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스 형님이 날 찍었어요’
#장면1. 언어의 장벽을 허물다!
<지 아이 조2>의 예고편이 공개되는 극장에 한국 취재진이 60여 명이 운집했다. 하지만 스태프의 상당수는 <지 아이 조2>의 메인 배급사인 파라마운트 소속 직원이었다. 예고편 영상이 상영된 후 무대에 오른 이병헌은 영어로 소감을 전해줄 것을 주문받았다. 유려한 발음으로 농담까지 곁들이며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이병헌에게 주저함은 없었다. 싸이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해외 토크쇼에서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의 영어 실력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병헌은 이미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를 마친 셈이다.
한국 취재진과 별도의 미팅 자리를 가진 이병헌은 “한국말로 얘기해도 되니까 너무 좋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다른 언어로 그 나라의 정서에 맞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장면2. ‘아시아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인정받다!
할리우드 배우와 스태프가 이병헌을 ‘아시아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부른 것은 지난 2009년 개봉된 영화 <지 아이 조1>의 아시아 프로모션을 마친 후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공항을 비롯해 각종 행사장에는 이병헌을 보기 위한 인파가 구름떼처럼 몰렸다. 배우인 이병헌과 가수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 표현은 이병헌의 엄청난 팬덤을 보고 놀란 할리우드 제작진의 최고의 극찬이었던 셈이다.
이 소문은 <지 아이 조2>의 촬영장에도 삽시간에 퍼졌다. 아직까지 이병헌이라는 배우 존재를 모르던 출연진과 제작진조차 이 소문을 들은 후 이병헌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장면3. 스스로를 홍보하다!
국내에서는 최고 대우를 받는 배우지만 해외에서 이병헌은 아직 신인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병헌은 적극적인 자기 PR에 나섰다. 대표적인 예가 자신의 이니셜을 딴 스타숍 브랜드 ‘BH 스타일’을 만든 후 처음 제작한 MD인 스마트폰 케이스를 할리우드 스태프에게 선물한 것이다. <지 아이 조2>의 현장 스태프는 이병헌의 얼굴과 이니셜이 새겨진 이 케이스를 받고 엄청난 만족감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충무로와 달리 할리우드는 출·퇴근 시간이 엄격할 정도로 비즈니스 관계가 명확하다. 아시아에서 온 넉살 좋은 배우 한 명이 이런 분위기를 일거에 허물며 존재감을 알린 셈이다.
이병헌은 “이 정도까지 반응이 좋을 줄 몰랐다. 처음에는 20개 정도 가져가서 나눠줬는데 원하는 이들이 많아서 한국에서 계속 공수해 나눠줘야 할 정도였다”고 웃음 지었다.
#장면4. 촬영장에 한글이 등장하다!
▲ 지난 12~14일 홍콩에서 열린 <지 아이 조2> 아시아 프레스데이에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이병헌. 사진제공=CJ E&M |
<지 아이 조2>의 촬영장에 간 이병헌은 스톰 쉐도우가 사용하는 소품 칼을 한 자루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칼에 한글로 ‘폭풍 그림자’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스톰 쉐도우’라는 이름을 한글로 옮긴 것이다. 한국 국적을 가진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 제작진이 최고의 예우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병헌은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웃었는데 제작진은 진지했다. ‘자랑스럽다’며 한국 관객들이 응원해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진지한 장면에서 살짝 웃길 수도 있을 것 같아 감독님과 고민 끝에 한글이 없는 칼을 쓰기로 했다. ‘이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날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장면5. 브루스 윌리스에게 인정받다!
<지 아이 조>를 통해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이병헌은 일찌감치 속편의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했다. 동시에 또 다른 할리우드 액션 영화 <레드2>에 캐스팅됐다. 이병헌의 손을 잡아준 이는 다름 아닌 할리우드 명배우 브루스 윌리스였다.
두 사람은 <지 아이 조2>를 촬영하며 처음 만났다. 이병헌을 지켜보며 가능성을 엿본 브루스 윌리스는 그가 <레드2>에 출연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뿐만 아니라 촬영장에서도 브루스 윌리스는 누구보다 이병헌을 살뜰히 챙겼다.
이병헌은 “너무 잘해주고 다정다감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굉장히 신사적인 배우였다.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 대단한 연륜을 갖춘 브루스 윌리스가 촬영장에 올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감독과 의견을 교류해서 반영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밝혔다.
#장면6. 아시아 배우의 한계를 뛰어 넘다!
한국 배우 이전에 성룡 이연걸 등 홍콩 배우들이 먼저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다. 이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할리우드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아시아의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대부분 액션 영화에 치중할 뿐, 배우로서 내면 연기는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양 배우들은 악역을 도맡아 했다.
물론 <지 아이 조> 시리즈에서 이병헌 역시 액션 연기를 펼치는 악역을 맡았다. 하지만 1편과 2편을 비교하면 비중과 캐릭터의 무게감은 전혀 다르다. 2편에서는 스톰 쉐도우의 히스토리에 초점을 맞추며 그의 내면을 들춘다.
이병헌은 “<지 아이 조>의 스톰 쉐도우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아주 비밀스러운 스톰 쉐도우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동양 배우가 맡은 배역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결국은 더 좋은 배역을 맡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홍콩=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