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와 소송중 계좌동결” 가짜 피트에 속아 12억 뜯겨…누리꾼 조롱·야유에 2차 고통 시달려
[일요신문] ‘안, 당신을 사랑합니다.’
만일 브래드 피트(61)가 이렇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과연 설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최근 프랑스에서 피트를 사칭하는 사기범에 속아 넘어가 재산을 탕진한 로맨스 스캠이 벌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피해자는 53세의 프랑스 여성으로, 당시 이혼 수속을 밟고 있던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였다. 사기범의 수법은 AI(인공지능)를 이용할 정도로 교묘하고, 또 치밀했다.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AI로 생성한 가짜 사진을 이용해 상대를 감쪽같이 속였다. 피트의 얼굴을 합성한 셀카 사진을 보면 다소 어설프긴 해도 사랑에 빠진 상태라면 충분히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1년 넘게 자신이 피트와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는 줄로만 착각한 이 여성이 입은 금전적 피해액은 무려 83만 유로(약 12억 5000만 원)에 달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최근 프랑스에서 브래드 피트를 사칭한 로맨스 사기가 벌어져 화제가 됐다. 지난해 9월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피트. 사진=EPA/연합뉴스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안이 처음 피트라고 주장하는 남성과 접촉한 건 2023년 2월이었다. 프랑스의 알프스인 티뉴에서 자녀들과 스키 휴가를 보냈던 안은 당시 찍은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처음 가입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여성으로부터 개인 메시지(DM)가 도착했다. 놀랍게도 이 여성은 자신을 ‘브래드 피트의 어머니인 제인 피트’라고 소개했다.
미심쩍어 하는 안에게 제인이라는 이 여성은 집요하게 자신이 피트의 모친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꼭 만났으면 하는 스타일이다” “내 아들과 아주 잘 어울린다”며 안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다음 날, 급기야 자신이 피트라고 주장하는 남성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역시 인스타그램 개인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식으로 접근해왔다.
처음 안은 경계하고 의심했지만, 이런 의심은 시간이 흐르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무엇보다 피트라고 주장하는, 아니 믿고 싶은 이 남성이 자상하고 세심한 데다 배려 깊은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BFMTV 보도에 따르면 안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남자는 정말 드물었다. 나는 그와의 대화가 좋았다. 그는 여자와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여자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라고 했다.
안은 비록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눴지만, 그 남성이 자신의 삶과 열정, 직업, 가족 등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때때로 시와 노래를 보내오기도 했으며, 심지어 본인의 셀카 사진까지 보내왔다. 그러면서 그 사진은 온라인 어디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이 직접 찍은 셀카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속의 그 남성은 진짜 피트처럼 보였고, 안은 그렇게 점점 상대가 그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라고 믿기 시작했다. 다만 두 사람은 문자와 사진으로만 소통했으며, 안이 전화 통화를 요청할 때마다 그는 “지금은 바쁘다. 나중에 하겠다”면서 늘 회피하곤 했다.
그렇게 매일 온라인 채팅을 이어나간 결과 마침내 안은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하자 남자는 안에게 청혼을 하기에 이르렀고, 애정의 선물로 값비싼 명품 가방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선물을 프랑스로 보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금액의 세관 수수료를 먼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안은 그에게 9000유로(약 1400만 원)를 송금했다. 당시 안의 딸이 사기꾼일지 모른다며 경고했지만, 안의 귀에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피트가 직접 여기로 오면 아마 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게 될 거다”라고 고집을 피웠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안이 순순히 돈을 보내자 상대는 점점 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 마침 안이 부유한 사업가와 이혼 수속을 밟고 있고, 이혼 합의금으로 거액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남성은 더 큰 돈을 요구해왔다. 자신이 심각한 신장 질환을 앓고 있어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고 주장한 그는 안을 안심시키기 위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셀카 사진을 보내왔다. 이번에도 분명 사진 속의 환자는 피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트 사칭범은 자신이 신장 질환으로 병원에 누워 있다며 AI로 만든 셀카 사진을 보내 거액 송금을 요구했다. 사진=X그는 안에게 “내가 지금 앤젤리나 졸리와 복잡한 이혼 소송 중에 있어서 계좌가 동결된 상태다. 당장 병원비가 필요한데 지불할 수가 없다”라면서 도움을 청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사랑을 나눈 피트가 자신에게 사기를 칠 것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안은 튀르키예 계좌로 당장 거액을 송금해주었다. 그렇게 몇 달에 걸쳐 안이 사랑하는 연인인 피트에게 보낸 돈은 83만 유로(약 12억 5000만 원)에 달했다. 언젠가 피트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겠다는 단꿈에 젖어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런 달콤한 꿈은 머지않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어느 날 TV 뉴스를 통해 진짜 피트가 새로운 연인인 이네스 드 라몬과 교제 중이라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TV를 통해 진짜 피트의 모습을 본 안은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TF1(프랑스24)에 출연해 자초지종을 설명한 안은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가짜라고 말했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당시 나는 소셜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았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서 그는 “도대체 왜 나를 골라서 이렇게 끔찍한 짓을 했는지 묻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이런 사람은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현재 안은 이 남성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로,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안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로맨스 사기를 당했다는 사연이 알려지자 곧 누리꾼들은 그를 향해 조롱과 야유,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배우의 아내가 되려는 허황된 꿈을 꾸었다고 비난하거나, 도대체 얼마나 멍청하면 그런 꾐에 속아 넘어가냐는 야유도 쏟아졌다. 심지어 안의 이야기를 풍자하고 나서는 곳도 있었다. 가령 프랑스 1부 리그 축구팀인 툴루즈 FC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안녕하세요, 브래드 피트가 수요일에 #TFCLAVAL 경기장에 온다고 합니다. 당신도 오나요? 여기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링크를 안내합니다. 수요일에 뵙겠습니다”라고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또한 넷플릭스 프랑스는 ‘브래드 피트와 함께 볼 수 있는 무료 영화 네 편’을 특별 편성해 홍보하기도 했다.
