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검찰파쇼”, “소영웅주의적 공명심”이라고 공격하고 있고 심지어 검찰을 통제불능상태에까지 빠뜨린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까지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송광수 검찰총장은 ‘굿모닝 게이트’와 관련, “드러나는 것은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밝힐 것”이라며 ‘마이 웨이’를 외치고 있다.
이런 검찰의 권력에 대한 ‘깊은 태클’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대한민국을 접수하려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 대표를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과 정치권이 죽기 살기식의 난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지금으로선 한국의 어떤 권력집단도 검찰의 ‘쾌도난마’를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검찰은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권력지도를 새로 그릴 수 있게 될까.
‘검사스럽다’. 지난 3월 초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뒤 일부 참석 검사들의 ‘인사권 고집’과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두고 네티즌들이 비아냥거린 말이다. 불과 넉 달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검찰의 위상은 한마디로 ‘누더기’였다. 권력에 기댄 일부 정치검사들의 ‘구부러진 칼’ 때문에 검찰 전체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정대철 대표의 수사 사건을 계기로 ‘검사스러운’ 검찰이 뭔가 달라졌다고 보는 시각이 대세를 이룬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21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더 이상 안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힐 정도로 검찰의 강수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또한 여당은 검찰총장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의 해임건의안까지 들먹이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검찰의 이런 파격적인 징후는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의 전격 수사에서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정 속도조절론’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재벌수사에 있어 새로운 사법처리 기준을 세우며 최태원 SK(주) 회장과 손길승 전경련 회장을 기소해버렸다.
그 뒤 검찰의 칼은 나라종금 재수사로 향했다. 당시 검찰은 “(나라종금 재수사에 대해) 대통령이 하루 종일 역정을 냈다”는 풍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통령의 386 핵심측근 안희정씨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나라종금 재수사로 노무현 정권은 집권 초기 도덕성에 적잖은 타격을 입는 수모를 당했다.
그 뒤 검찰의 칼은 다시 한 번 여권의 심장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찰이 굿모닝시티 사기분양사건과 관련,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정대철 민주당 대표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해버린 것. 집권 여당의 수장이 ‘처벌’받게 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지난 89년 서경원 평민당 의원 월북 사건 당시 김대중 총재가 불구속기소된 전례는 있다. 하지만 정권의 야당 압박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었고 그뒤 여야를 막론하고 원내 정당 대표가 사법처리 수순을 밟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의 이런 자신감과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먼저 검찰 내부로부터 팽배해있던 위기의식이 검찰의 ‘녹슨 칼’을 갈게 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검사 출신 변호사 A씨의 분석이다.
“이번에 검찰이 청와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5년 임기 내내 눌려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계속 밀고 나갈 것 같다. 사실 검찰이 노 정권 초기 얼마나 무시당하고 창피당했나. 게다가 검찰 일부에서는 민변 출신들이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법조계의 인사권까지 개입한다는 불만이 내재돼 있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이 계속 눌려지낸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언젠가 한 번 일이 터져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대검의 또 다른 고위관계자 B씨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검찰은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번 사건도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넘어간다면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검찰 속성상 증거가 없으면 절대 무리해서 수사하지 않는다. 대검 간부들 분위기도 ‘이번만큼은 원칙대로 한 번 가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검찰의 이러한 내부 분위기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스타일과도 직결된다. 대검의 한 수사관계자는 송 총장에 대해 “송 총장은 기획통이긴 하지만 수사에 대해서도 항상 원리원칙대로 따르는 사람이다. 총장 스타일은 절대 무리해서 일을 진행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 예외없이 철저히 수사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번 굿모닝 게이트에 더욱 강수를 두는 또 다른 이유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도 직결된다. 서영제 서울지검장은 최근 한 회의석상에서 “수사 주체는 검사가 아니라 법”이라고 강조하며 좌고우면하지 않는 검사상을 강조했다고 한다. 검찰 수뇌부 대부분이 ‘검찰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지난 16일 민주당 당직자회의 모습. 굿모닝시티 수사와 관련, 정대철 대표(가운데), 이상수 총장(왼쪽)의 표정 이 심각하다. | ||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권력에 대한) 불신이 많이 해소됐다고 본다. 