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일 오후 쏟아진 괴문자들…대체 뭐냐?
▲ 19일 저녁 6시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새누리당 개표상황실에 모인 캠프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오후 박근혜, 문재인 캠프는 허위로 드러난 출구조사 정보 문자에 일희일비하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한 정치부 기자의 대선 마지막 일주일에 관한 촌평이다. 막판으로 갈수록 판세가 박빙으로 좁혀지면서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조차 승리 예측에 상당히 애를 먹었고 그 결과도 엇갈렸다. 때문에 당 관계자들과 정치부 출입기자들은 여야의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를 알아내는 데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각 캠프에서는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은연중 전파하며 서로 승기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지난 13일 정치권과 기자들 사이에 재미있는 문자 하나가 돌았다. ‘대외비’라는 말머리를 단 해당 문자는 “여의도연구소 자체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후보 46.3%, 박근혜 후보 43.8%”라며 문재인 후보가 2.5%P 앞선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즉각 확인 작업에 들어갔지만 여의도연구소 측은 “완전히 잘못된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후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 이정현 공보단장 역시 “해당 내용은 완전한 허위”라며 “여의도연구소 결과는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격차가 오히려 계속 벌어지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틀 뒤인 15일 새누리당 선대위는 해당 문자를 유포한 인물로 민주통합당 캠프에 속한 윤 아무개 씨를 지목하며 고발 조치했다.
선거를 하루 앞둔 18일 밤, 여론조사와 관련된 또 다른 문자가 도착했다. “(긴급) 18일 오전 면접조사방식 빅4 결과 A 기관 문재인 2%P 우세, B 기관 문재인 1.6%P 우세, C 기관 문재인 0.6%P 우세, D 기관 문재인 0.4%P 우세.”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사실상 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앞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빅4’가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국내에서 매출이 큰 유력 여론조사기관 3곳은 선거 당일 출구조사 준비로 별도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트위터로 대표되는 SNS는 여론조사와 관련한 마타도어의 생산지이자 유통지가 됐다. 파워 트위터리안인 공지영 작가는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를 앞둔 리얼미터와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의 실명을 밝히며 “(여론조사를 조작한 뒤 새누리당에서) 5억 원을 받았고, 박 후보가 당선되면 5억 원 더 받기로 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팔로어들이 볼 수 있도록 리트윗했다. 공 작가는 이택수 대표가 검찰 고발 의사를 밝히자 즉시 글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이미 50만 명이 넘는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전파된 뒤였다. 공 작가는 민주통합당 시민캠프의 멘토단을 맡고 있었던 만큼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선거 당일, 마타도어는 더욱 정교해졌다. 이날은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가 시간대별로 쏟아졌는데 캠프 관계자, 정당 지지자, 정치부 기자들은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인터넷 메신저 등을 이용해 빠르게 확산시켰다. 실제 기자가 받은 메시지 가운데는 ‘오전 11시 집계 투표자 면접조사 결과’라는 제목으로 조사방법과 응답률, 오차범위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었다.
한 종편방송사 기자 역시 “출구조사 2시 집계 결과 박근혜 후보가 2%P 앞서고 있다는 내용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기자는 “내가 받은 건 다르다. 오후 2시 현재 방송사 출구조사 중간 집계 결과 문재인 후보 50.8%, 박근혜 후보 48.6%로 문 후보가 앞서고 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출처 없이 여기저기서 이런 종류의 조사결과들이 떠돌아다녔다.
오후 4시부터는 여의도 정가에 “오후 3시 현재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문 후보가 박 후보를 2.2%P 앞섰다”라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퍼져나갔다. 알고 보니 ‘오후 2시’를 ‘오후 3시’로만 바꿔 그대로 확산시킨 것이었다.
비슷한 시각. “주한 미국대사관 주재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오늘 오전 문재인 후보 ‘당선 유력’으로 백악관에 보고했다”는 ‘괴문자’까지 돌기 시작했다. 이 문자는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 역시 깜빡 속아 넘어가, 한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는 자신과 친한 외신기자에게 해당 내용을 알렸다가 출구조사 발표 이후 즉각 정정하기도 했다.