로맨스 스캠으로 큰 상처를 입은 안은 누리꾼들의 조롱과 비난으로 또 한번 고통을 받았다. 사진=유튜브이에 무일푼 상태로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던 안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의 변호사인 로렌 한나는 “의뢰인이 모든 게 자신 탓이라고 인정하면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온라인에서 ‘멍청하다’ ‘순진하다’ ‘바보 같다’라고 조롱당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결국 소셜미디어 계정을 모두 삭제했다고도 말했다. 또한 안은 자신을 가리켜 불륜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나는 결코 남편을 속인 적이 없다. 그저 누군가를 돕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방송에 나가 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내가 유일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라고 항변했다.
급기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안은 세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두 달 전 스스로 정신건강 클리닉에 입원한 안은 현재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에 대해 ‘끔찍하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마치 처음 로맨스 사기를 보는 듯 심하게 조롱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류의 사기 사건은 안에게 처음 일어난 게 아니다”면서 “안에게 필요한 건 조롱이 아니라 조언과 존중이다”라고 당부했다. 현재 변호인은 안이 아무런 제재 없이 거액을 해외 계좌로 송금할 수 있도록 허용한 프랑스 은행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황당한 소식을 접한 피트 측 역시 공식 입장을 밝혔다. 피트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팬들과 유명인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악용하는 사기 행위는 끔찍하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 계정이 없는 배우들에게 받는 온라인 메시지에는 절대 응답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로맨스 사기 누가 왜 당할까? 충동적+이타적 성향 요주의
로맨스 스캠이라고도 불리는 로맨스 사기는 감정을 착취해 금전을 갈취하는 사기 범죄다. 일반적으로 피해자들은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지지만, 실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피해자들의 상당수는 고학력자들인 경우가 많다.
사기꾼들은 종종 온라인에서 형성된 가상의 연애 관계를 이용해 피해자로부터 돈이나 물품을 요구하는 식의 범죄를 저지른다. 이러한 유형의 사기는 여성만큼이나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녀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로맨스 사기는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피해자의 감정을 조종하고 심리를 이용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로맨스 사기는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피해자의 감정을 조종하고 심리를 이용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일요신문DB로맨스 사기범들의 수법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대부분 비슷한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먼저 첫 번째 접촉은 대부분 데이트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 이들은 철저하게 조작된 가짜 신분증을 사용하며, 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로 자신을 포장한다. 해외에 거주하거나 출장이 잦은 직업을 가진 인물로 설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설정을 하고, 이를 통해 만나지 못해도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또한 로맨스 사기범들은 처음 접촉한 플랫폼을 떠나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대화를 나눌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존의 플랫폼에서는 자칫하다간 사기 의심 계정으로 계정이 삭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를 다른 곳에서 조종하면 기존의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더욱 안심하고 상대를 속일 수 있게 된다.
사기범들은 직접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핑계를 대곤 한다. 출장, 업무 일정, 가족 문제 등을 이유로 만남을 회피한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가짜 영상을 만들거나 목소리를 조작하는 등 범죄 수법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피해자가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치밀하게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다. 사랑이 담긴 메시지나 시를 보내거나, 전화 통화를 자주 하거나, 작은 선물을 보내는 등 ‘애정 공세’를 펼치면서 상대가 감정적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이렇게 신뢰가 쌓이면 슬슬 금전적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소액을 요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요구하는 액수는 커지게 된다. 대부분 건강 문제나, 긴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급전을 요구한다.
만일 피해자가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돈을 보내지 않으면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관계를 끝내겠다고 협박하거나, 냉랭하게 굴거나, 심지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피해자로 하여금 불안감과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위협을 느낀 피해자는 대부분 결국 다시 돈을 보내게 된다.
그럼 어떤 사람이 주로 로맨스 사기에 당할까. 먼저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표적이 된다. 가령 안의 경우에도 이혼 후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상대에게 속아 넘어갔다. 충동적인 성향이 강하면서 이타심이 강한 경우에도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즉흥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으며,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가 도움을 요청하면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이러한 성향을 악용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또한 권위자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로맨스 사기를 당할 위험이 높다. 공인이나 유명인사를 만나면 무조건 믿고 신뢰하는 경우다. 사기범들이 유명인인 척 가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의 결정을 뒤집지 못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은 한번 내린 결정을 바꾸는 것을 어려워한다. 가령 피해자들은 돈을 보낸 후 “내가 사기당한 게 아니다”라고 믿으려고 하며, 이 때문에 의심하면서도 계속 사기범들과 연락을 유지한다. 자신이 처음 내린 판단을 부정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의심이 들더라도 쉽게 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악용하는 사기범들은 피해자에게 점점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