대통령이 ‘검찰이 중립적으로 수사한다’고 신뢰하고, 검사들 사이에서도 청와대가 간섭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의식이 실제로 평검사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검찰 독립’을 공개적으로 확약받은 뒤 ‘말 안듣는’ 평검사들이 많아졌다는 것. 또 이 같은 ‘법대로’ 검사를 간부들도 별 도리 없이 용납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심재륜 전 고검장은 이러한 검찰의 ‘변신’에 대해 “사실 검찰은 지금까지 원칙대로 했다. 그런데 간혹 정치검사들의 구시대적 작태가 한 번씩 말썽을 일으켰다. 일반 사람들은 옛날 정치검사들의 모습이 마치 검찰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 지금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는 송광수 총장의 기본기조는 달라진 게 아니라 검찰의 원래 모습일 뿐이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러한 독립 의지는 자연히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7월13일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정대철 대표, 이낙연 비서실장의 ‘4자 비밀회동’이 있었을 때 정 대표측은 “청와대가 검찰을 그렇게 통제 못하느냐”는 취지의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그간 청와대-검찰 간 수사조율 역할을 맡았던 청와대 파견검사가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 4월께 민정수석실과 검찰청 사이에 설치돼 있던 ‘핫라인’인 내부 전화선과 팩스가 철거되면서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사라져버린 것.
그리고 올해 초 검찰개혁 파동을 겪으면서 검찰과 청와대의 ‘거리’가 더욱 벌어진 점도 검찰의 초강경 대응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검사는 “검찰을 그렇게 개혁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수사를 통제하려 든다면 누가 납득하겠나. 씨도 안 먹힐 소리”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러한 검찰과 청와대의 ‘거리감’은 검찰의 ‘보복설’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초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검사스러운’ 일을 당해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이번 기회에 청와대와 정치권에 본때를 보이기 위해 초강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순용 전 총장은 후배들의 ‘일’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검찰이 정권 초기에 조금 홀대를 당해서 거기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송 총장은 내가 아끼던 후배였는데 잘 이끌고 나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마음 속으로 잘 되기를 성원하고 있다”며 검찰 독립에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검찰의 이런 달라진 모습에 여전히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이번 검찰의 강수와 관련하여 ‘음모론’이 여전히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검찰이 강수를 두고 있지만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본다. 워낙 지금까지 믿을 수 없는 검찰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권력비리 사건과 형평이 맞지 않다. 1백50억 비자금 사건이나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이렇게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가 갑자기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 속전속결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뭔가 그 배경에 다른 시나리오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더구나 집권당 대표이자 현직 대통령의 대선 당시 선대위원장이었고 그리고 신주류의 주도적 인물인 정대철 대표를 사법처리하려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 그리고 검찰 수뇌부가 의외로 침착하고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는 것 등 여러 가지로 보면 묵시적 동의 아래 검찰의 ‘강수’가 나온 게 아닌가 한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검찰의 초강수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일까. 한나라당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지지부진한 신당창당 문제를 빨리 진척시키기 위해 이런 일을 촉발시켰다는 쇼크요법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신당 주류 세력의 정치개혁 방향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다. 읍참마속이나 토사구팽의 방법을 통해 신당추진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향후 수사 방향에 대해서도 “적어도 검찰이 이 문제를 잘 다루려면 관련자 전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할 텐데 지금은 거론만 되고 진척되는 일은 없다. 모든 표적은 정대철에게만 맞추고 있다. 앞으로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 봐선 용두사미일 가능성이 많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아직까진 검찰의 ‘변신’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민변의 김선수 부회장은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으로는 조금 변화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재로서는 말 할 수 없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검찰 개혁 의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검찰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부조리와 부패를 ‘접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 더욱 엄격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그런 검찰이 대한민국을 접수하는 날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