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발리듯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곱씹어볼 만한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여운이 없다. 메시지를 내세우는 이념 편향적인 작품들이다. 대중문화도 이런 방법을 즐겨 쓴다.
조형이나 개념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작품에는 볼거리나 읽을거리가 없어 생각만 하다 돌아서기 일쑤다. 감상불감증에 익숙한 이들을 위한 논리의 유희 같은 것이다. 추상미술을 비롯한 개념미술 같은 경우다.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가려서 보여주는 작품은 곱씹어볼 것과 새겨서 읽을 것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감상의 묘미와 상상의 여지를 준다. 이런 작업은 관객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작가는 그만큼의 공부를 해야 한다. 익숙한 형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고흐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알려진 작품 중 유명한 것으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보통 불길한 징조를 상징한다고 알려진 새다. 검은 색과 음산한 울음소리 때문에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고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까마귀를 그림 속에 넣은 것으로 해석한다. 죽은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지 않고도 까마귀만으로 죽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형상의 힘이다.

“저는 고양에서 20여 년 살았습니다. 농촌이 붕괴되고 신도시가 들어서는 격변기를 고스란히 겪었죠. 그런 세월 속에서 잃어버리게 된 소중한 기억들이 안타까웠습니다. 보자기는 하찮아 보이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것들을 한데 묶어 보관하는 것이지요. 이런 보자기의 기능에서 제 작업은 시작됐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묶어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박용일의 ‘보자기’ 작업은 그 이후 한층 진화됐다. 서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용합한다는 화합의 의미가 더해졌다. 전통 보자기 의미가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메타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양한 오브제와 페인팅으로 아름다운 조합을 연출하는 박용일의 보자기 회화가 더욱 새롭게 보이는 오늘이다.
|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