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은퇴 직전 모두 체지방률 7% ‘자기관리의 신’…고교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맹연습 일화도
![시애틀 매리너스는 이치로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발표된 후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사진=시애틀 매리너스 SNS 캡처](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6/1738804649142015.jpg)
이치로가 MLB 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28세로, 매우 늦은 나이였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첫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 도루왕, 선두타자를 독식했다. 좌전, 우전 안타를 골고루 때려냈고 빗맞은 공은 빠른 발로 내야 안타로 만들었다. 수비력도 환상적이었다. 특히 어깨가 강해 일명 ‘레이저송구’로 칭송받았는데, 이치로가 펜스를 향해 뛰어올라 타구를 낚아채는 모습은 상대편 선수마저 “닌자(자객) 같다”며 혀를 내두르곤 했다.
2004년에는 262안타로 단일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MLB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 500도루, 골드글러브 10회 수상을 한 선수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총리의 이름은 몰라도 이치로 선수를 모르는 일본인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치로 열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MLB 통산 3089안타를 쳤고,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남긴 1287안타를 더하면 4367개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야말로 전인미답 ‘안타 제조기’로서 확고한 족적을 남겼다.
현역 시절 맹활약으로 이치로는 일찌감치 명예의 전당 입회가 예견됐다. 관건은 만장일치 여부였다. 1936년 설립된 명예의 전당에서 만장일치로 입성한 선수는 2019년 마리아노 리베라가 유일하다. 아쉽게도 이치로는 딱 1표가 모자랐다. 지난 1월 22일 미국야구기자협회 투표 결과, 이치로는 전체 394표 중 393표를 얻어 득표율 99.7%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만장일치 불발에 일본은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1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정작 이치로는 “1표가 부족한 것도 굉장히 좋다”라며 기뻐했다. 그는 “불완전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더 발전할 수 있다”며 “자신만의 완벽함을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1992년 오릭스 입단 당시 이치로. 프로 생활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사진=NHK 뉴스 캡처](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6/1738804718684054.jpg)
이치로는 스스로를 천재가 아니라 노력가라고 표현한다. 어느 기자의 질문에 그는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나는 천재가 맞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통했던 이치로는 99%의 노력으로 탄생한 야구천재인 셈이다.
이치로의 고교시절 일화다. 당시 기숙사에서는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났는데, 알고 보니 한밤중에 몰래 연습하는 이치로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치로는 “연습을 못 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편안해 기숙사에 들어갔던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프로 생활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92년 고등학교 졸업 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마지막 순번인 4라운드에서 지명돼 비인기 팀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했다. 그해 신인 중 36번째로 지명된 평범한 기대치의 선수였다. 그런 이치로가 MLB 야구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오릭스 시절 이치로의 전속 배팅볼 투수였던 오쿠무라 고지는 “자체 훈련기간에 돌입하면 이치로는 피칭머신을 상대로 몇 시간이고 묵묵히 방망이를 휘둘렀다. 나는 그만큼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며 훈련하는 선수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치로에게 비결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내게는 그날그날 해야 할 목표가 있고, 착실히 이어가다 보니 3시간이든 4시간이든 집중할 수 있다. 목표가 없는 훈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쉬거나 기분 전환을 하는 게 낫다.”
![이치로는 전체 394표 중 393표를 얻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시애틀 매리너스 SNS 캡처](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6/1738804815266002.jpg)
이치로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 자신의 목표를 ‘프로야구선수’로 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꿈’이라는 제목의 작문은 현지 언론을 통해 많은 화제를 뿌렸다. 글짓기 내용을 보면 장래 꿈은 ‘일류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썼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해야 할 연습 메뉴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노력과 근성의 소년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작문에는 “1년 365일 중 360일을 강도 높게 연습하고 있으니 나는 반드시 프로야구선수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이 넘친다.
하루하루 착실히 다진 노력은 프로 데뷔 3년 차에 빛을 발했다. 1994년 혜성처럼 등장한 오릭스의 이치로는 2000년까지 NPB 최초로 7년 연속 수위타자를 꿰찼다. “현상 유지는 후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이치로는 결과를 낸 다음 해에도 매년 진화해갔다.
이치로는 그 누구보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선수였다. 데뷔부터 은퇴까지 변함없는 기량을 유지한 것도 이치로만의 특별한 업적이다. 근력운동을 빼놓지 않았던 이치로는 호텔을 선택할 때 훈련시설이 있는 곳을 우선 조건으로 했다. 원정경기 때는 숙면을 위해 전용 베개를 챙겼고, 경기장에는 항상 5시간 전에 도착하는 게 원칙이었다. 발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고 생각해 더그아웃에 있을 때도 나무 막대기로 발바닥을 꾸준히 문질렀다. 생체리듬을 항상 일정하게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아침엔 카레를, 점심으로는 페퍼로니 피자를 먹었다.
이치로는 한 인터뷰에서 “꿈을 이루는 것은 단번에 할 수 없다. 작은 일을 거듭 쌓아나감으로써 언젠가 믿기 어려운 힘을 낼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치로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투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이치로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발표된 후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2월 1일에는 이치로가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시애틀 매리너스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공개됐다. 이치로는 “2001년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소중히 지내다 보면 이렇게 좋은 일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이 많다.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참 많이 있다. 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작은 일이 쌓여 최종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구나’라고 재차 되돌아보게 된다”며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설파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