▲ 18대 대선에선 5060세대가 무서운 결집력을 보여줬다. 사진은 투표소에 몰린 유권자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한편 6일의 ‘깜깜이 선거’ 동안 여야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이슈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비공표 여론조사가 박빙이었다는 이야기다. 좀 더 막강한 공세를 퍼부은 쪽은 ‘추격자’ 입장인 민주통합당이었다. 11일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급습 사건을 비롯해 박근혜 후보의 1억 5000만 원짜리 굿판, TV토론 당시 아이패드 소지 여부, 신천지와의 연관설, ‘십자군 알바단’으로 명명된 불법 선거운동 사무소 적발까지 일주일 동안 거세게 몰아쳤다.
사회조사분석사 송 아무개 씨는 “선거운동 마지막에 집중된 네거티브 공방이 되레 역풍을 몰고 와 5060세대를 결집시킨 효과도 있었다고 본다. 특히 박근혜 후보 굿판, 신천지, 김정남 밀입국설과 같은 네거티브 공방은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에서 기름을 부었다”라고 전했다. 특히 <나꼼수> 측은 ‘박근혜 굿판’ 의혹의 당사자인 초연스님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파장은 커졌다. 이틀 뒤 초연스님은 “기자 2명을 부부로 위장 잠입시켜 이틀간이나 찾아와 대답을 유도하고 전후 대화 과정을 편집해 내보냈다”라며 관련 의혹을 부정하는 친필편지를 공개하면서 진실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SNS 사용에 밝은 야권 지지자들은 “이번 주말 교회에 가서 새누리당 ‘신천지 연루설’ 구전으로 전파하세요. 교인들에게는 이게 효과만점입니다”라며 독려하기도 했다. 이때 SNS에서는 박 당선인과 신천지 교주 이만희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나돌기도 했는데, 확인 결과 사진 속 인물은 이광길 돌나라 한농복구회 총재였다.
민주당 한 전직 보좌관은 “민주통합당 캠프에서 네거티브 공방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 경기도 외곽에 유세차량 한 대라도 더 보냈더라면 100만 표 이상으로 지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특히 증거가 충분한 불법 선거운동 사무소 운영 등은 새누리당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었는데 ‘십자군 알바단’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마치 마타도어인 양 몰린 측면도 있다”라고 밝혔다.
격차가 좁혀지자 새누리당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새누리당 선대위는 12월 초 ‘문재인 후보 서민착취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문 후보의 아들취업특혜, 경남 양산집, NLL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 대화록 공개 등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문 후보 여론조사 역전 소식이 나돌기 시작한 선거 하루 전에는 “지난 2002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때 새천년민주당은 113억 원의 불법대선자금이 밝혀진 바가 있지만 지금까지 한 푼도 갚지 않았다”라며 다소 엇나간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부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은 선거 막바지에 네거티브가 기승하는 이유로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이 지나치게 길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앞서의 사회조사분석사 송 씨 역시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 유권자들의 특성상 공표금지 제약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거짓 정보가 돌아다니는 상황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라며 “어떤 선거든 네거티브와 마타도어는 존재하지만 SNS와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네거티브 선거 전략의 여파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비공표 여론조사 들춰보니…
