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 첫 여성 전무 이력 김 작가 ‘공감 지능 시대’ 출간…AI 시대 인간의 가치에 대한 통찰 담아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는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자리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4월 4일 출간한 신간 ‘공감 지능 시대: 차가운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를 통해 AI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지 자신만의 통찰을 담아냈다.

현재 그녀는 경험을 살려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은행, 증권, 제조업을 넘나들며 쌓은 경험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그녀는 ‘AI가 정보와 지식을 대체할수록 인간만의 공감 지능이 더 큰 가치를 지닐 것’이라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커리어 여정이 독특하다. 시티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시작해 현대증권, 노무라 증권에서 IT 산업 애널리스트로, 그리고 제조업 대기업 전략 책임자까지 10년 주기로 자신의 분야를 완전히 바꿔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시티은행에서 일할 때는 그저 열심히 하는 직원이었다. 회계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AICPA라는 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둘째를 임신하고 만삭 상태에서도 공부를 했다. 그러다 상사로부터 ‘여자는 남자 갈비뼈로 만들어졌으니 커리어에 욕심내지 말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어떤 꼬리표도 없이 오직 성과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직무’를 찾아 증권가로 전직했다.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안정적인 금융 산업을 마다하고 비전문 영역인 인터넷, IT 애널리스트를 자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배우려 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됐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됐다.”
—애널리스트에서 또 다시 제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전직했다.
“IT 애널리스트로 일도 잘했고, 재밌었지만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제조업은 또 다른 세계였지만, 이전 경험들이 오히려 강점이 됐다. 은행에서 배운 재무 지식, 증권가에서 쌓은 투자 관점이 제조업 전략을 세우는 데 독특한 시각을 제공했다. 나중에는 팀이 180여 명으로 커졌다. 문과 출신 여성이 전자 기술 부문에서 CSO(최고전략책임자)가 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비전공자로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시각이 오히려 혁신을 가져왔다.”
—AI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뭔가.
“LG디스플레이를 퇴사하고 나서 혼자 책도 쓰고 강연도 준비하고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다 보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임원으로 오래 일하다 보니 직원 없이 일하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AI마다 각각 다른 특성이 있더라. 마치 성격이 다른 직원 세 명을 고용한 것 같았다. AI를 쓰다 보니 앞으로 ‘안다’는 의미가 바뀔 것 같다. AI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주니까 이제는 진짜 ‘안다’는 건 ‘할 줄 안다’는 뜻이 될 거다. 경험을 통해 체화된 지식, 그게 진짜 아는 것이다.”
—AI 시대 노동자가 대체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특히 사무직 노동 현장의 인력은 빠르게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 공감 지능은 더욱 귀한 자산으로 떠오르게 된다. AI는 기존 데이터 패턴을 분석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내지는 못한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사례가 카메라가 발명됐을 때 화가들의 대응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리며 살았다. 그런데 카메라가 나오면서 아무리 잘 그려도 카메라를 따라갈 수 없게 됐다. 만약 그때 AI가 있었다면 ‘당신들의 직업은 사라질 거예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반면 인간인 화가들은 답을 찾아냈다. ‘실사를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면, 주관적인 이미지를 그리자’, ‘카메라가 절대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상파가 탄생했다. 모네의 해돋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저게 무슨 그림이냐’고 했지만, 결국 새로운 미술 사조가 됐다. AI가 세상 모든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카메라로 찍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인간 마음은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다. 이 부분이 우리의 영역이다.”

“많은 분들이 공감과 공감 지능을 혼동한다. 공감력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인간적 능력인 반면, 공감 지능은 그 너머에 있다. 공감을 한다는 것은 따뜻한 마음을 넘어,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진심으로 공감하면 문제의 해결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공감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이해만 한 것이다. 공감 지능은 이 공감의 마음을 조직, 사회적으로 확장시켜, 조직이나 사회가 공유하는 정서적 흐름을 읽고, 그 방향성을 감지해 해결책을 찾고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적 능력이다. 공감력이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라면 공감 지능은 해법을 찾으려는 ‘전략적 통찰’이다. 예를 들어 의사 결정을 할 때 데이터만 보면 과거만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셈이 된다. 미래 예측 데이터는 과거의 패턴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과거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공감 지능은 데이터뿐만 아니라 세상의 변화 흐름을 감지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을 배가시키는 지능이다.”
김 작가는 자신의 경험 중 공감 지능이 빛을 발했던 사례로 코로나19 초기 상황을 꼽았다. 2020년 코로나가 터졌을 때, 공장을 멈춰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주문이 큰 폭으로 감소했고 유통 업체들도 모두 문을 닫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공장을 다시 가동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때 한 직원이 TV 구매 문의 전화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고 한다. 비슷한 문의가 여러 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녀는 이에 주목했다.
“우리는 TV 제조나 판매회사도 아니고, 패널을 만드는 부품회사인데 왜 소비자들이 우리에게까지 연락했을까.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다고 느꼈다. 모두 락다운 상황이라 시장 조사를 할 방법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검색창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테니, 구글 검색어를 분석했고 실제로 TV 구매 검색어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는 신호를 포착했다. 당시 전 세계가 락다운 상태였다. 집에만 있다 보니 TV를 더 크고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니즈가 있었다. 이건 인간 본성의 문제이므로 미국, 유럽에서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아,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생산을 재개하자고 과감히 제안했다.
이런 제안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 시기였기에 불안하고 초조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2달 뒤 실제로 TV 수요가 폭발했다. 데이터도 사례도 없던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내린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그때 통계 전문가들을 모셔서 예측을 요청했는데, 할 수 없다고 했다. 전 세계가 ‘락 다운’ 상태가 된 과거 사례와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 답으로 이끌었다. 데이터가 씨줄이라면, 공감 지능은 날줄이다. 둘 다 필요하다.”

