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기쁨’ 일깨우는 평범한 아저씨의 먹방…한국서 인기 높자 황태해장국·돼지갈비 등장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 드라마다. 구스미 마사유키가 글을 쓰고, 다니구치 지로가 작화한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2012년부터 드라마로 제작돼 시즌 10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올해 1월에는 극장판도 개봉했다. 드라마가 탄생한 지 1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인기가 꺾일 줄을 모른다.
심야 시간대에 방송되었기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야식테러 드라마’로 통한다. 기본적인 구성은 매회 에피소드가 똑같다. 주인공인 고로가 영업처를 다니며 혼자 밥을 먹는다는 단순한 구성이다. 복수나 배신, 사랑 같은 드라마틱한 설정은 없다. 그저 중년의 아저씨가 문득 배가 고파져 즉흥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고 배부르게 밥을 먹을 뿐이다. 그 모습을 멍하니 계속 바라보게 되는 소박한 매력이 있다.
고독한 미식가가 방영됐을 당시 일본에서는 ‘봇치메시(혼자 먹는 밥, 혼밥)’라는 말이 주목받았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통해 혼밥은 쓸쓸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최고의 ‘치유 활동’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퍼졌다. 실제로 드라마 속 주인공 고로가 홀로 식사하는 모습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에 공감해 주인공을 따라 맛집을 찾아다니며 고독을 즐기는 나홀로족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식사 장면에 있다. 예를 들어 지글지글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까지 실감 나게 담아내 군침을 돌게 한다. 마치 시청자가 그 자리에서 먹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여기에 주인공이 음식을 맛보며 중얼거리는 독백은 먹는 기쁨을 직설적으로 전달해준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식당은 모두 실재하는 음식점이라고 한다. 주로 그 지역에서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오래된 맛집이다. 극 중 주인공 고로가 화려하고 비싼 음식을 먹는 일은 좀처럼 없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포맷은 반복되지만, 서민 맛집이라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고독한 미식가의 제작진들은 “오래된 가게에는 반드시 그만의 매력이 있다”며 “어떻게 하면 단골의 시선으로 가게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게마다 최적의 촬영법이 매번 달라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10년 넘게 드라마를 지속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주인공 고로를 연기한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62)의 존재도 작품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요인이다. 190cm의 장신에 친근한 외모의 소유자로, ‘내 위장에 불을 지폈다’라는 독백에 딱 맞는 능청스럽고 노련한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술 대신 항상 우롱차를 주문하는 것도 아기자기하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마쓰시게는 촬영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촬영하러 온다”고 한다. 너무 배고프니 정말 맛있게 먹는다.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뿐 아니라 대만과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도 인기를 자랑한다. 드라마 속 식당의 위치를 알려주는 앱까지 생겨났다.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데, 이 때문인지 황태해장국, 돼지갈비 같은 한국 음식들도 자주 등장한다. 배우 마쓰시게는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을 당시 “한국에서는 천재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보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더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얼마 전 일본 언론 마이니치신문은 고독한 미식가가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극적인 전개가 많은 한국 엔터테인먼트와 정반대라 오히려 고독한 미식가 같은 잔잔한 작품이 신선하게 비치는 것 같다”라는 분석이다.
20대 한국인 남성은 마이니치신문에 “한국의 음식 드라마는 주로 젊고 멋진 남성이 주인공이고 연애 요소가 얽힌 게 많다”며 “순수하게 음식을 다룬 작품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 가게 특유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고로상의 맛에 대한 표현이 재미있다”라는 설명을 더했다.

후지TV 제작이 아니라 다행?
일본 후지TV가 유명 연예인에 대한 성 상납 의혹으로 연일 시끄러운 가운데, 인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와 후지TV 간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연예전문지 동스포웹에 따르면 “원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기획안이 들어간 곳은 후지TV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지TV는 “아저씨가 혼자 나와서 밥 먹는 걸 누가 보겠냐”며 단번에 거절했다는 것.
결국 ‘예산이 없는 만큼 기획력으로 승부하자’가 모토인 TV도쿄로 드라마 기획안이 넘어갔고, 저예산으로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워낙 가성비가 좋은 작품이다 보니, TV도쿄의 한 간부는 “이대로 고독한 미식가 시즌 100까지 쭉 가자고 너스레를 떨었다”라는 얘기가 농담인 듯 농담 아닌 것처럼 전해진다.
일본의 한 방송관계자는 “후지TV는 배가 아플지 모르겠으나 만약 후지TV가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히트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네티즌들 역시 “후지TV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제작했다면 쟈니스(현 스마일업) 출신 아이돌이 출연하고, 원작의 소박함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