박-문 전날까지 엎치락뒤치락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운동기간 동안 지지율 2위 후보의 역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공식은 깨지지 않았다. 대부분 비공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우세를 보였지만 일부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뒤집기도 했다.한국갤럽이 지난 19일 투표 마감 직후 공개한 비공표 여론조사 지지율을 살펴보면, 14일 박근혜 후보 46%, 문재인 후보 43%, 18일 박 후보 47%, 문 후보 45%를 기록했다. 선거 당일 예상 득표율은 박근혜 후보 44%, 문재인 후보는 45%로 문 후보가 1%P 앞섰다. 하지만 투표율 75%로 보정한 최종 결과는 박 후보 50.2%, 문 후보 49.4%였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민주통합당이 대전과 충청권에서 표를 많이 가져가지 못한 점, TK지역의 보수 대결집, 그리고 수도권에서 차이를 벌리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매일경제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비공표 여론조사 역시 15일~16일 박 후보 46.4%, 문 후보 43.8%, 17일~18일 조사에서는 박 후보 47.4%, 문 후보 46.2%로 집계되면서 두 후보 간 격차가 많이 줄었지만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반면 17일 방송 3사가 코리아 리서치·미디어 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서는 박 후보가 44.6%, 문 후보가 46.0%로 순위가 뒤바뀌었다. 리얼미터가 자체 조사에서는 16일엔 문 후보가 0.9%P 앞섰지만 17일엔 박 후보가 1.8%P, 18일은 박 후보 1.1%P 다시 앞서는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대다수 여론조사들이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맞히긴 했지만 75.8%라는 높은 투표율이나 100만 이상 득표 차이는 내다보지 못해 조사의 정교함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출구조사는 지난 2007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오차범위 밖으로 벗어난 수치를 내놨다. 지상파 방송 3사는 MBMR, 코리아리서치센터, TNS RI 등 3개 조사기관에 의뢰해 공동 출구조사를 진행했다. 규모 역시 360개 투표소 8만 6000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표본오차인 ±0.8%였다.
출구조사대로라면 박 후보는 49.3~50.9%의 지지율을, 문 후보는 48.1~50.7%의 지지율을 각각 얻었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 최종 투표 결과에서 박 후보는 51.6%(1577만 3128표), 문 후보는 48%(1469만 2632표)를 얻어 출구조사 예측 범위를 벗어났다.
YTN 역시 ‘신개념예측조사’라는 이름으로 예측조사를 실시했는데 박근혜 후보 46.1~49.9%, 문재인 후보 49.7~53.5% 구간을 득표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측 실패는 물론 후보 당락도 맞히지 못했다. 결국 20일 YTN 측은 “시청자들에게 혼선을 드린 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라고 공식 사과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박-문 전날까지 엎치락뒤치락
매일경제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비공표 여론조사 역시 15일~16일 박 후보 46.4%, 문 후보 43.8%, 17일~18일 조사에서는 박 후보 47.4%, 문 후보 46.2%로 집계되면서 두 후보 간 격차가 많이 줄었지만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반면 17일 방송 3사가 코리아 리서치·미디어 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서는 박 후보가 44.6%, 문 후보가 46.0%로 순위가 뒤바뀌었다. 리얼미터가 자체 조사에서는 16일엔 문 후보가 0.9%P 앞섰지만 17일엔 박 후보가 1.8%P, 18일은 박 후보 1.1%P 다시 앞서는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대다수 여론조사들이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맞히긴 했지만 75.8%라는 높은 투표율이나 100만 이상 득표 차이는 내다보지 못해 조사의 정교함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출구조사는 지난 2007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오차범위 밖으로 벗어난 수치를 내놨다. 지상파 방송 3사는 MBMR, 코리아리서치센터, TNS RI 등 3개 조사기관에 의뢰해 공동 출구조사를 진행했다. 규모 역시 360개 투표소 8만 6000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표본오차인 ±0.8%였다.
출구조사대로라면 박 후보는 49.3~50.9%의 지지율을, 문 후보는 48.1~50.7%의 지지율을 각각 얻었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 최종 투표 결과에서 박 후보는 51.6%(1577만 3128표), 문 후보는 48%(1469만 2632표)를 얻어 출구조사 예측 범위를 벗어났다.
YTN 역시 ‘신개념예측조사’라는 이름으로 예측조사를 실시했는데 박근혜 후보 46.1~49.9%, 문재인 후보 49.7~53.5% 구간을 득표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측 실패는 물론 후보 당락도 맞히지 못했다. 결국 20일 YTN 측은 “시청자들에게 혼선을 드린 점 정중히 사과드립니다”라고 공식 사과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