
궁극적인 관세 비용이 소비자에 전가돼 결과적으로 미국인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킬 것으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오클랜드 항구에 정박한 컨테이너선. 사진=AFP/연합뉴스소비자 가격이 인상되면 자연히 물가 상승이 뒤를 잇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새로 발표된 관세 정책으로 인해 연간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2.9%에서 최대 4%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럴 경우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2023년 중반 수준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는 “이는 미국 경제에 대한 자해적 조치다. 사람들이 구매하는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면 소비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향후 3~4개월 동안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질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런가 하면 가계와 경제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에 대해 싱크탱크인 ‘조세재단’은 올 한 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로 미국 소비자들이 추가로 부담하게 될 금액은 가구당 830달러(약 120만 원) 이상이 될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2025년부터 2034년까지 미국 경제에 미치게 될 총 부담액은 9580억 달러(약 1390조 원)다. 이에 경제학자들은 당장은 미국에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 압박이 불가피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실제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조치로 인해 미국 내 근원 물가가 0.7% 상승하고, 미국 국내총생산은 0.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관세 조치가 향후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창출한다는 경제적 명분은 어떨까. 선거 유세에서 트럼프는 “내 계획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들은 더 이상 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외국이 미국에 일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큰소리쳤다.
과연 그럴까. 철강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트럼프는 2018년, 미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2년이 지난 2020년 미국 철강 산업의 총 고용 인원은 8만 명이었으며, 이는 2018년의 8만 4000명보다 오히려 줄어든 수치였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트럼프의 철강 보호 조치가 없었더라면 고용 감소가 더 심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BBC는 “관세가 미국 철강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경제 연구에 따르면, 눈에 띄는 긍정적인 고용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학자들은 철강에 관세가 부과된 후 미국 내 철강 가격이 상승하면서 철강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다른 제조업 부문, 예를 들어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오히려 고용 감소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무역 적자는 어떨까. 이 조치를 통해 미국은 정말 무역 적자 폭을 감소할 수 있을까. 트럼프가 취임하기 직전인 2016년에는 미국의 상품 및 서비스 무역 적자는 4800억 달러(약 700조 원)로, 이는 미국 GDP의 약 2.5%에 해당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무역 적자는 줄어들기는커녕 6530억 달러(약 945조 원)로 되레 증가했다.
이는 GDP의 약 3%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 달러의 가치를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관세로 인해 외국 통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달러 가치가 상승했고, 이는 미국 수출업체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캐나다 및 멕시코와의 관세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비율(46%)이 지지하는 비율(28%)보다 훨씬 높은 상태다. 뉴욕 홀푸드 매장에 진열된 캐나다산 토마토. 사진=AFP/연합뉴스무역 적자가 해소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글로벌 경제에서는 사실상 관세를 우회하는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30%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중국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들은 이를 교묘히 피해 나갔다. 가령 조립 공장을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으로 옮긴 후 해당 국가에서 완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피해왔다.
다른 무엇보다 캐나다, 멕시코 등 두 이웃 국가에 대한 관세 조치를 맹렬히 비난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가리켜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친구가 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오래된 버나드 루이스 농담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또한 “트럼프는 미국이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자급 경제를 꿈꾸는 듯 말한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도 곧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또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세상도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이어서 ‘역사상 가장 멍청한 무역 전쟁의 후폭풍이 시작된다’라는 후속 기사를 통해서는 “트럼프는 관세가 외교적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동맹국들과 적국들의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바꾸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역사상 가장 멍청한 무역 전쟁’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닐 수 있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미국인들의 반응 역시 현재로선 싸늘한 편이다.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및 멕시코와의 관세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비율(46%)은 지지하는 비율(28%)보다 훨씬 높은 상태다.
진짜 원했던 건 ‘국경 경비 강화’?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 통했나
캐나다와 멕시코에 각각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던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협상 끝에 일단 30일간 유보됐다. 대신 이를 통해 트럼프가 얻어낸 것은 마약 및 불법 이민 단속을 위한 국경 강화 조치였다. 캐나다는 마약 문제를 전담하는 ‘펜타닐 차르’를 임명하는 한편, 국경 경비 인력을 1만 명 투입하고,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동원하는 등 국경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멕시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트럼프의 저서 ‘거래의 기술’.이처럼 트럼프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내민 협상 카드가 유효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어쩌면 트럼프가 진짜 노렸던 건 관세보다는 국경 경비 강화 아니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스탠다드차터드’의 댄 판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는 트럼프가 관세 위협을 북미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기보다는 협상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트럼프가 강조해온 유명한 개념인 ‘거래의 기술’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트럼프식 압박 전술이 효과를 발휘한 게 아니냐는 의미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협박-유화-승리’로 요약된다. 이를테면 먼저 상대에게 압력을 가한 후,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한 다음,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도록 해 결국 승리하는 게 그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단순히 ‘패배한 자는 모든 걸 잃는다’ 식의 완전 항복을 요구하는 식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종의 전시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인접한 우방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먼저 공격한 이유가 두 나라 모두 미국 의존도가 높은 까닭에 어떻게든 트럼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요컨대 캐나다와 멕시코를 본보기로 삼아 다른 나라들에게 경고장을 내밀었다는 의미다.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앤메일’은 “트럼프는 때에 따라 목표를 바꾸긴 하지만, 그의 전술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거래적인’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 그 자체일지 모른다”라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이번 ‘승리’는 과연 미국의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까, 아니면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멍청한 무역 전쟁’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