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소년의 현상생활’ 알몸 남성 1년 3개월간 원룸 격리…경품응모로만 생존 밀착 촬영, 최근 다큐화 화제

1998년 1월, 니혼TV 예능 프로그램 ‘나아가라! 전파소년’은 새로운 코너 ‘전파소년의 현상생활’을 선보였다. ‘과연 인간이 경품 당첨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자’라는 전대미문의 기획이었다. 참여한 인물은 하마쓰 도모아키(당시 22세). 턱이 길다는 이유로 ‘나스비(なすび·가지)’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무명 희극 배우였다.
나스비는 알몸으로 텅 빈 원룸 아파트에 갇혔다. 주어진 것은 펜 한 자루와 응모 엽서, 전화, 그리고 잡지로 가득한 선반뿐. 옷은 물론이고 화장지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격리 생활에서 해방되려면 ‘경품 당첨 누적 금액이 100만 엔(당시 약 940만 원)을 넘길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조건을 달성해야 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나스비는 촬영 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영상이 어디에 사용되는지는 명확히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리얼리티 쇼를 통해 유명인으로 거듭났으나 정작 본인은 TV로 방송 중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흡사 ‘트루먼 쇼’를 떠올리게 한다. 트루먼 쇼는 1998년 6월 개봉한 미국 영화로 자신의 삶이 TV 프로그램으로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자의 혼란과 각성을 다룬다. 요컨대 나스비는 현실 속 ‘트루먼’이었던 셈이다.
#일본식 ‘가학 예능’에 전 세계 경악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이 충격적인 예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영국 출신 클레어 티틀리 감독이 ‘전파소년의 현상생활’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경쟁자(The Contestant)’를 제작한 것이 계기다. 클레어 감독은 다큐에서 무명 코미디언의 인권을 유린해 웃음을 짜낸 1990년대 일본 예능업계의 민낯을 폭로한다. 나스비와 그의 가족, 제작자 쓰치야 도시오 PD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방송 윤리와 시청자의 책임을 날카롭게 조명했다.

일본보다 해외 비판이 거센 배경에는 예능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있다. 일본 예능은 출연자의 고통이나 당황스러움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벌칙으로 뜨거운 온천에 빠뜨리기거나 기상천외한 복장을 입히고, 극한의 임무를 주는 등 인내와 희화의 경계선을 시험하는 방식이다. ‘전파소년의 현상생활’도 이 같은 연장선에 있었고, 당시 일본 시청자들은 “출연자와 제작진이 합의한 예능”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서구권 시청자들은 인권 침해와 감금, 정신적 후유증 등을 이유로 학대라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해외에서는 ‘가장 비윤리적인 방송’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시대 변화도 비판이 거세진 배경이다. 1998~1999년 일본 방송계는 리얼리티 쇼의 실험기였다. 당시에는 “정신력이 대단하다” “정말 경품만으로 살아갈 수 있구나” 등 일종의 ‘극한 도전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방송 윤리와 인권 감수성이 높아진 지금 시점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때 방송을 접하지 못했던 일본의 젊은 세대들도 뒤늦게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이건 감금이다” “실험이자 학대다” 등 경악하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전파소년의 현상생활’을 통해 일약 유명인이 된 나스비는 오랫동안 방황해야 했다. 프로그램에서 형성된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이다. 대중은 그를 ‘벌거벗은 남자’로만 기억했고, 진지한 배우나 예술가로서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소극장 무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고향 후쿠시마를 위한 사회운동과 자선활동으로 주목받았다. 일본 전역을 도보로 횡단하며 부흥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 것. 나스비는 점차 ‘진정성 있는 인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해외 평론가들은 나스비에 대해 “예능에 이용됐지만,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한다. 일본 내에서도 “이제 나스비는 더 이상 ‘벌거벗은 남자’가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