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에 재 뿌린 3세 ‘벌써 두 명째…’
지난 8월 말.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답게 가을 문턱에서도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골목길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부촌이라는 명성에 맞게 골목 곳곳에 고급 차량이 세워져 있다. 내리쬐는 햇볕의 열기를 그대로 품고 있는 차량 속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골목길 끝에 세워둔 한 차량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차량 안엔 외국인 남성을 포함해 남녀 4명이 동승하고 있었던 것. 외국인 남성이 좁은 차량 안에서 몸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내 차량은 희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외국인 남성이 그들에게 건넨 것은 대마초. 한국에서는 법으로 금지된 마약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은밀한 놀이’는 이내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첩보를 입수한 서울 성북경찰서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그들의 신분은 놀라웠다. 모두가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으며 그중에는 현대가 3세도 포함돼 있었던 것. 이를 두고 직계냐 방계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지만 복수의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결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의 8남 현대기업금융 정몽일 회장(53)의 자녀 정 아무개 씨(여·20)로 밝혀졌다.
현대가 자제가 포함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더욱 신중하게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재벌 자제가 끼어 있으면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하기에 상당히 공을 들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 정 씨가 대마초를 피운 곳으로 알려진 성북동 집앞 골목. 박은숙 기자 |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성북경찰서는 지난 10월 수사를 마무리 짓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정 씨는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약을 공급해준 외국인 남성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라 성북경찰서는 그의 행적을 쫓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박성진)는 “정 씨를 비롯한 해외 유학생 4명에 대해 대마초를 피운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로 불구속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재벌가 자제라고 해서 특별히 편의를 봐주거나 하는 사실은 없다. 사건이 송치되면 통상 3개월 이내에 처리되기 때문에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현대기업금융을 비롯한 현대일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기업금융 측에서는 “회장님 일가와 관련한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사실관계를 묻는 질문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태다.
직접 정 회장과 딸이 머물고 있는 성북동 자택을 찾았을 때도 지나치게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 앞에서 만난 운전기사는 기자임을 밝히자마자 “회장님이고 딸이고 여기 없다. 우린 아무 것도 모르니 어서 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현대가 3세의 마약 파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9년 현대가는 한 차례 마약 파문을 겪었는데 정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장남이 대마초를 피우다 경찰에 적발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몽용 회장의 장남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게다가 사고를 친 당사자의 나이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정몽용 회장의 장남이 경찰에 적발됐을 당시 나이는 만18세에 불과했으며 이번에 적발된 정 씨 역시 미성년자를 갓 벗어난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대가의 어린 자녀들 전반에 대해 색안경이 씌워질 것을 염려하는 탓에 현대 측에서는 어떻게든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재벌가 자녀들은 마약을 어떻게 구하나
해외서 직구 하거나 외국인 공급책 활용
보통 마약은 서울 홍대나 이태원에 위치한 유명 클럽이나 바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재벌가 자녀들의 마약거래는 이보다 은밀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마약반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재벌가 자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마약을 직접 해외로부터 들여오거나 지정 외국인 공급원을 활용한다. 이렇게 국내로 반입된 마약은 소문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어울려 개인공간에서 소비한다.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모양이다. 경찰에 적발되는 대다수의 사례가 첩보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함께 마약을 했던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 ‘나 대마초 피웠다’ 등의 자랑을 하면 이게 일파만파 번져 우리들의 귀에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이번 현대가 3세 사건처럼 마약을 공급해주는 사람이 외국인인 경우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박]
해외서 직구 하거나 외국인 공급책 활용
보통 마약은 서울 홍대나 이태원에 위치한 유명 클럽이나 바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재벌가 자녀들의 마약거래는 이보다 은밀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마약반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재벌가 자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마약을 직접 해외로부터 들여오거나 지정 외국인 공급원을 활용한다. 이렇게 국내로 반입된 마약은 소문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어울려 개인공간에서 소비한다.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모양이다. 경찰에 적발되는 대다수의 사례가 첩보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함께 마약을 했던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 ‘나 대마초 피웠다’ 등의 자랑을 하면 이게 일파만파 번져 우리들의 귀에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이번 현대가 3세 사건처럼 마약을 공급해주는 사람이 외국인인 경우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