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선언식 하루 앞두고…‘한덕수 대망론’도 부담으로 작용

앞서 오 시장은 ‘다시 성장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을 들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국회 출입 기자들이 포함된 공보용 단체 대화방도 운영했다. 4월 13일에는 대선 출마 선언식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런데 선언식을 하루 앞두고 출마 뜻을 접은 것이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탄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과 무한한 책임감을 낀다”며 “국정이 중단되고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 통렬히 반성하며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우리 당 누구도 윤석열 정부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선고된 다음 대선 출마를 고심했다. 시장직을 내려놓을 가능성까지 포함해서였다. ‘국가 번영’과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목표를 위해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그러나 오 시장은 마음을 바꿔 불출마를 선언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국민이 진심으로 ‘보수가 새롭게 태어났다, 기대할 수 있겠다’고 체감할 수 있다면, 미약하게나마 제 한 몸 기꺼이 비켜드리고 승리의 길을 열어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오만이 횡행해 우리 정치가 비정상이 됐는데, 평생 정치 개혁을 외쳐온 저마저 같은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불출마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 시장의 불출마 선언 이면에는 명태균 리스크, 토지거래허가 구역 해제 후 재지정 논란, 한덕수 대망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가 실소유자로 있는 미래한국연구소가 오 시장 캠프 측의 의뢰를 받아 비공표 여론조사를 13차례 진행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오 시장 측근인 김한정 씨는 비공표 여론조사 비용 명목으로 3300만 원을 당시 미래한국연구소 부소장이었던 강혜경 씨의 개인계좌로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태균 씨와 강혜경 씨는 검찰에 김한정 씨가 지급한 3300만 원은 비공표 여론조사 대가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 씨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세훈 시장과 김한정 씨와 3자 회동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 회동을 포함해 총 일곱 차례 오 시장과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명 씨는 김영선 전 의원 소개로 두 번 만났다고 했다. 그러다 사이가 틀어졌고, 이에 악의를 품은 명 씨가 악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출마 선언 전날인 4월 11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2025 동행서울 누리축제’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명태균 씨와) 무슨 리스크가 있겠냐”면서 “명태균 씨랑 제가 했던 말 중에 국민은 제 말을 더 신뢰할 것 같다”고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논란도 오 시장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2월 13일 오 시장은 잠실·삼성·대치·청담 지역 291개 아파트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에 일정 규모 이상의 집이나 땅을 거래할 때 관할 기초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다. 주택은 2년 동안 실거주 목적으로 하는 매매만 허용된다. ‘갭투자’는 금지된다.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로 강남 일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매주 1000여 건이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주당 2000여 건으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 시장이 과열되자 오 시장은 잠실·삼성·대치·청담 지역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대권 도전용 정책으로 서울 부동산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권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 등 여권 대권 주자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강남권에 지역구를 둔 고동진(강남병) 박정훈(송파갑) 국민의힘 의원도 정책 혼선을 비판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시 여권 잠룡들이 견제구를 던지기 위해 비판한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말 그대로 ‘정책 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발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한덕수 대망론에 대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출마를 촉구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가속화되고 있다”며 “총리께서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임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성일종 박수영 의원 등 현역 의원들과 당협위원장이 한 대행 출마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상황에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오 시장 불출마 선언 직후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홍준표 전 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오 시장의 ‘다시 성장’과 ‘약자와의 동행’을 자신의 공약과 결부시키는 메시지를 내놨다. 오 시장과 오 시장 지지층을 향한 구애가 시작된 모습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