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앞에서 “부패일소” 장담한 그가…
▲ 명감독으로 손꼽히던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이 고려대 야구부 감독 시절 부정입학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돼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12월 12일 야구계에 은밀한 소문이 퍼졌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이 구속될지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몇몇 야구인은 “설마 프로 감독까지 한 사람이 구속까지야 되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양 감독은 포스트 시즌이 끝나자마자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선수들과 코치 그리고 팬들이 만류했지만, 양 감독은 사퇴를 번복하지 않았다. 그런 양 감독을 롯데는 애써 붙잡지 않았다.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한 양 감독은 야구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팬들도 양 감독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대신 양 감독을 붙잡지 않은 롯데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온화한 이미지와 믿음의 지도력 여기에다 구단을 탓하지 않고 조용히 롯데를 나온 이력 때문일까. 양 감독은 차기 감독 후보 0순위로 꼽혔다. 실제로 야구계엔 모 구단이 2014년부터 양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구단 고위층은 “양 감독의 차기 감독 내정설은 소문에 불과할 뿐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합리적 리더십을 갖추고, 프런트와도 관계가 좋은 양 감독을 많은 팀에서 탐내고 있다”는 말로 양 감독에 대한 호의적 시선을 드러냈다.
야구계의 양 감독에 대한 평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있었다. 일구회 시상이다. 은퇴한 프로야구인의 모임인 일구회는 12월 4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2012 일구상 시상식’을 열었다. 대상은 허민 고양 원더스 구단주가 받았다. ‘최고 타자상’은 박병호(넥센), ‘최고 투수상’은 장원삼(삼성)이 수상했다. 특별한 예외가 없다면 ‘최고 감독상’은 한국시리즈 우승 사령탑 류중일(삼성) 감독 차지였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최고 감독상’ 주인공으로 양 감독이 호명된 것이다.
일구회는 “양 감독이 롯데를 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올려놓으며 지도자로서 돋보이는 능력을 발휘했다”고 시상 배경을 설명했다.
야구계의 좋은 평판을 등에 업고 양 감독은 내년 시즌 야구해설가 데뷔를 모색했다. 모 케이블 스포츠전문채널의 야구해설가 제안에 양 감독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양측은 구체적 계약 내용까지 협의했다. 롯데 감독 사퇴 이후, 더 일이 잘 풀릴 것 같던 양 감독은 이때만 해도 과거 사건이 어떻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K 고 감독과의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
양 감독은 고려대 감독 시절에도 평이 좋았다. 양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려대 운동부는 부정입학과 구타 문화의 온상지로 통했다. 입학 청탁금으로 1억 원의 돈을 받은 고려대 농구부 코치가 구속되고, 아이스하키부 총감독이 선수들을 때려 사회적 문제가 됐다. 특히나 고려대 야구부는 선후배 간의 엄격한 규율과 잦은 구타로 악명이 높았다.
양 감독은 고려대 부임 초기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금품에 대해서만은 어떤 의미에서든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다. 그 방침을 따르는 게 내 임무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인데 선수들이 서로 때리고 맞으면서 야구를 하겠느냐”며 부패와 구타를 일소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고려대 야구부는 양 감독 부임 이후 부정입학과 구타와는 거리가 먼 청정지역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모 대학 감독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2008년 고려대 야구부 신입생들의 질이 좋았다. 하지만, 2009년엔 좀 고개가 갸웃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양 감독한테 물어보니 ‘당장의 성적보다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라고 했다. 속으로 ‘그런가 보다’했지만, 솔직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양 감독을 둘러싼 소문은 그가 2010년 말 롯데 감독으로 영전하며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 “부정입학 대가로 받았다” VS “야구부 운영비로 썼다”
지난해까지 양 감독은 별 문제없이 팀을 이끌었다. 특유의 친화력과 공정한 기회 보장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주전으로 기용되지 않은 선수도 “감독님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말로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선수들은 양 감독을 “객관적 기량에 따라 공정하게 출전 기회를 보장해주는 감독”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올 시즌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양 감독이 과거 고려대 시절 선수 스카우트와 관련한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롯데 프런트는 “그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가 먼저 알았을 것”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괴소문”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롯데 모 코치는 “그 소문이 나던 때를 전후로 양 감독의 표정이 몹시 좋지 않았다”며 “경기에서 이기고도 한숨을 쉬실 때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어쨌거나 양 감독이 롯데를 떠나던 10월 말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러던 11월. 인천지검의 대대적인 아마추어 야구 비리 수사가 진행되면서 양 감독의 이름이 다시 불거졌다. K 고 감독이 부정입학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은 직후였다.
모 대학 감독은 “K 고 감독이 양 감독의 이름을 대면서 검찰이 양 감독을 집중수사하기 시작했다”며 “결국 검찰이 고려대 감독 시절 양 감독이 K 고 감독으로부터 부정입학을 조건으로 1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12월 13일 인천지검은 양 감독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양 감독은 “돈을 받긴 했으나 개인적으로 착복한 적은 없다”며 “야구부 운영비로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