“공감 지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키우는 능력이다. 내가 제시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일상의 신호를 읽는 눈을 키우는 것이고, 둘째는 시대의 변화를 읽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본질을 재정의하는 눈을 갖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눈을 통해 우리는 더 깊고 정확한 공감 지능을 키울 수 있다. 한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본다면.
“첫 번째로 내 주변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코로나 때 일회용 포장재가 많아진 걸 보고 ‘이게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질 테니 나부터라도 줄이자’라는 마음을 넘어, ‘기업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역할을 제안해 주는 기업은 어디일까?’까지 생각해보는 거다. 두 번째로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지 깊이 관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이 맛집에서 한 시간씩 기다리는 이유가 뭘까. 단순히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식사는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퍼포먼스’다. 새롭고 독특한 경험을 찾는 거다. 세 번째는 다양한 분야와 세대를 넘나들며 대화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은행, 증권, 제조업을 거치며 다양한 관점을 얻었고, 그것이 큰 자산이 됐다. 나는 자식들과 대화하며 얻은 통찰이 많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휴대폰 케이스에 집착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왜 기능적으로 똑같은 케이스를 계속 바꾸는 걸까.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에게 케이스는 ‘개성 표현의 수단’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케이스 선택지가 별로 없는 휴대전화는 선택하지 않게 된다. 결국 스마트폰 업체와는 상관없는 케이스에 대한 마음이 수요에 영향을 주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책에 맥도날드, 월마트, 불닭볶음면의 공통점이라는 챕터로 공감 지능을 설명하기도 했다.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투자 결정을 내려온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투자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 이 세 가지 사례는 표면적으론 관련 없어 보이지만, 모두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구 변화를 읽어낸 경우들이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항상 맥도날드 주가가 상승했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맥도날드조차 ‘비싼 외식’으로 느껴지는 상황이 된 거다.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나는 월마트와 삼양 주식에 투자했다. 월마트는 물가 상승으로 사람들이 가성비 좋은 식재료를 구매해 집에서 식사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고, 삼양은 불닭볶음면이 단순한 라면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불닭볶음면 성공은 흥미로웠다. 불닭볶음면은 단순한 식품을 넘어 문화적 경험이 됐다. 극도의 매운맛이 도전 의식을 자극했고, 젊은이들은 다양한 재료를 추가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하고 SNS에 공유하는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었다. 이는 제품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 패턴이 작동한 케이스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맥도날드 한 끼 가격으로 불닭볶음면 여러 개를 살 수 있다는 경제적 논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인간 심리를 읽어내는 것이 공감 지능의 핵심이며, 이것은 아직 AI가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AI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을 애널리스트로서 분석해본다면 어떤가.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지나 불확실성의 시대로 가고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AI 시대의 도래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가치, 특히 공감 지능을 키운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저성장을 넘어 역성장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제조 경쟁력은 중국에 추월당했고, 인구구조도 불리하다. 하지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한국인은 빠른 적응력과 창의성으로 자원이 없는 나라를 일으켰다. 최근 K-뷰티를 보면 대기업이 하지 못한 일을 수많은 스타트업이 글로벌한 산업으로 만들고 있다. 스타트업과 작은 시도를 지원하는 사회적, 국가적 인프라가 더 탄탄해진다면 이런 사례가 계속 나올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작가로서 어떤 책을 남기고 강연을 하고 싶나.
“내가 인생 전환점마다 깨달은 ‘미래의 스폰서는 열심히 사는 현재의 나’라는 진리를 말하고 싶다. 30년 넘는 직장 생활과 리더십 여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싶다. 특히 미래세대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AI 시대에 지식이나 기술적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는 오히려 ‘경험’이 가장 값진 자산이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진 세상에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느림과 불편함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비록 작더라도 더 깊이 교감하는 순간을, 효율보다는 진심이 담긴 정성을 더 갈망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공감을 느낄 때, 비로소 마음을 열고 심지어 지갑도 여는 법이다. 결국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태도, 그리고 그 정성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차가운 AI 시대를 이겨내는 가장 따뜻한 무기가 될 것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